관련서비스

검색

검색

책 메인메뉴

책본문

종류 : 종이책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미리보기 YES24
저자
이반 일리치 , 데이비드 케일리 지음
역자
권루시안 옮김
출판사
물레 | 2010.03.19
형태
판형 A5 | 페이지 수 360 | ISBN
원제 : Ivan Illich in conversation
ISBN 10-8988653300
ISBN 13-9788988653302
정가
가격확인중
찜하기

이 책은 어때요? 0명 참여

평점 : 0 . 0

번역

번역Bad 1 2 3 4 5 6 7 8 9 10 번역Good

필독

비추 1 2 3 4 5 6 7 8 9 10 필독

이 책을 언급한 곳

리뷰 0 | 서평 3 | 블로그 2

책 정보 별 바로가기 : 책정보  리뷰 (5) 가격비교 (0) 추가정보  책꼬리 (0) 한줄댓글 (0) 맨위로

정보 제공 :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도서

책소개

20세기 진보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와의 5년간의 대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잘못된 것들을 깨부수는 사상가 이반 일리치. 학교에, 의료체제에, 국가의 원조체제에, 종교계와 정치계에 관해 그가 던진 학설은 발표될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격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의 문제를 보기 위해서는 그 이면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전통으로 돌아가 성찰해야 한다는 그의 사유 방식은 이후 아나키스트와 녹색운동가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 사상가, 환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저자소개

저자 : 이반 일리치
저자 이반 일리치(1926~2002)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잘못된 것들을 깨부수는 사상가.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다. 열한 개의 언어를 익히고 신학과 역사학과 화학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떠돌이 학자를 고집한 그의 장기는 기존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주장에 '구멍을 숭숭' 뚫어놓는 것이었다. 학교에, 의료체제에, 국가의 원조체제에, 종교계와 정치계에 관해 그가 던진 학설은 발표될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격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형식적인 모든 의례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는 1951년 정치 망명객이자 신부의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교회고위직의 승진코스를 추구하기보다는 푸에르토리코지역에서 보좌신부로 일하며 빈민과 함께 사는 삶을 택한다. 이후 1956년부터 1960년까지 푸에르토리코의 가톨릭대학교 부총장을 지내지만 점점 정치적이 되어가는 교회의 정책에 반대하며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사제직을 떠나게 된다. 본격적으로 세상에 그를 알리게 된 계기는 아마 CIDOC이라고 알려진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를 설립하고 나서일 것이다. 이곳은 한편으로는 어학기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여러 현실과 그 문제점을 생각하는 지식인들과 평신도 종교활동가들이 모여 토론을 나누고 수많은 책과 소책자들을 출간해내는 싱크탱크이자 전진기지였다. 이곳에서 그는 소위 선진국들의 개발원조에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교회가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과 충돌하였다. 이 활동은 말 그대로 성공적이었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일리치는 바티칸으로 소환되어 사제직을 떠나게 된다. 그 후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 '성장을 멈춰라', '병원이 병을 만든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그림자 노동' 등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에서 유럽중세사를 강의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이 후 그의 관심은 12세기를 중심으로 한 과거를 기준삼아 현대사회를 되돌아보는 일에 기울었으며 그 결과로 나타낸 책이 '텍스트의 포도밭에서'이다. 현실의 문제를 보기 위해서는 그 이면을 직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전통으로 돌아가 성찰해야 한다는 그의사유방식은 이후 아나키스트와 녹색운동가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 사상가, 환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교육학, 역사학, 정치학, 언어학, 의학, 여성학, 종교학, 문학을 넘나들며 시대를 여행하는 그의 강의방식 역시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정작 일리치 자신은 행동을 촉구하는 소책자운동만을 펼쳤을 뿐 그의 사상을 집대성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소규모 청중을 위한 강연이 아닌 방송을 통한 인터뷰를 공식적으로 거부한다. 그 후 15년이 넘도록 어떠한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던 이반 일리치를 대담으로 끌어 낸 사람은 캐나다 CBC 방송의 데이비드 케일리이다. 집요한 설득 끝에 이뤄진 이 대담은 1988년에 시작됐고 이후 1992년까지 여러 차례 이어졌다. 그 대담 내용을 담은 책이 이 책,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이다.

저자 : 데이비드 케일리
저자 데이비드 케일리는 저술가이자 CBC 제1라디오의 <아이디어즈>를 진행하는 방송인이다. 저서로는 '미래의 북에서 흐르는 강The Rivers North of the Future'(이반 일리치와 공저), '커져가는 교도소The Expanding Prison' 등이 있으며, 아난시 출판사의 '대화' 시리즈로 노스럽 프라이와 조지 그랜트에 대한 책을 펴냈다.

