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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홀로 길에 나선 보통 여자의 섬세한 도보여행기. 여행가 김남희의 푸른여름 국토종주기를, 저자가 직접 찍은 정겨운 사진과 함께 담아냈다. 1부는 저자가 지난해 말 땅끝 마을로 내려가 통일전망대까지 우리 국토를 사선으로 종주한 도보여행의 기록이다. 2부에서는 야생화 트래킹의 1번지로 꼽히는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을 비롯해 '우리 국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흙길' 열 곳을 소개한다.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게 되기를
[1...길, 나의 위대한 학교]
- 땅끝 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9일간의 찬란한 국토종주기
다시 길 위에 서며
워매 징한 것, 여그서 거그가 어디라고 걸어간댜?
행여 내것을 빼앗길까 꼭꼭 문닫아 걸고 살아온 세월
사슴아, 왜 날 그렇게 쳐다보니?
사람들한테 니 자랑 할란다
하루 더 있다 가면 안 되오?
우리 아들 친궁께 밥 사 먹으라고 주는 겨
왜 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나?
이거 혹시 유령마을 아니야?
겨우 이 정도에 기죽을 내가 아니다
지렁이의 눈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매일 싸워야 한다는 게 서글프지
농사 짓는 게 억수로 재밌는 기라
선배님, 벗으세요, 양말까지 모두
팥빙수도 리필이 되다니, 놀라운 걸
길 위에서 울며 보낸 오후가 저문다
완전히 시골아줌마 다 됐네
두 선녀들이 목욕한대요
숙제 안 해온 벌이 라면 먹기?
미리 연락했으면 현수막 걸었을 텐데
길은 나의 위대한 학교였다
올 여름 '국토종단'을 계획하셨다구요?
[2...가을 흙내음의 즐거움]
- 숨어 있는 우리 흙길 열 곳을 찾아서
진짜 그거 하나 보러 왔는교?
―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가는 길
삶도 예술이고, 이야기 수준도 예술이네
― 정선 자개골, 아라리 한 자락에 종일토록 굽이도는 길
가다가 강가에서 요놈 한 잔씩 묵으면서 가
― 섬진강 따라 걷는 길, 새들이 날아오르는 호젓한 강변
인적 없는 산속에 내 비명소리만
― 정선 송천 계곡 백 리 길, 곳곳에 이어지는 아늑한 숲길
아, 가문의 망신이로고
― 대관령 옛길, 연인의 손을 잡고 걷고 싶은 길
한때는 꽃을 사모했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
― 인제 곰배령, 꽃 진 자리에 만개한 단풍 터널
'뗏사공'들이 떼돈 벌던 옥빛 물결
― 영월 동강,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상쾌한 산행
우리는 아침가리로 간다!
― 인제 아침가리, 원시의 계곡처럼 청량한 숲길
이게 웬 떡이야? 걷다 보니 떡이 생기네
― 홍천 명개리에서 오대산 상원사까지, 단풍잎 도배지가 깔린 흙길
새들, 향기 배인 물 마시고 가라고
― 송광사 굴목이재, 잡목숲 스치는 바람 따라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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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아 홀로 길에 나선 보통 여자의 도보여행기 -
지금까지 330킬로미터를 걸었다. 아직 남은 20여 일. 여전히 나는 걸을 것이며,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길 것이다. 좀 더 편하고 싶다는,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깨끗한
잠자리에 몸을 누이고 싶다는 욕망 또한 계속 내 안에서 바글댈 것이다. 그 갈등과 욕망들을 때때로 누르며, 때로는 그대로 인정하며, 내 한계와 수준 속에서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 본문 76쪽
여자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 먹고 잠잘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만도 두렵고 서글픈데, 어디서 왔냐, 어디로 가냐고 물어댈 낯선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한몸에 받아야 하고,
남성에 비해 불리한 체력 조건으로 여행지에서 닥칠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혼자 감당해내야 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웬만큼 강단 있는 여성이 아니고서야 쉽게 엄두낼 일이 못 된다. 그러니 혼자서 국토를 걸어
종주하고, 세계를 한바퀴 도는 건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비범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일 터이다.
그런데 그런 편견을 깨고 혼자 국토종단에 성공한 보통 여자가 있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의 저자 김남희(34)다.
- 김남희식 여행은 언제나 세상에 부딪히는 전투적인 도전의식 대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사람들과 사귀는 방식을 택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을 떠나 나를 들여다볼 여유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러기에 그 여행은 언제나 느릿느릿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그는 자전거의 속도조차 부담스러워하며 느릿느릿 걷는다.
그에게 '걷기'는 자신이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봄으로써 자기 존재의 깊이를 확인하게 해주는 동기이며, 길의 끝까지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원동력이다. 그는 이븐 파칼레의 말을 빌려 "
사람은 걸을 수 있는 만큼 존재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을 변질시키며, 지역 원래 특성과 순수성을 파괴하기 쉬운 관광산업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따라 관광화되지 않으며 도시화되지도
않은,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시골 흙길을 따라가는 여행을 선호한다.
- 전남 해남에서 출발해 경상도, 강원도를 지나는 여행에서 그는 사투리 구수한 촌로들의 말벗이 되어드리는가 하면, 시골 분교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어느 마을 종가댁 맏며느리 어머님께 삶의 지혜를
배우고, 귀농해서 농사 짓고 사는 선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나 모든 여행이 그렇듯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물쇠 하나 없는 마을회관에서 잠을 설치는가 하면 장맛비를 피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온몸이
젖은 채로 걷기도 하고, 대관령 옛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조난당해 119 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한다.
- 그러나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는 우리 땅과 우리 나라 사람들에 대한 좀더 성숙한 시선을 가지고 "길은 희망을 배우는 학교"이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330킬로미터를 걸었다. 아직 남은 20여 일. 여전히 나는 걸을 것이며,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길 것이다. 좀 더 편하고 싶다는,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깨끗한 잠자리에
몸을 누이고 싶다는 욕망 또한 계속 내 안에서 바글댈 것이다. 그 갈등과 욕망들을 때때로 누르며, 때로는 그대로 인정하며, 내 한계와 수준 속에서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 본문 76쪽
지친 몸과 마음으로 걷는 길. 아스팔트 위로 기어나온 여치를 피하려다 밟아 죽였다. 풀섶에 가만히 있지, 그 안에서 그냥 다른 여치들처럼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갈 것이지, 기어이 밖으로 나가다
밟혀 죽은 여치가 꼭 나 같아서 도로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길 위에서 울며 보낸 오후가 저문다.
- 본문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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