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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의 기록이자 명상의 기록!
장석주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오랫동안』.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슬픔과 분노, 절규와 고백을 결합한 순정하면서도 격정적인 시를 써온 저자의 이번 시집은 노자와 장자에 대한 주석 달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이후부터 방대한 독서와 동양 사상에 대한 깊은 천착을 바탕으로 삶의 관조와 사유를 시 속에 담아낸 저자는 55편의 신작시를 통해 주역시편과 더불어 언어의 한계, 인식의 한계까지 꿋꿋하게 나아가고자 했다. 삶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체험을 수반하고, 삶을 관조하며 그것의 비의를 찾아내는 깊은 시선을 담아낸 ‘하루-주역시편ㆍ202’, ‘슬픔의 고고학-주역시편ㆍ991’, ‘느리게 걷자-주역시편ㆍ515’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1부
하루-주역시편ㆍ202
가정식 백반-주역시편ㆍ1
저녁들!-주역시편ㆍ4003
입술-주역시편ㆍ15
좀비들-주역시편ㆍ33
내 안에서 태어난 들개가 산 너머에서
울다-주역시편ㆍ1001
‘패배’라는 말-주역시편ㆍ310
‘여름’이란 말-주역시편ㆍ130
물들다-주역시편ㆍ18
나쁜 혈통-주역시편ㆍ139
일요일-주역시편ㆍ56
2부
슬픔의 고고학-주역시편ㆍ991
팥죽-주역시편ㆍ666
강의 서쪽-주역시편ㆍ108
등-주역시편ㆍ201
뒤편-주역시편ㆍ327
느리게 걷자-주역시편ㆍ515
서쪽-주역시편ㆍ625
소년 부처-주역시편ㆍ2
모자-주역시편ㆍ83
달 아래 버드나무 그림자
-주역시편ㆍ98
금릉 가는 길-주역시편ㆍ8
늦가을 저녁부엌-주역시편ㆍ11
엎드린 사내-주역시편ㆍ543
장롱-주역시편ㆍ333
이주노동자들-주역시편ㆍ777
악덕-주역시편ㆍ805
귀래관 104호-주역시편ㆍ908
3부
‘스미다’라는 말-주역시편ㆍ295
더는 아무도 살지 않는-주역시편ㆍ404
묵밥 1-주역시편ㆍ4005
묵밥 2-주역시편ㆍ1808
달의 사막-주역시편ㆍ199
언젠가-주역시편ㆍ700
꽃의 종언-주역시편ㆍ999
거울과 계단-주역시편ㆍ203
삼월의 달-주역시편ㆍ55
잎과 열매-주역시편ㆍ133
얼음과 서리-주역시편ㆍ134
입춘-주역시편ㆍ19
김종삼 전집-주역시편ㆍ22
‘운다’라는 말-주역시편ㆍ23
문장들-주역시편ㆍ230
그림자 제국-주역시편ㆍ262
돌의 정원-주역시편ㆍ360
4부
저 바다-주역시편ㆍ101
바다로 쏟아지는 바다-주역시편ㆍ7
감-주역시편ㆍ3
안성-주역시편ㆍ177
금목서를 품은 저녁들-주역시편ㆍ31
네 눈썹-주역시편ㆍ45
당나귀-주역시편ㆍ905
연애-주역시편ㆍ263
구월의 아침들-주역시편ㆍ10
구월의 작별들-주역시편ㆍ28
해설 |역(易)과 시(詩)ㆍ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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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랫동안`…주역의 세계를 차용한 음양의 시편](http://photo-media.daum-img.net/201202/28/citylife/20120228160538111.jpg)


![[문학예술]“주역에게 따귀 맞으며 썼지만… 개밥의 도토리”](http://photo-media.daum-img.net/201202/04/donga/2012020403131855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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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삶, 서로 다른 두 개의 중심을 갖는 음양의 시편
생이라는 거대한 추상 속을 오직 문자(文字)라는 홑겹의 옷을 걸치고 맞서고 있는 그의 구멍과 틈새에는 늘 위험하고
불길한 “조짐”이 번쩍거릴 뿐이다. - 문정희ㆍ시인
이 시집은 너무도 넓고 크다. 이 시집 안에 천지가 있다. 물론 이 시집이 천지는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세계의 어떤
부분을 건져 올리고 싶다면 이 시집을 그물로 써도 좋을 것이다. 점괘 대신에 세계의 전변하는 패턴을 얻을 것이니 .