역자 : 권루시안
역자 권루시안은 편집자이자 전문 번역가이다. 잭 웨더포드의 '야만과 문명'(이론과실천),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언어의 죽음'(이론과실천), 메리 로취의 '스티프'(파라북스), '스푸크'(파라북스), '봉크'(파라북스), 이매뉴얼 더만의 '퀀트'(승산),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에세이'(다산북스), 피터 크라스의 '월가의 영웅들이 말하는 투자의 지혜'(국일증권경제연구소) 등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을 독자들에게 아름답고 정확한 번역으로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며 7
해설_ 이반 일리치에 관하여 15

chapter 1 교육은 만들어진 신화다 069
chapter 2 세계 속의 증인 역할 091
chapter 3 파국적 단절 119
chapter 4 어둠 속의 촛불이 되라 147
chapter 5 오만의 마지막 미개척지대 171
chapter 6 이중의 게토 191
chapter 7 사랑이라는 가면 221
chapter 8 분수령을 따라 걷는다 243
chapter 9 질료가 제거된 세대 269
chapter 10 사람 손 안의 우주 279

옮긴이의 말 317
주 321
주요 고유명사와 용어 341

책 정보 별 바로가기 : 책정보  리뷰 (5) 가격비교 (0) 추가정보  책꼬리 (0) 한줄댓글 (0) 맨위로

리뷰

독자리뷰(총 2건)

리뷰쓰기

미디어 서평 (총3건)

[오늘의 사색]이반 일리치와의 대화
[오늘의 사색]이반 일리치와의 대화
▲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 데이비드 케일리·물레“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그것은 감각적이고 의미 있는 낱말과 분..
경향신문 | 2013.09.29
[책과 지식] 2012년 나를 움직인 책
[책과 지식] 2012년 나를 움직인 책
2012년 마지막 북리뷰 지면입니다. 올 한 해를 마감하며 우리 시대 전문가 5명의 추천서를 모았습니다. 나름 다독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입..
중앙일보 | 2012.12.31
<신간>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신간>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 '학교 없는 사회' 등으로 유명한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캐나다 CBC 제1라..
연합뉴스 | 2010.03.25

책 정보 별 바로가기 : 책정보  리뷰 (5) 가격비교 (0) 추가정보  책꼬리 (0) 한줄댓글 (0) 맨위로

가격비교 -

이 책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이 없습니다.

더 많은 검색결과를 원하신다면?   Daum 쇼핑하우에서 찾아보기   Daum 통합검색 결과보기

책 정보 별 바로가기 : 책정보  리뷰 (5) 가격비교 (0) 추가정보  책꼬리 (0) 한줄댓글 (0) 맨위로

추가 정보

상세이미지

“고도로 자본화된 사회는 고도로 자본화된 시민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공격하는 전방위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나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미래

여기 한 사상가가 있다. 한쪽에서는 그를 지나친 급진에 물든 공상가로 치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를 과거의 향수에 찌든 보수주의자쯤으로 간주한다. 한쪽에서는 “좌파 지식인들을 겨냥한 지적 폭력”을 가한다며 비난을 쏟아 붓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국적도 불분명한 정체불명의” 인사로 규정하며 쇠사슬과 총격을 비롯한 갖은 박해를 시도한다. 한편, 그는 『가디언』, 『르몽드』 등 쟁쟁한 잡지에서 선정한 “20세기의 최고 지성”이자, 환경운동가와 아나키스트들, 해방신학 활동가들에게는 일종의 “정신적 멘토”이기도 했다.
열한 개의 언어를 익혔으며 세 개의 학위를 갖고도 평생 “떠돌이 학자”를 고집한 사람, 몬시뇰이라는 명예로운 직책과 대학교 부총장이라는 높은 사회적 직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빈민과 기거를 같이하여 항상 행동하는 활동가이자 그저 역사학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사람. 그는 언제나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이 전통에 기반을 둔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가 내놓은 의견들은 항상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강하게 공격했으며, 해석을 놓고 세간의 갖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각설하고 말하자면, 여기서 소개하려는 사람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사람인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 바로 그이다.

