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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보 :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종이책
존 라베 난징의 굿맨


John Rabe: der gute deutsche von nanking

네티즌 평점

4명
9.5
평점주기
저자
존 라베, 에르빈 비케르트 지음 | 장수미 옮김 | Rabe, John 원저자
출판사
이룸
2009-04-09 출간 | ISBN 10-8957074449 , ISBN 13-9788957074442 | 판형 A5 | 페이지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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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 중국 난징의 독일인 '부처' 존 라베의 일기!

난징대학살 기간 일본군의 만행을 여과 없이 적어 낸 독일인의 일기 『존 라베 난징의 굿맨』. 히로시마 원폭 투하나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같이 주목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아야 할 난징대학살. 폭력과 강간 대량살상의 위기에 몰린 중국인들의 단 하나의 보호막은 존 라베였다. 그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회사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수만 명의 중국인을 위해서 난징에 남는다.

존 라베는 일본의 잔학한 행위를 그대로 일기에 적고 있지만, 일본인에게 전쟁의 책임을 모두 떠넘기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일본인들 역시 그들만이 역사적 사명으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고, 그 상황이라면 어느 누구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신의 잣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 라베의 일기는 일본군의 만행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속성과 전쟁에 대해서 무거운 질문을 던져준다.

이 일기가 발견된 것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히틀러를 존경했던 존 라베의 단면적인 모습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히틀러를 존경했던 이유는 히틀러의 부각된 인도주의 측면을 오해해서 존경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강간과 학살이 묵인되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망치지 않고, 중국에서 독일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셀 수 없이 많은 가난한 중국인을 살려낸 존 라베를 만난다.

저자소개

▶▶ 저자
존 라베(John Rabe)

1882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908년부터 1938년까지 중국에서 살았다. 그는 난징대학살 당시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 의장으로서 25만 명의 중국인들을 보호했다. 중국인들은 그를 ‘살아 있는 부처’라 칭했다. 나치주의자였던 그는 1938년 비밀경찰 게슈타포로부터 난징대학살에 대한 침묵을 명령받았으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탈(脫)나치화 신청이 거부되기도 했다. 그는 1950년에 베를린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

▶▶ 편저자
에르빈 비커르트(Erwin Wickert)

1976년~1980년까지 중국 주재 독일 대사를 지냈으며, 1982년에는 『내부에서 본 중국』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그는 1936년 난징에서 처음 라베를 만났고, 1945년 이후부터는 독일 외무부 문서고에 있는 라베의 일기와 서류들을 조사하여 그의 일기를 시대사적 배경 속에 자리매김하는 작업을 하였다.

▶▶ 역자
장수미(張秀美)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으로 석, 박사과정 수료.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방송영화학, 미술사, 교육학으로 마기스터 학위 취득. 괴테-인스티투트에서 GDS(독일어 최고 과정 자격증) 취득. 영남대, 경원대, 대진대 등 출강.

목차

이 책에 대하여
프롤로그

존 라베의 난징 일기
학살의 전조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 결성
공격을 기다리며
잔학행위의 시작
크리스마스
새해
외교관들의 귀환
지멘스 난징 지사 폐쇄
안전구 폐쇄
살아 있는 부처
작별

독일에서의 존 라베

존 라베의 베를린 일기

에필로그

1937년의 독일과 중국
히틀러가 평화의 전령?
존 라베는 나치였나?
폴라 타 데이나
존 라베의 마지막 몇 해
일기의 발견

부록
기록물


옮긴이의 말

미디어 서평

출판사 서평

야수의 시대에 쓴 인간의 기록
25만 중국인의 목숨을 구한 나치의 일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존 라베> 일본 상영 금지

▶▶ 20세기의 숨겨진 홀로코스트 난징대학살


1937년 12월, 중국의 수도 난징이 함락당했다. 3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 2~8만여 명의 여성이 일본군에 강간당했으며 칼로 목 베기, 산 채로 매장하기, 몸을 반쯤 구덩이에 파묻고 밖으로 나온 부분을 군견들이 물어뜯게 하기 등 각종 잔인한 방법들로 학살을 자행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한일병탄, 청일·러일전쟁 등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중국침략은 그러한 자신감만이 뒷받침해준 것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내재되었던 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기아, 이민과 같은 충격적인 대내적 위기는 오히려 그들의 시선을 국외로 돌리게 만들어 일본의 급진적 민족주의자들로 하여금 대중국 침략 계획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1937~1938년의 끔찍하고도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당시도 그랬지만 아직까지도 난징대학살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나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같은 주목을 받지는 못해왔다. 피해국인 중국조차 한동안 일본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당이 집권한 중국이나 대만은 일본으로부터 각자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아무런 피해 보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있어 수십만 중국인의 목숨보다는 당시 동아시아의 역학 관계와 공산주의를 경계할 수 있는 일본과의 우호관계가 더 중요했다.

