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기호,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사를 읽고 쓰다
"오로지 홀로(獨) 살아(GO) 간다는(DIE) 것,
그것이 곧 인생의 본질이다!"
신세대 작가 중 입담 하면 제일 아닌가, 하고 손꼽히는 젊은 작가 이기호의 첫 번째 산문집 『독고다이』를 펴낸다. 『최순덕성령충만기』나『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처럼 앞서 펴낸 소설집의
제목에서도 일견 예견이 되어온 바, 무엇보다 그는 어떤 재미란 것을 몸으로 아는 자이다. 이때 몸으로 안다는 것은 몸에 꼭 끼는 불편함을 버릴 때의 자유로움을 알아 몸의 그 유연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릴 줄
아는 일일 터, 『독고다이』는 바로 그 산문의 원형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고다이', 이는 일본어순화어로 '특공대'란 뜻을 가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따져 일차적인 풀이를 하자면 적을 공격하기 위해 특별히 편성하여 훈련된 부대란 의미일 것인데, 이기호의 산문집 제목을 이로
잡은 것은 위의 의미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데에 더 큰 의의를 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특별히 공격할 것도, 그럴 필요도 없는 이 세상사,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고로 잘사는 일보다 착하게
사는 일의 귀중함을 하루하루의 소박한 일상 속에서 건져내고 그대로 말려서 우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줌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원고지 5장 안팎으로, 고작해야 한 뼘 정도의 책이지만 그 안에서 빚어지는 우리네 인생사는 삶과 죽음이라는 극과 극을 넘나들며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풍요롭기 그지없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일과 누구나 한번쯤 견뎠을 일을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하여 살짝 기록하였을 뿐인데,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걸 아는데도 새롭고 또 새롭다. 물론 저자만의 맛깔 나는 문체가 한 몫을 하기로 했겠지만 속된
표현으로 일명 '후까시'를 잡지 않는 데다 글에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강박과는 너무 먼 당신이기도 할 테다. 인생사, 경험만한 약이 없다는 걸 저자는 일찌감치 알아차린 연유일 테다. 이러한 솔직함, 그럼에도 속되지
아니하고 맥락 없이 가볍지 아니하며 팽팽한 패기로 탱탱한 이 글을 나는 젊음이라는 말랑말랑한 감각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감각을 따라가는 글쓰기, 이기호의 산문에는 생활개그 속 달인처럼 지치지 않는 유머가 있어
더욱이 건강하다.
이 책은 소박한 한 가장의 일기라도 해도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기호생각'으로 요약되는 글이라고 해도 좋겠다. 대신 이 책을 읽고 문구점으로 달려가는 가장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원고지 1장이면
어떻고 2장이면 어떠랴. 하루하루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다면 휘갈긴 메모 한 줄이라면 어떠랴.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삶에 지칠 때 반짝, 하고 별처럼 여전히 빛나는 우리 착한
마음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자양강장제가 또 어디 있으랴. 결국 우리는 우리들의 힘으로서야 일어설 수 있는 것을, 그래야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힘차게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을.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감 넘치는 그의 글 솜씨만큼 책장을 넘기는 데 있어 가속을 붙게 하는 힘은 젊은 화가 강지만의 그림 덕분이기도 하다. 그가 이 책에 쏟아 놓은 인물들의 다양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저자보다 교정 원고를 더 자주 더 꼼꼼하게 읽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과장이 아닌 사실.
아침 출근길에, 저녁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어떤 것을 읽어야 하나, 책장 앞에 책상 앞에 오래 서성거리게 된다면 일단 집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가 흥미진진 사 읽게 되는 세상 모든 소설들이 바로
우리들 삶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책이 바로 여기 있다고, 그러니까 일단 한번 읽어보시라고 적극 안겨주고 싶은 책이다. 왜냐하면, 브라보, 마이 인생아! 소설가 이기호가 우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려고 쓴 책이니까!
[저자의 말]
1년 넘게 한국일보에 '길 위에 이야기'란 이름으로 연재된 글들을 여기에 모은다. 시의적인 것들은 대부분 뺐고, 나머지는 그냥 그대로, 교정을 보지 않고 실었다. 연재된 글이었으니, 나만의 기억은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부끄러워도, 그냥 그대로.
원고를 정리하다 보니, 나란 인간이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너무 쉽게 타인에게 말을 걸었고, 너무 편하게 그들을 나와 동일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했다. 말을 좀 더 줄이고,
대신 어깨를 내어주어야 할 텐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어쨌든 지금은 그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소설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연재 때문인가 싶었는데, 돌아보니 그냥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알리바이가 필요해서, 부끄럽지만 이렇게 책을 묶는다. 김민정 시인이 기꺼이 공범
역할을 맡아주었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붙잡혀가더라도 끝끝내 김민정 시인의 이름은 불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 다짐해둔다. 그림을 그려준 강지만 화가께도 따로 인사의 말을 전한다.
연재를 시작했을 때,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온종일 나를 쫓아다니느라 바쁘시다. 아이 때문에, 아이 핑계로, 글을 쓰진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 때문에 원고를 쓰진 않겠다. 그것이 내가, 내가 쓴 글에 대해서 갖는, 작은 윤리이다. 여기, 그 안간힘의 기록들이 있다.
2008년 여름 이기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