우리 속에 자리 잡은 확실성을 공격하는 지치지 않는 사상가

교육학, 역사학, 정치학, 언어학, 의학, 여성학, 종교학, 문학 등 어느 한 분야를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던 그의 사유의 방법은 그러나 현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명쾌하고도 단순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 “과거로 돌아가 성찰하자는 것”이다. 명쾌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사유 방식과 마찬가지로 그가 내세우는 주장 역시 그만큼 명료하고 또 소박하다.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corruptio optimi quae est pessima.” 그는 이 한마디를 기준 삼아 우리 사회의 온갖 제도적 모순들을 거침없이 풀어낸다. 선의로 시작한 많은 일들이 제도화 되면서 선의 그 자체를 체제 속에 가두어 버린다.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병원이 어느덧 우리를 병원이 관리하는 체제 속에 가두어 구속하며, 선한 의도로 세운 학교가 어느새 우리 사회의 차별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저개발국가에 대한 개발원조 역시 선의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어느덧 그곳 사람들에게 자본 사회에서 소외된 자의 무기력함을 일상화시켜, 소위 “목마름을 콜라가 부족한 상황”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양산해버리고 만다. 좋은 사회 혹은 좋은 국가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구호가 점차 다른 것으로 변질되어 어느덧 우리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현상은 일일이 예를 들기도 힘들 만큼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몇몇 현상을 제외하면 우리들 자신은 그것을 분명히 느끼고 또 지적하지 못하며, 심각한 성찰 역시 그저 피상적 비난에 그치고 만다. 우리들 자신이 이들 “선한 의미의 단어들”에 이미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범주, 사상들이 이미 너무나도 깊은 확실성으로 우리 안에 자리 잡았기에 그것이 사실 부자연스럽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낱말이다.

인간이라는 범주는 계몽운동 이후 사상 속에 너무나도 깊은 확실성으로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이게 근래에 조작된 사회적 개념이라고 주장해도 사람들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중의 게토」 중에서

현재를 알고 싶다면 과거로 돌아가라, 그리고 들여다보라

이런 부자연스러움을 발견해내기 위해 일리치가 택한 방법이 ‘과거로의 여행’이다. 꼭 특정한 과거가 아니더라도 그저 현재와 충분히 떨어져 있어 두 시기의 차이를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의 과거라면 좋다. 일리치는 그 중 자신이 특히 익숙한, 그리고 자신이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12세기의 사회와 저술들로 돌아가 성찰을 시도한다. 그는 12세기의 사람들에게 당시의 말로 현대 사회의 모습들을 설명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그 모습들이 예전과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졌는지, 또 우리가 쓰는 용어들의 의미가 예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챌 수 있다. 기관총에 대해, 핵무기에 대해, 개발 원조나 교육, 혹은 의료에 대해 그는 12세기의 사람에게 당시의 말로 설명을 시도한다. 때로는 우리가 쓰는 말을 당시의 언어로 바꾸어 풀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은 종종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의 모순을 깨닫게 만드는 발판이 된다.

“전 지구적 관리”라는 말에 대해 들었을 때, 주로 12세기와 13세기 문서를 읽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 말을 라틴어로 번역해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경우 그 말은 ‘인간에게 딸린 우주’로, ‘인간의 손 안에 놓인 우주’로, 그리고 ‘예전에 인격체라 부르던 것을 인간의 손 안에 내려놓는 행위’로 번역된다. 인간이 세계를 만든다는 관념이 여기서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관념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사상에서 유래하며, 이런 관념이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책임responsibility이라고 하는 저 이상한 낱말이 더 강해진다. 책임은 법적으로 해명할 의무라는 의미로 오랫동안 사용됐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 의미를 띠지 않는다. 이제는 누군가에 대한 법적 의무가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낱말은 세계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또 우리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사회적 전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주장 속에는 우리에게 세계에 대해 어떤 지배력이 있다는 암시도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과학적 노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확신함으로써 우리에게는 세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믿을 필요를 더 키운다. 생명을 책임질 수 있다는 말에는 생명을 더 낫게 만들고 생명을 되찾고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두 개의 문간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 고안하고 인간이 만든 생명이 죽어버린 자연 속에서 부활하는 모습이다. 생명은 역사의 궁극적 목적이 된다.
「사람 손 안의 우주」 중에서

