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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종이책

전문가들의 사회

저자
이반 일리히 지음
역자
신수열 옮김
출판사
사월의책 | 2015.12.01
형태
판형 규격外 | 페이지 수 176 | ISBN
원제 : Disabling Professions
ISBN 10-8997186523
ISBN 13-9788997186525
정가
13,000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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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전문가들의 사회』는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전문가 독점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하나는 전문직의 독점이 이룩되어 온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과정, 다른 하나는 그런 과정을 가능하게 만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다. 전문가 사회는 현실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우리들 인간을 불구화함으로써 전문가들의 권력과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전문가 사회의 미래는 ‘기술 전체주의’(techno-fascism)이다. 사회 대다수 구성원을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들의 관리 아래 둠으로써 성장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다. 전문가 독점이 문제인 것은 인간성의 상실과 함께 사회의 민주적 구성 원리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이반 일리히

저서 (총 9권)
이반 일리치만큼 논쟁적이며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 시대의 사상가도 드물다. “가장 급진적 사상가”(TIME)이자 “위대한 사상가”(가디언)였고, 주류 체제를 떨게 하는 “지식의 저격수”(뉴욕타임스)였다. 12개 국어에 능통하고, 화학과 신학, 역사를 전공했으며 그가 현대 사상에 끼친 영향은 사회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과학기술을 넘나든다. 하지만 그는 어떤 범주와 분류에도 넣을 수 없는 사상가이다.이반 일리치는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중부 유럽을 떠돌다가 나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피신한 후, 화학ㆍ신학ㆍ역사학 분야에서 학위를 받았다. 195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교황청 국제부직이 예정되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보좌신부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1956년 서른 살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교의 부총장이 되었다. 1966년 멕시코에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해 당시 전 세계가 숭배하던 개발 이념에 도전했다. 이 센터는 급진 운동의 근거지이자 사상의 싱크탱크가 되었다.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1971년 『학교 없는 사회』를 발표한 후, 『공생을 위한 도구』, 『의학의 한계』 등으로 현대 문명에 근원적 도전을 던지며 세계적 사상가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현대 관념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 12세기로 거슬러 오르는 사상적 여정을 시작해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등을 출간했다. 사회학ㆍ철학ㆍ경제학ㆍ여성학ㆍ종교학ㆍ언어학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며, 가장 근원적이기에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로 평가 받는다. 말년에는 한쪽 뺨에 자라는 혹으로 고통 받았지만 현대식 의료 진단과 치료를 거부했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에서 눈을 감았다. 〈가디언〉, 〈르몽드〉, 〈뉴욕 타임즈〉 등은 사후 특집 기사 등을 통해 그에게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보수주의자에게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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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발행인 머리말

1장 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 (이반 일리치)

2장 의료 만능 사회 (어빙 케네스 졸라)

3장 서비스 사회의 정치학 (존 맥나이트)

4장 변호사와 사법 독점 (조너선 캐플런)

5장 베이비시터가 된 장인들 (할리 셰이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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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상세이미지

유능한 전문가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무능력해진다

오늘날의 사회는 실로 ‘전문가 사회’라 불릴 만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견해는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