1937년 겨울, 일본군이 난징에 입성하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중국 사회의 상층 계급들이었다. 정부 관계자들과 군인, 경찰 등등. 그들은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 가장 안전하고 먼 곳으로 도망쳤다. 남겨진 것은 가난한 민중들뿐이었다.
그리고 몇몇 외국인들. 그들은 소위 안전구(安全邱, safety zone)라는 것을 만들어 폭력과 강간의 위협에 노출된 수십만의 사람들을 보호했다.
외국인들 중에서 특이하다 못해 가장 신비스러웠던 인물이 바로 ‘존 라베’일 것이다. 그는 나치당원이었다. 일본군의 폭격에 맞서 나치당기를 펼쳐든 나치였다. 그는 히틀러의 이름으로 중국인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나치의 동맹국이던 일본이었다. 가히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라베의 도움을 받은 중국인들에게 있어 그가 펼쳐들었던 나치 깃발은 마치 부처님의 ‘卍’ 자와 같았으리라. 실제로 그는 학살 당시 수많은 중국인들로부터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도 어려웠던 시대에 라베는 인간 이상의 존재로 추앙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독일로 돌아온 라베는 즉각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난징에서 보낸 문서와 일기가 문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국에서 그는 마치 유배자와 같은 생활을 지속하다 쓸쓸히 죽어갔다. 사람들은 라베를 잊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중국의 몇몇 사람들만이 그를 추모하며 애도하였다.

▶▶ 존 라베, 난징 그리고 잊혀짐

라베의 일기가 발견된 것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라베가 나치 당원이었다는 사실과 히틀러를 훌륭한 지도자로 믿고 있었음을 피력한 일기 부분들이 문제시되었기 때문에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편저자 에르빈 비커르트는 라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기의 발견에 있어서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방대한 양의 일기들 중에서 라베의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를 전면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내용들을 선별하였다.
난징대학살 기간 일본군의 만행은 우리에게 인간의 속성과 전쟁에 대해서도 무거운 질문을 던져준다. “현대전은 지상의 지옥이다”라고 라베는 썼다. 1929년의 세계적 공황 이후 만주사변, 중일전쟁, 히틀러로 확대된 제2차 세계대전은 수천만의 목숨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전후의 열전 및 냉전을 거쳐 아직 그 연장선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현대전의 의미와 평화의 기반에 대한 질문은 이 책이 던지는 또 다른 화두일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이 전쟁범죄의 진실에 대해 알게 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의 비행을 일본 민족의 죄로 짐 지우고, 일본 민족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면, 그러면서 동시에 그런 잔학행위는 일본인들만의 문제라고 결론지어진다면 그것은 이 책의 목적한 바와 전혀 동떨어진 결론이 된다.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특별한 경향이 있다고 얘기되는 몇몇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만이고 독선일 것이다.

▶▶영화

“Wer ein Leben rettet, rettet die ganze Welt.”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사람은, 세상도 구할 수 있다”


『존 라베, 난징의 선한 독일인John Rabe, Der gute Deutsche von Nanking』의 개정판은 2008년 10월과 2009년 3월에 독일에서 출판되었다. 1997년의 초판은 독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국어로 동시(영어는 1998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네덜란드에서도 번역되었다. 라베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존 라베>는 오스카 수상 감독인 플로리안 갈렌베르거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 독일, 중국, 프랑스 3개국 합작으로 제작되어 2009년 4월 2일 독일, 4월 28일 중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10월에 있을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될 것으로 보이며,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서도 곧 개봉할 예정이다. 독일의 유력 언론인 슈피겔(Der Spiegel)은 영화 <존 라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유럽에서 파괴를 일삼던 나치의 깃발이,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러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이 책과 영화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존 라베는 수많은 역경 앞에서 좌절했지만, 끝내 휴머니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것은 어떤 종교나 이념의 발로로서가 아니라 단지 양심에서 나온 인간애의 구현이었기 때문이다.” 슈피겔Der Spiegel

독일인들에게 나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상징들은 하나의 터부와 다름없다. 그리고 존 라베는 나치였다.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빨리 그를 잊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독일인들은 커다란 충격 앞에 서게 되었다. 정상적인 나치들이 자신들의 깃발 아래 타인의 목숨을 이용하였다면, 이 비정상적인 ‘나치’는 타인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깃발을 이용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 한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언론 사이트인 <중국망>에 따르면 영화 <존 라베>의 일본 개봉이 결국 무산되었다고 한다. 25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적 비극인 난징대학살에 대해 가해국인 일본은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왜곡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우익들은 영화 <존 라베>에 출연한 일본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고 있으며, 그것은 『난징의 강간』을 쓴 미국의 여류 작가 고(故) 아이리스 장(Iris Chang)에게 그랬던 것과 유사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리스 장은 그녀의 책을 출간하고 난 후, 심한 정신적 압박감과 협박에 시달려 자살하였다.