일리치의 사상과 생애를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지침서

이 책은 이반 일리치가 CBC 라디오 진행자인 데이비드 케일리와 나눈 5년 동안의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학교 없는 사회』, 『그림자 노동』, 『성장을 멈춰라』,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 현대 사회를 성찰하는 그의 수많은 저작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고전과 현대의 숱한 책들을 인용하며, 국적을 넘나들며 사용하는 일리치 특유의 어휘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은유적, 비유적 표현 때문인지 그의 글은 생각만큼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이 책은 이반 일리치 자신이 자신의 사상을 글이 아닌 “말로 풀어낸” 대담집이다. 5년 동안의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대담은 일리치의 말을 빌리면 만년의 그의 사상의 변화를 “엿보게 하는 열쇠구멍”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그가 해왔던 말과 생애에 대한 “고해성사”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의 흐름이 때로는 평범한 일상어를 타고, 때로는 일리치 특유의 묘한 단어들을 타고 말 그대로 독자를 세차게 휩쓸어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밝혀지는 그의 이력, 그의 생활, 그리고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얘기가 우리를 잔잔한 감동으로 인도한다. 한편, 여러 분야에 관한 많은 책을 남겨왔으면서도, 정작 일리치 자신은 자신의 사상 전체를 하나의 큰 틀로 정리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반 일리치의 전 사상을 골고루 다루며, 그것을 일리치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은 사실상 이 책이 유일하다. 그가 때로는 힘 있고, 때로는 위트가 넘치게 쏟아낸 5년간의 말들이 대담자인 케일리의 말을 빌리면 “아무런 기탄없이” 기록되어 있기에.

2002년 12월 2일 세상을 떠난 그는 어떤 의미에서 과거의 사상가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성장을 멈추고 공존공생의 사회를 부르짖었던 그의 일갈은 개발과 그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전해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가 존속하는 한, 최선이던 것이 어느새 최악으로 타락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토론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죽기 전까지 그가 계속했던 일은 서구적 확실성에 관한, 왜곡된 기독교 교리에 관한 세미나의 준비 작업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표기에 관하여

이반 일리치Ivan Illich라는 이름의 한글 표기를 두고 약간의 혼란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대담집의 엮은이 케일리에게 일리치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했는지를 메일로 물었고, 그 결과 ‘이반 일리치’라 발음했다는 답신을 받았다. 그 뒤에 우연히 CBC의 일리치 인터뷰 방송을 듣게 됐는데, 거기서 일리치가 자신의 이름을 ‘이반 일리치’라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옮긴이 주」 중에서

이곳에 옮긴이 주를 인용해야 할 만큼 이반 일리치에 대한 표기는 한국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일리치의 사상을 한국에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는 녹색평론 김종철 씨의 경우에는 “이반 일리치”를, 일리치의 책을 한국에 활발하게 번역, 소개하고 있는 박흥규 씨의 경우에는 “이반 일리히”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저작들 역시 대부분 “이반 일리히”라는 독일식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엄밀히 말해 독일인이 아닌데다, 그 역시 평생 독일인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스스로를 “이반 일리치”라고 발음하는 것을 남겨진 녹취록에서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표기 문제와는 달리 그의 글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의 글이 워낙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탓이다. 그러나 이 책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에서는 일리치 자신의 육성으로 그런 논쟁을 간단히 종식시켜버리고 있으며, 이후 변화된 그의 사상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리치의 사상과 생애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지금도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소위 음용수라는 이름의 그 물, 아이들에게 “냉장고 안 생수병 물을 마셔라,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그건 마시지 말고”라고 말하는 그 물을 받아서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 때 나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현실이다. 바로 그게 오늘날 그 질료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나는 세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게 아니다. 그저 오늘날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지, 얼마나 끔찍한지 한번 보라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나면 순간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질료가 제거된 세대」 중에서

몇 년 전 바로 이런 사실이 문득 떠오른 때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대학원생 예닐곱 명이 살고 있던 어느 아파트의 부엌이었다. 냉장고 문에 그림 두 장이 붙어 있었다. 하나는 푸른 행성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수정된 난자였다. 크기가 엇비슷한 두 개의 동그라미로, 하나는 푸르스름했고 다른 하나는 연한 붉은색이었다. 학생 중 하나가 나에게 말했다. “이들은 우리가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문간입니다.”
(……)
이 두 개의 동그라미는 기계 장치의 결과물이며 라칭거 추기경식으로 말하면 과학적 사실의 표상이다. 볼프강 작스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말하고 있지만, 이제껏 얻어진 조망 중 가장 폭력적인 것은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본 조망이다. 바깥에서 지구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하셀블라드 카메라를 지구 밖으로 내보내는 데 폭약이 몇 톤이나 들어갔을지 상상해보라. 오늘날 우리는 실제로는 사진 한 장밖에 없는데도 지구를 밖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 접합자, 즉 수정된 난자의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폭력이, 얼마나 많은 뻔뻔스러운 폭력이 여성에게 행해졌을지 상상해보라.
(……)
이 두 개의 동그라미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활동이 고액의 지원금을 요구하려는 선전에 이용될 수 있는 영상으로 탈바꿈한 결과물이며, 그 결과 그 동그라미들은 도달하기 위한 어떠한 희생도 정당화시켜버리는 궁극으로 들어가는 문턱이 되고 문간이 된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인데도 말이다.
- 「사람 손 안의 우주」 중에서