- 권혁웅ㆍ시인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칼럼니스트, 방송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독서와 인문학적 사유를 멈추지 않는 장석주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 『오랫동안』이 문예중앙시선(013)으로 출간되었다. 지난 시집 『몽해항로』를 출간한 이후 1년 만에 발표하는 이번 시집에는, 55편의 신작시들이 실려 있다. 장석주 시인은 슬픔과 분노, 절규와 고백을 결합한 순정하면서도 격정적인 시를 써왔다. 첫 시집『 햇빛사냥』(1979)부터『완전주의자의 꿈』(1981),『 그리운 나라』(1984),『 어둠에 바친다』(선집, 1985)까지 초기시들은 아름답고 아프고 쓸쓸하면서도 황홀한 시편들이다. 권혁웅 시인은“ 우리 시사에‘ 순결하고 젊은 영혼’이라는 이름에 가장 잘 들어맞는 시인들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윤동주, 장석주, 기형도, 이렇게 셋을 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0년 이후부터 시인은 방대한 독서와 동양 사상에 대한 깊은 천착을 바탕으로 삶의 관조와 사유를 시 속에 담아내고 있다.‘ 주역시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번 시집 역시 노자, 장자에 대한 주석 달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삶은 온전히 책읽기와 글쓰기에 바쳐져 있다. 삶을 관조하고 그것의 비의를 찾아내는 깊은 시선이 이로부터 나온다. 또 이는 삶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의 생체험을 수반하고 있다. 그리하여 체험의 기록이면서 명상의 기록인, 놀라운 깊이의 시집이탄생했다.
징조와 해석과 적용이 불가한 세계의 천변만화를 기술하는 시
나는 우연으로는 견딜 것이다.
입술과 그 그림자들을
필연으로는 견디지 않을
것이다.
- 「입술-주역시편ㆍ15」 부분
시인은“ 『주역』을 안다 하면 십중팔구 가짜고, 모른다 하면 어리석다.”「( 시인의 말」)고 말한다. “작은 앎”에 기대었던 시간들을 지나 『주역』을 읽고부터 큰 모름 속에 뿌리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큰 모름”의 토양에서 싹 틔운 그의 시들은 생활세계 속의 무늬들을 보다 넓게 읽고 그대로 품어낸다.“ 우연”과“ 필연” 사이의 견딤을“, 불운”과“ 행운”의 동행을, “불가사의”의 불가사의를. 권혁웅 시인은 이 주역시편들이 첫째, 숨은 인과가 있음을 인정하고, 둘째, 표면적인 인과만을 인정하고, 셋째, 운명에 자유의지를 포함하는 방법으로 “징조와 해석과 적용이 불가한 세계의 천변만화를 기술”하고 있다고 말한다.(권혁웅 해설, 「역(易)과 시(詩)」)
어린 가수들이 팔과 다리를 꺾는 춤과
립싱크 노래가 흐르는 동안,
아버지의 손톱이 자란다.
서대문 적십자병원 중환자실은
아버지가 누추한 몸을 마지막으로 의탁한 암자(庵子)였다.
- 「팥죽」부분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그 와중에도 손톱이 자란다. 죽음의 끝자리에서 관찰
되는 손가락 끝의 저 성장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인
은 이를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라 부정하지 않고, 알 수 없음 자체를 긍정해버린다.(권혁웅 해
설,「 역(易)과 시(詩)」)
이미 얼면
얼지 않네.
늦지 않으려면 늦어야 해.
가지 않으려면 가야 해.
오지 않으려면 와야 해.
죽지 않으려면
죽어야 해.
- 「달 아래 버드나무 그림자」부분
이미 얼어 있으면 얼게 되는 과정은 발생하지 않으며 이미 늦었으면 늦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이 모순을 밀고 가면“ 죽지 않으려면/죽어야 해”와 같은 극단에 이른다. 사실 이것은 4연에 이르러“ 살면 살아지네”와 같은 비대칭적인 진술을 끌어내기 위한 전제다.(권혁웅 해설, 「역(易)과 시(詩)」)
2할 5푼을 치는 타자에게는 2할 5푼의 인생,
3할 7푼을 치는 타자에게는 3할 7푼의 연봉,
타석에 서지 못한
연습생 타자에게는 연습생의 고독이 있다.
이번 생에 불운이 있었고
그보다는 더 자주 행운이 따랐다.
빈 궤적을 그리는 헛스윙들,
그 많은 실패들이 다정한 까닭이다.
