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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시인의 열 두번째 시집. 유안진 시인은 시가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1941년)하였다. 시 74편이 수록된 시집 <다보탑을 줍다>는 여성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진정한 나'를 찾는다. 여성적 정체성을 탐구하며, 세속에서의 구원을 모색해온 유안진 시인은 일상생활의 문맥에 숨은 여성성과 사회성의 억압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또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이면과 교육현실의 전도된 측면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시집이다.
제 1 부
비 가는 소리
다보탑을 줍다
나이가 수상하다
물오징어를 다듬다가
박수 갈채를 보낸다
내가 가장 아프단다
나를 만나러 너에게 간다
위궤양
현관에서 다 안다
나이 계산법
예외를 발견하다
주소가 없다
나는 늘 기다린다
별전 창세기
벌건 착각
코스모스 학교길
며느리
33
도깨비를 기다리며
무지개를 읽다
부석사는 건축되지 못했다, 그래서
제 2 부.
나의 천국은
내가 나의 감옥이다
실언
벽화 그리는 술독
팔자를 생각하다
히프의 길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
나는 본래 없었다
콩꺼풀
퇴계 선생의 미소
고흐 꽃
물고기가 웁디다
삐까소 전을 보고
입 없는 돌
간고등어 한손
숙녀의 조건
선녀의 선택
나무꾼의 알림글
전문가
추억, 너무 낭비하지 말자
갈색 가을, 샹송의 계절에
나는 살아 있지 않았다
칠박자로 하는 말
과거를 잘라내며
첫 도둑질의 증거물
곡선으로 살으리랏다
가까워서 머나먼
눈 밖에 나다
제 3 부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밥상 위의 마술
순대도 경전인가
심야의 피크닉
말의 잠을 위하여
참이슬을 마실 때마다
야호
주생전
구두 무덤
장날 장터에서
어머니의 물
미소론
빨래꽃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
물고기
지도책 읽기
이어도를 찾아서
희망을 줄여서 불행감도 줄이자
허수아비
포스트모던한 이별식
방생이 이루어지는 곳
계면조의 성탄 캐럴
있는 내가 없어지는 서울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물공 몸
해설 / 정효구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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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정체성을 탐구하며 세속에서의 구원을 모색해온 유안진 시인이 열두번째 시집 『다보탑을 줍다』를 창비에서 펴냈다. 『봄비 한 주머니』(창비)를 낸 지 4년 만의 결실이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작 40여년에 이르는 시인이지만 시 앞에서의 방황과 고뇌는 어느 젊은 시인 못지않게 치열하다. 지난 시집에서 번뜩이는 감각으로 여성적 삶의 위기의식을 드러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생활의 문맥
구석구석에 숨은 여성성과 사회성의 맥락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
여성적 정체성의 위기에서 촉발된 내면의 드라마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은 전 시집의 연장선에 있다. 「며느리」에서 시인의 인식은 통렬하면서도 경쾌하다. 시인은 "딸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며느리가 되고" 만 화자의 처지를 꽃병에 꽂힌 장미에 비유해놓고, 그 장미꽃 같은 며느리는 "산 사람보다는 귀신들과 더 자주 밤"을 새우고 "제삿상만 책임"진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그것을
아우르는 해학의 공존에서 한발 더 나간다. 장미꽃의 비유를 "나"에게로 끌어와 "내가 나를 결정할 수 없는 여기", 다시 말해 여자도 아니고 딸도 아닌 '며느리'의 삶을 강요해온 것이 세상의 질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적 삶을 거울로 삼은 "참 나"에 대한 거침없는 진술은 이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 늘 기다린다」에서 "나"는 늦은 밤 아이들의 귀가를 걱정하는 어머니다. 이 초조한 기다림은 스스로가
어머니라는 인식을 통해 묘하게 역전된다. 내가 기다리는 대상은 아이들이었지만 본질적인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 역전을 통해 어머니로서의 나는 비로소 개성을 되찾는다. "도대체 어떤 나를
기다리느라(…)안절부절 서성거리는 걸까"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자아찾기의 입구에 선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현관에서 다 안다」 역시 여성적 통찰이 빛나는 시다. 이 시에는 현관문을 들어서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이 어머니는 현관에 이리저리 나동그라진 신발만 보고서도 가족의 현 상태며 기분이며 성격을 다 안다. 비록 어머니의 발은 작지만, 그 통찰의 품은 누구보다 넓다는 시인의 발견에서 우리는 무릎을 치게 된다.
이 밖에도 시인은 생활의 단편에서 "참 나"를 향한 깊은 성찰에 이르기도 하고(「물오징어를 다듬다가」), 전래동화를 고쳐 쓰는 우화적 시편을 통해 남성-여성의 대립각을 묘하게 꼬아보기도 하며(「숙녀의 조건」 「
선녀의 선택」), 여성적 드라마의 무대를 '나'에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까지 넓혀놓기도 한다(「첫 도둑질의 증거물」 「어머니의 물」).
잔잔한 삶에 던져진 파문을 날카로운 응시로 담아낸 시들도 많다. 신경림 시인은 "현상을 걷어내고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에 유안진 시를 읽는 재미가 있다"면서 비가 멎는 소리에서 소멸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본 「비 가는 소리」, 떨어진 동전 한잎에서 사람살이의 보편적 진실을 깨닫게 하는 「다보탑을 줍다」 같은 시를 높이 평가했다.
사회적 발언은 이 시집의 또다른 한축을 이루고 있다. 「부석사는 건축되지 못했다, 그래서」는 한국현대사의 이면을 '날아다니는 돌〔浮石〕'에 빗대어 뭉클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에서는 우리 교육현실의 전도된 측면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정효구는 '진아(眞我)'를 찾아 정성을 다하는 시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시인이 줍고 싶어하는 '다보탑'의 진정한 의미는 '자유'와 '고요'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발 닿는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을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표제 시 <다보탑을 줍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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