전문가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삶을 지배한다. 육아, 심리, 교육, 인간관계, 심지어는 삶의 지향까지 그들에 의해 결정된다. 전문가에 의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공동의 정치 역시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유능한 전문가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무능력해진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우리를 돕고, 가르치고, 마침내 군림하는가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더 타임스).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피터 버거). “가장 급진적인 휴머니스트”(에리히 프롬). 이반 일리치에 대한 평가들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일리치는 그 뒤로 차츰 잊혀가는 듯했으나, 2002년 사후 오히려 재조명을 받으면서 그의 저서들 또한 현대의 고전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 책 『전문가들의 사회』는 『그림자 노동』과 함께 <이반 일리치 전집>(전9권, 2017년 완간) 1차분으로 출간된 책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실로 ‘전문가 사회’라 불릴 만하다. 개인과 사회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들이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식과 견해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 전문가들은 그들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이 사회에 대해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주장하고, 다시 문제의 ‘해결사’를 자처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강화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의 이런 권력이 우리들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필요를 찾고 충족할 줄 아는 인간 능력을 훼손하고 불구화하는 것이야말로 전문가 사회의 작동 원리이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사회의 필요와 충족을 독점하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전문가들의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 역시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고, 자율성과 긍지에 기초한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사회 문제나 타인을 돕는 데 쓰는 숙련된 직업인들로 존경을 받아왔다. 종교, 법률, 의료에서 군사, 교육, 복지, 산업관리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의 봉사는 의심받고 있다. 혹시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문성을 내세워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만 봐도 이런 의심에는 일부 타당한 면이 있다. TV에는 매일처럼 의사, 변호사들이 출연해 우리들의 생활습관, 인간관계, 심리문제에 참견한다. 경제전문가들은 차트를 들고 나와 주식과 부동산 구입을 가르친다. 4대강 개발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공학자들,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더 심각한 경우다. 전문가들은 과연 누구이며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책은 단순히 전문가들의 특권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들이 전문가들의 선의나 사명감까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원제인 “Disabling Professions” 즉 ‘무능하게 만드는 전문직’이라는 뜻 그대로, 저자들은 전문가 우위 사회가 나머지 사람들을 모자라고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이데올로기 위에 서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선의에서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해결책을 주장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필요와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권한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필요’와 그것에 대한 전문가적 ‘충족’을 통해 끝없는 성장을 도모하고, 그럼으로써 소수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회라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실로 수동적이고 더욱 쓸모없는 존재가 될 뿐이다.

시민은 어떻게 전문가의 충실한 ‘고객’이 되는가?

이반 일리치가 전문가 지배를 거세게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 존재의 자율성과 가능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전문(傳聞) 증거 배제의 원칙’이라는 법적 원리를 들어 인간 자신의 자결권에 대해 말한다.(26~28쪽) 이 원칙은 제3자의 경험이나 소문은 법적 판단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원리인데, 일리치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지 않은 사실을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런데 전문가 지배 사회는 바로 이런 시민의 자결권을 유예하는 데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에 대한 의존과 예속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에 몇 가지 환상이 깊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사용가치보다는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교환가치)를 구매할 때 욕구가 더 잘 충족될 수 있다는 환상이다. 소비자는 비록 풍요를 누리겠지만 욕구를 스스로 충족하는 기쁨을 모른 채 상품에 취해 얼빠진 상태가 된다. 그러나 전문가적 서비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마비와 정체는 피할 수 없고, 결국 만족은 후퇴하는 ‘역생산성’(counterproductivity)을 면치 못한다. 그럼에도 전문가 서비스는 이미 우리의 욕구에 대해 ‘근본적 독점’(radical monopoly)을 이룬 상태이므로 우리는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고, 더욱더 전문가의 처방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술 진보라는 환상이다. 기술 진보란 더 단순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데,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내놓은 난해하고 복잡한 기술을 더 나은 것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근본적 독점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전문가적 보증으로, 뭔가를 아는 전문가들이 보증한 것이야말로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넷째는 자유와 권리의 혼동인데, 상품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마치 자유인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이런 권리를 부여하는 전문가의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자가 처방에 대한 면허를 발부하는 일이다.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낼 줄 알던 사람들이 전문가적 서비스에 종속되고 나면, 이제 전문가들은 ‘자조’(self-help)라는 명분을 들어 이런 서비스를 스스로 이용하는 일마저 하나의 자격으로 ‘허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전문가들의 독점은 더욱 공고해진다.

일리치는 전문가 서비스의 근본적 독점에서 벗어나려면 절제와 내핍에 기반한 생활양식의 기쁨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필요’에서 벗어나는 일, 다시 말해서 자족의 능력을 키움으로써 스스로의 자유를 지키는 새로운 사회 기풍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 제2장 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

의료는 어떻게 사회 문제를 ‘질병’으로 만드는가?

전문가들의 지식을 공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그들이 규범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뭔가를 안다고 해서 무엇이 좋은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언제나 자기 분야의 지식을 내세워 사회 문제에 함부로 발언하는 ‘월권’을 범하곤 한다. 이 책 2장에서 거론하고 있는 ‘의료’는 그 대표적 사례다.

