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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종이책

홍사익 중장의 처형(양장)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역자
이진명 옮김
출판사
페이퍼로드 | 2017.08.14
형태
판형 규격外 | 페이지 수 696 | ISBN
원제 : SQLの繪本 デ―タベ―スがみるみるわかる9つの扉
ISBN 10-1186256842
ISBN 13-9791186256848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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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홍사익 중장의 처형』은 일본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쓴 책이다. 저자는 홍사익이 제14방면군 병참총감을 맡고 있을 당시 필리핀에서 함께 복무한 인연으로 그의 이름을 일찍부터 들었지만, 전범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그 일을 듣고 일종의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그때부터 12년 동안 홍사익의 재판기록을 샅샅이 뒤지며, 일본인 관계자는 물론 현해탄을 수차례 건너 한국인 친지들을 인터뷰했다.

취재 중에, 홍사익을 저세상으로 보낸 교수대의 자재(資材)가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사역(使役)을 나갔던 목공소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원고는 1980년대 초반 문예춘추에서 펴내는 잡지 〈쇼군!(諸君!)〉에 연재됐고, 이를 보완해 1986년 문예춘추에서 〈洪思翊中將の處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범재판”을 둘러싼 거대담론(巨大談論)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홍사익의 재판기록을 파고 또 팔 뿐이어서, 그것이 오히려 독자에게는 지루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국어 번역원고로 원고지 2천 매가 넘는 이 재판기록에 대한 검토의 최종 결론은, 홍사익은 무죄라는 것이고, 그 점에 관해서는 어떤 독자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야마모토 시치헤이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 1921~1991)는 일본의 작가, 평론가. 도쿄에서 태어나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학을 졸업했다. 1942년 간부후보생으로 소집되어 일본육사에 입학했고, 포병대 초급장교로서 필리핀에서 태평양전쟁 종전(終戰)을 맞았으며, 2년간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가 귀국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1958년 야마모토쇼텐(山本書店)을 설립해 성서 관련 서적을 출판했다. 1970년 〈일본인과 유태인〉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됨과 동시에, 2회 오야 소이치(大宅壯一) 상(賞)을 수상해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왕성한 저술 활동으로 일본의 문화를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해, “야마모토학(學)”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후(死後),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賞)이 제정되어,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저서 및 논문을 매년 시상하고 있다. 저자는 홍사익이 제14방면군 병참총감을 맡고 있을 당시 필리핀에서 함께 복무한 인연으로 그의 이름을 일찍부터 들었지만, 전범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그 일을 듣고 일종의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그때부터 12년 동안 홍사익의 재판기록을 샅샅이 뒤지며, 일본인 관계자는 물론 현해탄을 수차례 건너 한국인 친지들을 인터뷰했다. 취재 중에, 홍 중장을 저세상으로 보낸 교수대의 자재(資材)가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사역(使役)을 나갔던 목공소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원고는 1980년대 초반 잡지 〈쇼군(諸君!)〉에 연재됐고, 이를 보완해 1986년 문예춘추(文藝春秋)에서 〈洪思翊中將の處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대표작으로,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일본 자본주의의 정신〉 〈어떤 이상 체험자의 편견〉 〈내 속의 일본군〉 〈한 하급장교가 본 제국육군〉 〈성서 여행〉 〈현인신의 창작자들〉 등이 있다.

역자 : 이진명
역자 이진명은 1964년, 서울 출생. 1982년, 서울대 인문대 입학. 자유기고가.

목차

옮긴이의 말

제1장 남방부임(南方赴任)
제2장 한국계 장교
제3장 충성(忠誠)
제4장 출생 전설(出生傳說)
제5장 허구(虛構)의 응수(應酬)
제6장 전범(戰犯) 법정(法庭)
제7장 복곽진지(複廓陣地)
제8장 패전(敗戰
제9장 평상심(平常心)
제10장 야마시타 대장 재판의 증인
제11장 포로(捕虜) 수송(輸送)
제12장 오다시마(小田島) 증언(1)
제13장 오다시마 증언(2)
제14장 오다시마 증언(3)
제16장 헤이즈 일기(日記)(1)
제17장 헤이즈 일기(2)
제18장 헤이즈 일기(3)
제19장 헤이즈일기(4)
제20장 지휘권(指揮權)
제21장 기하라(木原) 증언
제22장 무죄청원(無罪請願)
제23장 논리와 논증
제24장 판결(判決)
제25장 성서(聖書)
종장終章 교수대(絞首臺)