책속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하는 당신의 질문에 대한 사실상의 대답으로서, 현대인에게, 젊은이에게 작은 촛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인생을 밝히기 위해 켜는 촛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전구와 스위치에 익숙해져 있다. 어둠이 없으면 빛이라는 비유는 통하지 않는다.
- 「어둠 속의 촛불이 되라」 중에서

“아리에스 선생님? …… 이반 일리칩니다.” 아무 응답도 없었다. 이윽고 아주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을 몹시 만나고 싶고 또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다. 선생님과 알고 지내고 싶어 하는 여성이 있는데 아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만나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 운이 좋게도 카오르 포도주를 1리터짜리 병으로 주문할 수 있는 식당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식당을 골랐다. 우리는 세 병을 마셨다.
저녁식사를 마칠 때가 됐을 때 나는 아리에스에게 말했다. 카오르를 3리터 마신 뒤였다. “그런데 쓰신 글은 언제 출판하실 겁니까?” 그의 대답은 “글쎄요. 17년 뒤?”였다. 그래서 말했다.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그가 대답하기에 내가 말했다. “죽음이라는 걸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래서 바로 그날 우리는 르프티젱그 식당에서 나와서 쇠이유 출판사로 찾아갔고, 그 자리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그의 명저를 출판하기 위한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나중에, 1982년에 그는 나의 후임으로 베를린 지식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1983년에는 그의 부인이 암으로 죽었는데, 그때 나는 그를 찾아가 그가 아파트로 혼자 돌아오지 않아도 될 때까지 함께 지냈다.
- 「교육은 만들어진 신화다」 중에서

세계 속에 있는 한 개의 원자폭탄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의 구호 말고는? 내가 독일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그때는 퍼싱 미사일이 거기 배치되려던 참이었다. 나는 시위를 열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주로 고등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말없이 거기 서 있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항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혐오 어린 침묵으로 증언하고자 한다. 혐오 어린 침묵 속에서는 터키 이민자 세탁소 노동자와 대학교 교수가 나란히 서서 정확히 똑같은 선언을 할 수 있다. 설명을 해야 하는 순간, 저항은 다시금 특정 계층의 사안이 되고 선량들의 업무가 되면서 피상적으로 변해버린다. 나는 평화에 대한 다변을 늘어놓는 음모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특정한 사안 앞에서 혐오 어린 ― 나의 혐오가 눈에 띄게 할 수 있다면 ― 침묵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가 “나 자신에게 휘발유를 끼얹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정말로 이해한다. 나는 정말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미심쩍은 ― 대부분이 미심쩍다고 생각할 ― 예전禮典을 꺼내놓지 않고도 자신의 혐오 어린 침묵을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주고 싶다.
- 「세계 속의 증인 역할」 중에서

내가 이렇게 말하면, 곤궁한 사람들을 보살필 마음이 없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이 순간 에티오피아에서 굶주려 죽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요?” 내가 그들을 보살필 마음이 없다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즉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칼로리에 대해 말을 꺼낸다. 심지어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요구사항을 나열한다. 나는 이런 경우를 점점 더 자주 보게 된다. 10년 전 사람들은 “굶주린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하는 말로 내게 대꾸했다. 이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더이상 굶주리지 않는다. 그들은 가장 근본적인 실존적 요구사항이 충족되지 않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뀌었다.
굶주린 사람들을 칼로리라는 관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의 체제 관리자가 된다. 우리는 생명선을 끄고 켤 힘을 지니고 있다고 느끼는, 또는 적어도 그 힘을 지녀야만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된다. 그것을 켤 수 있는 사람은 또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우리가 보내는 물자에 의존하고 있다는 환상은 어마어마한 허영심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빵 한 조각이 들어가게 될 굶주린 입 하나하나로 생각하는 대신 톤이라는 단위로 말하기 시작한다.
- 「오만의 마지막 미개척지대」 중에서

책 정보 별 바로가기 : 책정보  리뷰 (5) 가격비교 (0) 추가정보  책꼬리 (0) 한줄댓글 (0) 맨위로

책꼬리

책꼬리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거나, 연관된 책끼리 꼬리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와 연관된 책이 있다면 책꼬리를 등록해 보세요

책 정보 별 바로가기 : 책정보  리뷰 (5) 가격비교 (0) 추가정보  책꼬리 (0) 한줄댓글 (0) 맨위로

한줄댓글

책속 한 구절

0/200bytes

퀵메뉴

TOP

서비스 이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