현대 사회에서 의료가 사회를 유지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삶을 정의해 온 종교와 법률(자연법)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그것을 대신한 대체물이 나타나지 않은 공백기에 의학은 인간을 세속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좋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인간 수명은 사실상 유아사망률 감소와 생활환경의 개선 때문이었지만 현대 의료의 획기적 발전 덕분이라고 오해되었고, 이렇게 늘어난 생명 주기는 다시 현대 의료를 더욱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의료는 이렇게 시초부터 우리의 ‘건강’만이 아닌 ‘삶’과 ‘생명’의 문제에 관여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결국 의료는 질병과 치료의 개념을 일상생활 전반에까지 적용하고 배타적인 관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들의 심리, 생활상태, 인간관계 등 모든 측면을 의료의 대상으로 삼아왔고, 나아가 교육이나 빈곤과 같은 사회적 문제마저 ‘건강상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사회를 ‘질병’과 ‘치료’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수많은 사회 이슈들과 개인의 요구들은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가 되고 치료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즉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갈등, 일탈 등은 과연 문제인가 아닌가의 여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바뀌고 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의료는 이 사회에서 정치를 소멸시키고 기존 사회를 공고히 하는 데 봉사한다. 그 속에 의료 전문가들의 권력과 이익이 숨어있음은 물론이다.

전문가 사회가 강요하는 ‘필요’의 이데올로기

전문가들의 역할은 의료 분야를 포함해서 대체로 서비스 직종에 집중되어 있다. 현대 사회는 ‘서비스 경제’라고 불릴 정도로 무형의 서비스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이고, 전문가들의 지식 역시 이런 서비스에서 특기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늘 부조(help)나 돌봄(care)으로 여겨져 왔고, 이런 이름 아래서 훨씬 쉽게 거대 산업을 이룰 수 있었다. 메디케어(medicare), 에듀케어(educare), 주디케어(judicare)는 의료, 교육, 법률 분야에서 비즈니스가 된 전문가 서비스를 감추기 위한 이름들이다. 이처럼 이 책 3장은 거대 산업을 이룬 전문가 서비스를 ‘필요’의 경제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전문가 서비스는 돌봄의 행위를 수요-공급의 경제 원리에 묶기 위하여 먼저 ‘필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에 나선다. 첫 번째는 필요를 ‘결핍’(deficiency)으로 해석함으로써 전문가 서비스의 공급이 불가피함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결핍의 원인을 사회에 두지 않고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전문가의 처방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결핍의 소재를 사회에서 개인으로 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필요들을 쪼개고 특화(specialization)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개인은 여러 전문가들이 제각기 관리하는 ‘필요’의 집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필요의 경제학은 사실 고객이 원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필요’로 만들고, 그 다음에는 자신들만이 그 ‘필요’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전문가 독점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전문가 비즈니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서비스에 대한 ‘평가’마저 전문가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규칙을 세운다. 이렇게 하여 사회적 수요-공급에 대한 전문가들의 독점이 완성되면, 우리들은 단지 ‘고객’으로 머무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의 존재가 되고 만다.

전문가들에 의한, 전문가들만을 위한 사법 제도

전문가들의 독점은 수요-공급의 경제학 원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 장치에도 의존한다. 변호사와 전문 법조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법 제도가 대표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법 제도는 대상과 방법 면에서 전문가들의 독점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이하 제4장 ‘변호사와 사법 독점’)

먼저 사법은 모든 사회적 현안을 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사회를 사법의 지배 아래 두려 한다. 즉 합의와 토론으로 해결될 정치적 사안마저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의 방향성을 규정하고, 심지어 입법의 권한마저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법 절차와 판결이 언어와 절차 면에서 극히 난해하여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보통사람은 무엇이 법적 사안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설사 법적 다툼에 휘말렸다 해도 변호사와 법조인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거기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하여 사회적 현안은 법의 지배라기보다는 ‘법률가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저자는 소수의 사법 전문가들이 이처럼 공공의 법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첫째로는 소송당사자가 자신에 대한 법적 다툼을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법 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로는 ‘회의실 재판’ 즉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위원회 형태의 법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법을 시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전문가 경영은 어떻게 우리에게서 일의 보람과 기쁨을 빼앗아 가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의 5장은 산업 현장에서 전문가적인 경영관리 및 산업관리가 어떻게 인간의 자율적 노동을 침해하고 불구로 만드는지의 사례를 살펴본다. 여기서 집중적으로 논하는 것은 노동 과정의 문제이다.