- 「좀비들」부분
시간을 지배하는 운명은 가장 타락한 형태의 결정론이다. 주역의 속화된 가르침을 깨고, 주역의 안팎에서 세계의 모습을 세우기 위해서 시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를, 그것도 순 수한 실패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권혁웅 해설,「 역(易)과 시(詩)」)
시인 인터뷰│
- ‘ 주역시편’이라는 부제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물이 가까운 땅에 내려와 살며 내가 마음을 벗어나 마음 밖에 나가 있는 날들이 잦을 때 닥친 시름 없는 낮 동안에 『노자』, 『장자』를 읽다가 『주역』까지 읽게 되었고(첫 느낌은 느닷없이 따귀를 연거푸 얻어맞은 듯했다), 자연스레 『주역』의 화법을 시로 가져다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소박했다. 유시(酉時)의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주역시편’을 시작할 때『 주역』이 좋은 시적 프레임이 될 수도 있다고 기특해했다. 『주역』은 흐름이 없는 흐름이고 체계가 없는 체계며, 이를테면 다이내믹 이퀼리브리엄(dynamic equilibrium)이다. 『주역』의 세계에서 안은 밖이고 밖은 안이다. 없는 것은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니
고 너는 네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더러는 간뇌(間腦)가 열려 육십갑자를 애써 짚지 않아도 오는 신과 나가는 신, 땅의 울퉁불퉁한 기운이 보였다. 여러 젊은 벗들의 도움을 받아 뜰에 연못을 파고, 닭 몇 마리를 슬하에 끌어들인 것도 삼재(三災)를 넘으려는 주문이었다. 『주역』을 읽은 뒤로 꿈속에서 간방(艮方)의 옆구리를 더듬고, 내 횡격막 아래에서 뜨는 해와 뜨지 않는 해의 길흉을 짚어보며, 뱀을 부르면 뱀이 나타나고 옛벗을 부르면 옛벗이 나타나는 영험함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게 산을 등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놓고 사는 자의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역시편들은 결코『주역』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쓴 게 아니다. 깨달음이란 정말 가당치 않다. 오히려 『주역』을 읽으면서 부딪친 게 무지의 캄캄함, 혹은 내 안에 있던 무지의 길이다. 무지는 현무암같이 단단하고 오래된 것이다. 무지는 무지로써 돌연하게 편안했다. 굳이 『주역』에 불가사의한 내 운명을 의탁해서 해석하지 않으려 했다는 게 맞다. 오히려 해석의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해석할 수 없는 것을 해석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주역』을 읽을 때 편안해졌고, 그 편안함 속에서 지식의 덧없음을 덜어내었다. 『주역』 64궤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현관(玄關)의 발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적어 내려간 주역시편은 배로 기는 뱀 발이며 개밥에 얹힌 도토리에 지나지 않는다.
- 이번 시집의 시들을 언제부터 준비하여 집필하였는지.
2009년 여름 무렵부터 쓰기 시작하여 2011년 말까지 썼으니, 3년이 채 못되는 시간이다. 그동안 지우고 쓰고 다시 지우고 썼다. 그 시간이라면 염소의 뿔이 녹고 곤륜산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에도 충분하다. 『주역』을 읽기 시작한 건 7, 8년쯤 된다. 빈이무첨(貧而無諂)의 나날들에 피리를 불 듯 인생박물지를 적어 내려간 주역시편은 총5 5편이다.
- 이번 시집에서 가장 의미를 두는 점은.
『주역』은 문장의 귀감이고, 만물조응언어들의 보고(寶庫)다. 『주역』을 붙들고 꾸역꾸역 읽는 것만으로도 밥맛이 돌아오던 때가 있었다. 물론 『주역』의 문장들로 내 언어의 감수성을 벼리고, 직관의 힘들을 깨우치고자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삶의 생동하는 찰나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덧없긴 하지만, 삶은 찰나에 나타나는 삶의 징후들이다. 주역시편들은 그 징후들을 포획하는 장치였다. 주역시편과 더불어 언어의 한계, 인식의 한계까지 꿋꿋하게 나아가고자 했다는 것! 주역시편을 쓰는 것보다 그 뒤에 붙이는 숫자를 적는 게 더 어려웠다. 물론 숫자들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 숫자는 부작위에 의한 작위의 식별기호들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그걸 아무 생각 없이 적어 넣는 바로 그 시각의‘ 거울’이 되기를 바랬다.‘ 노래계’에 주역시편의 일부를 올렸으니, 올봄에는 매화 몇 그루를 심고자 한다.
