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개의 시어가 빚어낸 한 편의 소설
1966년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을 노래하기 위해 천 개의 시어로 써진 한 편의 소설.
생애 첫 작품인『여름의 흐름』으로 제56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마루야마 겐지는 이후 그에게 주어진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고 은거하면서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전념한다. 당시 23세의 나이로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세인들의 명성이나 문단의 영리를 좇지 않고 소설을 통한 구도의 길로 접어들었다. 마루야마 겐지는, ‘펜이 곧 몸이자, 혼’이라고 말한다.
흠집투성이 비파를 등에 멘 장님 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휘청이며 삭막한 황야를 헤매고 있다. 어디에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짐승의 기척조차 없다. 그러나 비쩍 마른 그의 몸은 추억에 가득 차,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행복했던 나날을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교교한 보름달의 독기 서린 빛이 등골까지 스며들어 골수를 파먹고 있지만, 법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강풍이 쏟아내는 대지의 비통한 절규는 어딘지 비파 소리를 닮았다. 그것은 병풍 곁에 깔린 호사스러운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청년을 압도하고, 영혼까지 마비시켜버렸다. P. 61 중에서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달에 울다>라는 작품은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고독을 그려낸 작가의 수작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사과밭을 가진 농가의 외아들로, 아버지와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간다. 의지하던 개가 죽은 후에도,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그런 주인공은 인생에서 꼭 하나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는 소설의 여주인공인 야에코로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인 남자의 딸이다. 주인공은 10대, 20대, 30대를 함께 지내고 마을을 떠난 야에코가 다시 마을로 돌아올 때까지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소설은 구성에 있어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시와 소설의 중간적 장르를 갈구해온 작가는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시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정점을 이룩해내고 있다. 시의 함축성과 소설의 서사성을 함께 가진 문학적 양식을 꿈꾸고 시도해온 그는 이 작품 〈달에 울다〉를 통해 시소설이라는 하나의 결과물을 제시하였다.
소설에 나타난 문단은 시의 한 연으로서 기능하며, 그것은 삶의 점묘라는 작가의 창작 의도를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강렬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힘을 가진 그의 단문은 이 글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으며, 그래서 이 글은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문체적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형식이자 내용이다.
“봄 병풍의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의 오체는 삼라만상을 그대로 포착하고, 무궁한 시간과 공간에 녹아들어 있다. 팽팽한 현의 떨림은 미적지근한 밤기운을 자극하여 봄을 증폭시키고, 차츰 병풍 옆의 초라한 이불에 기어들어 있는, 소년의 아직 두부처럼 여린 영혼에도 깊이 스며든다…….” P. 8 중에서
■■■ 구도자가 그려낸 삶의 점묘
어쩌면 작가 자신일 수도 있을 소설 속 주인공은 자기 운명의 비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 특히 주인공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공간’에 집착하고 있다. 소설에서 공간은 시간이 흐르는 길이자 옷이다. 또한 공간은 운명의 대변인이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고민은 소설집의 두 번째 작품인〈조롱을 높이 매달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호적을 지우고, 집값 대부금이나 예금, 보험 명의를 변경하는 등 집을 나가 남이 될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내게 참 잘 대해주었다. 자동차와 예금의 3분의 1, 검둥이를 데리고 집을 나오던 어제도 세 사람은 웃는 낯으로 나를 배웅했다.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그 몇 분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천천히 자동차 가속 페달을 밟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 ‘전반기’의 끝이었다. 너무 우습고 하찮아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쯤 걱정하고 있겠지」나는 말했다. 그러자 또 하나의 내가 말했다.