산업 현장에서 이뤄지는 숙련 노동은 겉보기와 달리 그리 고되고 지루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기술을 익힌 숙련 노동자는 자신의 일을 설계하고, 절차를 만들고, 하나하나 실행해 나감으로써 예술가의 창작과 같은 보람과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전문화된 산업 관리는 생산의 효율성을 들어 이러한 숙련 노동의 종합적이고 자율적인 측면을 파괴하려고 한다. 독립성을 누리는 숙련 노동자는 경영의 의도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노동자가 수행해온 직무는 ‘관리’의 입장에서 볼 때 두뇌 없이도 손만 있으면 행하는 기계적 작업이 되는 편이 낫다.

이런 현실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무마하기 위하여 전문가적 산업관리는 ‘직무 충실화’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곤 한다. 자신의 일에 대해 결정권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동자에게 재량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무 자체가 파편화되고 생산 계획을 스스로 수립할 수 없는 터에 이런 직무 충실화는 강제수용소에서 자유로운 교도소로 일터를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여기서 노동자가 생산의 제반 사항을 직접 통제하는 시스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노동자 혁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전문 관리자들이 독점한 산업 현장을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현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노동자가 자신의 필요와 생산을 직접 결정하는 사회이기도 하며, 노동자들과 그 밖의 사람들 모두가 가진 잠재 능력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 『전문가들의 사회』는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전문가 독점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하나는 전문직의 독점이 이룩되어 온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과정, 다른 하나는 그런 과정을 가능하게 만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다. 전문가 사회는 현실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우리들 인간을 불구화함으로써 전문가들의 권력과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전문가 사회의 미래는 ‘기술 전체주의’(techno-fascism)이다. 사회 대다수 구성원을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들의 관리 아래 둠으로써 성장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다. 전문가 독점이 문제인 것은 인간성의 상실과 함께 사회의 민주적 구성 원리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속으로

전문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어떻게 이런 판결을 강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결정한다. 그들은 물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서비스를 왜 강제로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특별하고 독점적인 권한을 주장한다. 작금에는 전문직들이 너무나 발전한 나머지 고객화된 시민에 대한 보호감독자 역할뿐 아니라, 이 병동화된 세계의 형태까지 결정하려 들고 있다. (…) 성직자 계급이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듯이, 전문가 집단은 일반 대중의 세속적 이익에 대해 그것의 해석자, 보호자 및 공급자로서의 적통(嫡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류의 전문가 권력은 엘리트라는 신분 자체가 전문가적 지위를 통해 확보되고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전문가 권력이란 사회에 대해 처방을 내릴 수 있는 특권을 말한다. 이런 처방 권력은 산업체제 내에서 이 체제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해준다. 따라서 산업체제의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까지 좌우하는 전문가 권력은 그 범위와 기원 모두에서 특이하고도 새로운 것이다. (20-21쪽)

의료적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이란 고통스럽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 따라서 제거되어야만 하고 제거될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바로 이런 ‘제거’의 측면이 있기에 사회 문제나 불유쾌한 사회 현상을 질병과 동일시할 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질병 역시 ‘질병’으로 정의하는 한 개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니까. 게다가 사회 문제를 질병으로 이름 붙이는 과정에는 대단히 중요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질병이란 오로지 특별히 지정된 면허취득자와 수임자들, 즉 의사들만이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 환자 후보는 자신을 환자로 낙인찍는 진단에 대해 항변할 권리조차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만일 환자가 실제로 자신에 관한 일에 반대를 표하면 사회적 수사(修辭)가 다시 등장하여 쟁점을 흐린다. 즉 이 사람에게는 병이 있으므로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잘 알지 못하며, 자신이 하는 행위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식이다. 반면 진단-치료자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안다’고 생각한다. 진단을 내리는 이들 전문가가 볼 때 환자의 행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86쪽)

우리는 사랑을 필요라고 말한다. 돌봄도 필요이며, 서비스도 필요다. 서비스 제공자들은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사람들이다. 국민은 필요의 집합이며, 사회는 필요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는 이 필요들을 충족시키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서비스가 주요 사업인 현대 사회에서는 정치적 현실도 이에 맞춰져 있다. 사회의 중심에 있는 ‘필요’는 서비스 전문가들과 그들이 내거는 경제성장에 적절한 수입을 올려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랑’과 ‘돌봄’의 가면은 이런 사실을 숨김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전문가들의 이해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서비스 경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필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가린다. 메디케어, 에듀케어, 주디케어뿐 아니라 사회적 케어, 심리적 케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돌봄이 원래부터 있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 양 표현된다. 그것들이 사실은 서비스 제공자들과 그들이 떠받치고 있는 경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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