▶▶ 해외 서평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나치 독일인의 이야기! 드라마틱한 기록들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테일! 이것은 감동적인 실화다!”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인간애의 기념비적 상징”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

“나치당 배지를 달고 있는 구원자! 이처럼 하켄크로이츠를 인도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슈피겔Der Spiegel>

“아직 독일인들은 존 라베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라베는 누구나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라베는 휴머니티의 구현자였다.”
<디 차이트Die Zeit>

“라베의 일기는 1937~38년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다.”
<노이에 츄리허 차이퉁Neue Zurcher Zeitung>

책속으로

☞ P. 53
격렬한 폭격에 몇 시간이나 지하대피소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런 다음, 음악을 들으면서 폭격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라디오 상하이’를 켰더니 베토벤의 <장송행진곡>이 흘러나온다. 그것도 모자라 이런 멘트까지 흘러 나왔다: 이 음악은 상하이 장례사 대표들이 친절하게 여러분께 바치는 것입니다.(This music is kindly dedicated to you by the Shanghai Funeral-Directors.)

☞ P. 330~331
나는 그와 한 일본 장군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기억한다. 대화 도중에 로젠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귀하의 군대가 통제를 잃었기 때문에…….”
이에 일본 장군이 화가 끓어올라 말했다.
“당신은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규율이 강한 군대를 가졌소.”
그 말에 로젠 박사는 이렇게 대꾸했다.
“오! 그들이 명령에 따라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시고 싶은 겁니까?”

☞ P. 489
12월 13일, 약 서른 명의 일본 군인들이 시의 남동부에 있는 싱쿠루 5호 집 앞에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무슬림인 집주인 하가 문을 따주자 그들은 즉시 그를 리볼버로 쏘아 죽였다. 하의 죽음을 목격한 샤가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집에서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같은 방법으로 죽었다. 남편의 죽음을 따지던 하의 부인도 죽었다. 샤의 부인은 한 살 된 아기와 함께 탁자 밑으로 몸을 숨겼으나 책상 밖으로 끌려나왔다. 일본 군인들은 아기를 총검으로 찔러죽이고 부인은 여러 번 강간하여 그녀의 질 속으로 유리병 하나를 밀어 넣었다. 군인들 중 몇은 샤 부인의 76세, 74세 되는 부모와 16세, 14세 되는 딸들이 있는 옆방으로 갔다.
일본 군인들로부터 손녀들을 보호하려던 할머니는 즉시 리볼버 총탄에 맞아 죽었다. 쓰러지는 아내를 붙잡던 할아버지도 총탄에 죽었다. 16세 소녀는 두세 명의 일본군에게, 14세 소녀는 세 명에게 강간당했다. 언니는 칼에 찔려 죽어서는 지팡이에 꿰어졌다. (지팡이를 질 속에 깊이 밀어 넣었다.) 동생도 총검에 찔려 죽었으나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에게 범한 구역질나는 꿰기는 당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군인들은 한 방에 있던 일고여덟 살 먹은 다른 딸아이도 총검으로 찔렀다. 마지막으로 하의 네 살, 두 살 먹은 아이들도 죽임을 당했다. 네 살 된 아이는 총검에 당했고, 두 살 먹은 아이는 칼에 맞아 두개골이 갈라져 죽었다.
조금 전에 총검에 찔린 일고여덟 살 된 소녀는 엄마의 시체가 있는 옆방으로 기어들어갔다. 거기서 그 아이는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없는 4살 먹은 여동생과 14일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두 아이는 프라이팬에서 찾은 볶음밥과 누룽지를 먹고 살았다. 후에 그들의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두 아이 중 언니로부터 여기에 적힌 일부를 들을 수 있었고, 살해당한 가족의 이웃이며 친척인 한 성인 남자의 이야기와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몇몇 세부사항을 정정할 수 있었다. 큰 아이는 덧붙여, 그날 이후 날마다 군인들이 물건들을 가지러 집으로 왔지만 낡은 이불을 덮고 숨어 있었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았다.

☞ P. 358
(5월 12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 후 일기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궁핍과 걱정거리뿐이다! 그래도 더 심한 타격을 입지 않았으니 기뻐해야 한다. 나는 이 보다 더 심한 상황도 있음을 난징에서 넘치도록 충분히 보았다. 그러니, 높이 고개를 들자. 비록 그러기가 쓰라리게 어렵더라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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