「분명 걱정하고 있을 거야. 겨우 쫓아낸 쓰레기가 다시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지」 P. 113 중에서
그러나 그 무엇도 주인공의 운명은 변화시키지 못한다. 여기서 운명과 인간, 시공간은 충돌을 일으킨다. 주인공에게 있어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의 충돌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나타난다. 가령,〈달에 울다〉에서 야에코의 죽음,〈조롱을 높이 매달고〉에서 빨간 하이힐의 여자의 부재. 주인공의 운명은 주인공이 의도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K시를 지나 더 멀리, 과거와는 무관한 곳으로 가자. 지금의 나라면 어디라도 물처럼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보고 살 것이다. 말하자면 오두막의 노인, 말하자면 빨간 하이힐의 여자. 이제 떠나면 그 두 사람은 절대 안 보는 것으로 해두자. P. 229 중에서
소설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나란히 공존하고, 또한 둘은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환상이 현실과 교차하고 있어서 둘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다. 환상적인 현상이나 인물, 공간 등이 현실과 겹쳐져 있지만 바로 그곳에 생의 본질을 파고드는 선명한 리얼리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인간과 운명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리고 느릅나무에 기어 올라가 조롱을 높이 매달아두었다. 느릅나무는 잎사귀가 달린 부분에 연한 노란색을 띤 작은 꽃을 담뿍 달고 있었다. 하늘에는 수많은 잠자리들이 날고 있었다. 나는 조롱에 달린 문을 끌어올려 그것이 내려오지 못하게 고무줄로 꽉 묶었다. 피리새는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조롱 안에서만 지저귀고 있었다.
피리새는 내가 언덕을 내려가고 얼마쯤인가 지나서야 비로소 바람 속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적어도 먹이가 떨어질 때쯤에는 날아갔을 것이다. 설마 그대로 조롱 안에서 죽어버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랬다 해도 내 책임은 아니다. 그것은 피리새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P. 233 중에서
■■■ 마루야마 겐지, 소설의 근본을 묻다
어느 글에선가 그는 다른 어떤 세계보다 이미지의 세계를 신뢰한다고 적었다.
‘…… 동물원에서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나 쪼글쪼글 말라비틀어진 새끼 원숭이를 질질 끌고 가는 어미 원숭이를 보았을 때가 그랬다.’ 에세이집 『소설가의 각오』중에서
그는 그 광경을 보았을 때, ‘어느 누구의 설명 없이도, 커다란 진실을 획득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사건과 공간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이미지만이 진실되고, 불필요한 감정의 가감없이 현실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는 현실에 닻을 내리고 있기는 하나 그 돛은 상상의 세계를 향해 펼쳐져 있다. 그래서 그는 이미지를 이용한다.
그는 시적 소설, 이미지가 잘 형성된 소설, 문장 하나하나에 정신이 깃든 소설을 위해 그는 지위와 명성, 하다못해 남들이 다 하는 일상적인 생활조차 포기했다. 작가의 이러한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이나 특히, 작가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많다.
‘왜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일까. 왜 젊은 정열을 송두리째 바쳐 순수문학이란 고봉―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았고 쓸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소설을 세상에 내보내, 대가인 척 거드름을 피우며 기존의 작가들을 놀라게 하리란 굳은 결심으로 펜을 잡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들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기백은 느낄 수가 없다. 자아도취를 위하여 소설 비슷한 것을 발표하고는 흔해빠진 타입의 소설가가 되어 편하게 생활하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동기가 아닐까’라고 말하듯, 자칫 소설 쓰기가 한갓 취미나 여가 생활로까지 여겨지는 현 세태의 단면을 매섭게 꼬집는다.
그는 펜을 쥐기 전에 무엇을 쓰고 싶은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가를 생각지 않는다. 단지, 어느 날 어떤 ‘힘’이라 할 것이 그를 자리에 앉히고, 펜을 들게 하고, 약간은 빙의적이라 할 상태에서 그야말로 우연의 문장들을 만들어 낸다.
‘내 취향으로 하자면, 그 <공간>은 작가의 재능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하면 허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 등장인물들이 아무 의심 없이 그 <공간>에 녹아 있고 내 머리에 그런 점이 보다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소설이고, 힘있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소설이어야 독자들로 하여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다른 일들을 제쳐두고 소설읽기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마루야마 겐지에게 있어 소설 쓰기란 하나의 구도의 길이자, 자기 발견의 길이다. ‘쓴다’라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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