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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의식을 주제로 한 <뱀을 밟다>로 제115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가와카미 히로미의 첫 장편소설. 동물과 동떨어진 동물들과 광물과 동떨어진 광물들 그리고 인간스럽지 않은 인간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 세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동시에 현재 진행형으로 옮겨가고 변해가며 증식하고 사라진다.
등장인물은 화자인 주인공 마리에를 비롯해 언니 유리에, 엄마 가나코, 엄마의 두 남편 그리고 애인 치다씨, 마리에의 제자인 여고생 미도리코, 미도리코의 오빠이자 마리에의 연인 고로, 미도리코를 따라다니는
스즈모토 스즈로, 언니 유리에의 연인 오토히코. 모두 흔들리는 것처럼 몽롱하고 액체 같은 인물들이다.
작가는 주인공 마리에를 둘러싼 존재들 간의 미묘한 엇갈림과 흔들리는 관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달라지는 사랑의 의미를 감동적인 웃음과 눈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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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끄덕임을 선사하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부정형不定形의 것, 변용하는 것에 대한 동경의 아름답고 기묘한 속삭임!
"두 여자아이가 나오는 꿈입니다. 옛날 옛적 어느 곳에 자매가 살았습니다. 두 아이는 낮잠을 잤습니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고, 빨간 유리 풍경이 짤랑거렸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낮잠을 자던 자매는 긴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언젠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꿈, 동생은 언젠가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꿈, 두 아이 모두 어지간히도 아픈 꿈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꿈을 꾸면서 서로의 몸에
손을 두르고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언니의 긴 머리카락은 동생에게 엉키고, 동생의 팔은 언니를 감고 있었습니다. 매미가 울고, 풍경이 울고, 그래도 두 사람은 눈을 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지 않고 땀에
흥건히 젖으면서 길고 긴 꿈을 계속 꾸었습니다."(p.268)
위태롭고 흔들리는 사람과 사랑
가와카미 히로미의 문학세계는 변해가는 것, 예컨대 모양을 바꾸어가며 움직이는 것, 줄어들고 팽창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랑스러워》에서는 그것이 한층 더 강하고 과격하게 전개된다. 화자인 주인공 마리에와
언니 유리에, 엄마 가나코, 엄마의 두 남편 그리고 애인 치다 씨, 마리에의 제자인 여고생 미도리코, 미도리코의 오빠이자 마리에의 연인 고로, 미도리코를 따라다니는 스즈모토 스즈로, 언니 유리에의 연인 오토히코,
모두 흔들리는 것처럼 몽롱하고 액체 같은 인물들이다.
살아 있는 혹은 살아 있음직한 모든 것
동물과 동떨어진 동물들과 광물과 동떨어진 광물들 그리고 인간스럽지 않은 인간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세계 《사랑스러워》 안에서는 모든 것이 동시에 현재 진행형으로 옮겨가고 변해가며 증식하고
사라진다. 우스움과 섬뜩함이 실시간으로 넘실거리는 그곳은 세상이면서 세상이 아니고 환상이면서 결코 환상이 아니다. "언니의 긴 머리카락에 휘감긴 적이 있는" 마리에의 발목처럼 환상에 휘감긴 현실이며 현실에 휘감긴
환상이다.
전봇대와 가로수가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늪에 사는 인어가 달리기를 하는 곳, 자기 자신을 둘러싼 공기를 수용하지 못한 불안감으로 부풀고 뒤틀리고 꼬이고 변질되어가는 인물들 이 가득한 곳, 그곳에는 온통
연애 또는 사랑 또는 거기에 준하는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 액체인지 기체인지 고체인지 존재감마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스러워'할 줄 아는 존재들이 넘쳐나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인물과 종잡을 수 없는 관계
수면 위 둥둥 떠 있는 기름방울을 닮은, 국그릇에 떠 있는 머리카락 같은 인물과 동물과 생물과 광물을 등장시켜, 이야기 속에서 움직이게 하고 말하게 하고 웃게 하고 무서워하게 하면서 작가가 그리려고 한
것은 이 세계에서 변용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의 슬픔이었을지도 모른다.
독자는 그 변용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존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첫인상이 반갑지 않더라도 이내 익숙해져버리고 마는 존재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것 같은 인간들. 뒤틀려 있지만 온기가 있고,
실제와는 다르지만 동떨어진 가공의 것은 아닌, 허깨비라고 하기에는 호흡이 너무 짙은, 부드러운 뼈와 투명한 피부를 가지고 쉼 없이 달리기를 하고 있는 듯한, 허둥지둥 서두르며 연거푸 하품을 해대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살짝 나른함을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났더니, 언니 머리카락이 내 왼쪽 다리에 휘감겨 있었다.
분명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잤던 언니가 한 바퀴 휙 돌아서 거꾸로 자고 있는 것이다.
"유리에 언니" 하고 불렀지만, 언니는 코고는 소리가 섞인 숨소리를 낼 뿐이었다. 언니의 가늘고 긴 머리카락은 내 발목을 칭칭 감은 후, 방바닥에 널려 있었다. 왼쪽 다리를 움직이면 언니의 머리도 조금씩
흔들린다. 안이 비어 있는 가벼운 구슬처럼 톡톡 흔들린다.(p.6)
사람 서른여섯 명과 개 세 마리와 고양이 합계 네 마리 ― 고양이는 두 마리였지만 왕복하여 합계가 네 마리 ― 를 세었다.
웨이터가 두 번째 컵에 물을 채워줄 때쯤 미도리코의 다리가 보였다. 수를 셀 때 하늘을 보지 않고 땅을 보기 때문에 다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미도리코는 앞이 트인 옅은 색 신발을 신고 빨갛게
발톱을 칠했다. 발목에서부터 발끝까지 설탕과자처럼 보였다.(p.74)
언니가 토해냈던 공기가 없어지고 언니와 언니의 소지품도 보이지 않게 되자, 한동안 집 안은 뭔가 텅 빈 듯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머잖아 텅 빈 것들은 고르게 메워졌다. 모르는 사이에 엄마와 나의
기운이 옅게 집 안으로 퍼져나가, 언니의 부재로 생긴 빈틈을 메웠다.(p.183)
언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기로 결정하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고로를 그리워했다, 고로를 좋아했다, 지금도 고로를 좋아한다, 고로를 좋아해서 기뻤다, 고로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고로는 그러나 이제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 되었다, 순간 언젠가는 좋은 것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것대로 또 뭔가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p.27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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