추천사 │
머리를 삭도로 밀어버리고 차갑게 반짝이는 빙설 속으로 걸어가는 그를 보았다. 그는 시인이 아니라 시의 질풍노도인지도 모른다. 생이라는 거대한 추상 속을 오직 문자(文字)라는 홑겹의 옷을 걸치고 맞서고 있는 그의 구멍과 틈새에는 늘 위험하고 불길한“ 조짐”이 번쩍거릴 뿐이다.
그 눈부신 “조짐”을 생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시인, 그래서 그의 시는 철학 혹은 현실, 명상과 관조 무엇을 노래하건 그것이 곧 슬픔의 고고학이 되고, 빙설 속 벌거벗은“ 몸”이 된다. 그의 시집 『오랫동안』의 숲 속을 거니는 동안 오도도! 떨려오는 전신을 두 팔로 깊이 감싸안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 문정희ㆍ시인
장석주는 윤동주, 기형도와 함께 영원한 청년시인이다. 그의 주역시편이 패배를 예찬하는 까닭,“ 그 많은 실패들이 다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패배’를 더는 모르는 불행을!”(「‘패배’라는 말」) 이것은 불행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패배의 최종적인 국면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너는 네 배후로 불굴의 패배를 부양하는구나 패배를 배우지 못한 것들이 거들먹거린다.”「( 잎과 열매」) 이것은 패배하겠다는 의지야말로 진정한 자유의지임을 말한다.“ 모든 실패는 어리고 순진하다.”(「서쪽」) 이것은 실패에만 순수한 최초의 자유의지가 깃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그것의 집적만이 운명을 만들어낸다. 점쟁이들은 이 운명이 시간을 복속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시간을 지배하는 운명은 가장 타락한 형태의 결정론이다. 주역의 속화된 가르침을 깨고, 주역의 안팎에서 세계의 모습을 세우기 위해서 시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를, 그것도 순수한 실패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 권 혁웅ㆍ시인
그림자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평선은 가장 먼 곳에 있다.
먼 곳은 바라보지 않으므로 더 이상 먼 곳이 아니다.
내 안의 우울이 우물이 되고
고독은 차라리 천직이 되었을 때
가끔 무릎을 꿇고‘패배’라는 말을
혼자 되뇌곤 했었지.
나는 스무 살 이후 길을 잃었다.
갈 수 없는 길들이 술 마시게 했다.
이 빠진 술잔들에 입술을 대며
더는‘패배’라는 말을 쓰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땡볕에 얼굴과 팔이 그을린 여름 소년은
무지개라도 먹고 싶었다.
어린 시절 뒤를 돌아보면
흙속에 묻힌 사금파리들이 반짝거리듯
미래가 보였지.
반쯤 뜬 눈으로 지나간 노란 꽃들을 바라보자,
‘패배’를 더는 모르는 불행을,
내일의 내일이거나
혹은 사물들의 사물들을!
- 「‘패배’라는 말-주역시편ㆍ310」 부분
저지방 우유를 마시고
너와 물 마른 강가를 거닐고
너와 헤어질 거야.
그 거리에 바람이 불면 너를 그리워할 거야.
너를 잊고.
다시 너와 만날 거야.
너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거야.
어느 날 망치들이 소녀의 머리를 내려치지.
소녀의 사생활은 산산이 깨져버리지.
외할머니들은 세상을 뜨시겠지.
이태 뒤 혹은 삼 년 뒤에.
겨울이 오면 산은 밤새 북풍에
떨며 울 거야. 그다음
미친개와 뻐꾸기들과 바람난 꽃들이 깔릴 거야.
헌 옷들에서 단추가 떨어지고
쌀독은 바닥이 드러날 거야.
민들레꽃들 사이에서 너는 웃고 있을 거야.
없는 너,
없는 너,
네가 사춘기의 소녀라면 아마 나는
얼굴이 빨개질 거야.
늦여름 저녁 바람이 불고
수수밭 수수들이 큰 키를 휘며 누울 때
나는 너를 기다릴 거야.
나는 너를 기다리지 않을 거야.
- 「언젠가-주역시편ㆍ700」 전문
죽는 것은 태어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영안실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최경량급 우울을 상대하는 일도 버거워서
시냇물의 노래에나 귀 기울인다.
나는 지금 자주 우울하고
권태의 가장 긴 구간을 통과하는 중이다.
- 「거울과 계단-주역시편ㆍ203」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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