저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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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상세이미지

패전 직전의 남양 전선으로 부임해 전범(戰犯)으로 처형된 홍사익
교수대에 오를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군 중장이었던 홍사익(洪思翊). 그는 태평양 전쟁 말기 광복군(光復軍) 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의 합류 요청을 거절하고, 패전 직전의 남양 전선으로 부임해 전범(戰犯)으로 처형되었다.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이 책에서 누누이 확인하고 또 강조하고 있듯이, 홍사익은 ‘자의(自意)로’ ‘흔쾌히’ 필리핀으로 갔던 게 아니었다.
그는 그곳이 죽을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곳을 회피할 수단과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갔을까? 그는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갔던 것이 아닐까. 그는 B급 전범으로서 얼마든지 처형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전범재판과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태평양 전쟁을 주도했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일본 총리조차, 홍사익의 직속상관이었던 남방군 총사령관 야마시타 대장조차 전범 재판에서 장황한 자기 변명을 일삼았는데 말이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인으로서 최고위직인 일본군 중장으로 복무했고 전범으로 처형당했다. 일본군 지휘관으로 독립군 소탕전에도 나섰다. 여기까지가 소위 말하는 객관적 역사의 기록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그는 변명의 여지없는 친일파다. 그런데 일본군에 복무하면서도 독립군과의 연락과 끊임없이 이어가고 봉급을 쪼개 지원을 지속했다. 우리가 배워왔던 친일파와는 뭔가 다르다. 그 느낌은 공식적 기록 너머에 있는, 인간 홍사익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한 인간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만 볼 수는 없다.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군 중장이었던 홍사익(洪思翊). 그는 광복군(光復軍) 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의 합류 요청을 거절하고, 패전 직전의 남양 전선으로 부임해 전범(戰犯)으로 처형되었다.

도대체 태평양전쟁은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 것인가? 홍 소장이 남방으로 간다면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병참총감, 총포로수용소장으로서 그의 남방행은 군 당국이 이미 홍 소장의 신변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그것을 위험시해서 멀리 쫓아 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대로 부임해서 과연 안전할까? (장남) 국선 씨의 걱정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이상 그대로 일본 육군을 신뢰하고 운명을 맡겨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탈영병 문제가 하나의 계기가 되어, 그는 그 걱정을 솔직하게 홍 소장에게 털어 놓았다. 그때 홍 소장은 처음으로 “지대형(광복군 사령관 지청천의 본명) 씨한테서 몇 번씩이나 광복군에 참가해달라는 연락이 있었다”고 말했다.
- 『홍사익 중장의 처형』, p.51

이 점과 관련해서 홍사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증언이 당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申報) 도쿄특파원 김을한(金乙漢)에 의해 전해졌다. 홍사익은 김을한으로부터 임시정부가 있던 중화민국의 임시수도 충칭(重慶)으로 탈출해 광복군에 가담하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을 받고,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번에 가는 길이 죽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선 사람이 수백만이나 전쟁에 동원되었는데 최고 지위에 있다는 내가 만일 배신을 한다면 병사(兵士)들은 물론 징용된 노무자들까지 보복을 받을 것이니, 다만 나 혼자만을 생각해서 그런 경솔한 짓은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내용은 김을한의 저서 [여기 참 사람이 있다](1960, 신태양사)에 실려 있다.
- 『홍사익 중장의 처형』 p.56 각주

대한제국 육군유년학교 생도에서 관비(官費) 유학생으로 도일(渡日)해, 망국(亡國)의 한(恨)을 품고 일본군에 남아, 영친왕(英親王)의 육군대학(陸軍大學) 동기생이자 일본군의 엘리트로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상징이 되었던 홍사익. 우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대한제국의 유학생 출신으로 일본육사에 입학한 쪽과 한일합병 이후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쪽은 뭔가 다른 것 같다고 전제하면서, 전자(前者)의 속마음에는 아무래도 독립이 들어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 자문(自問)한다. 실제로 그들은 망국(亡國)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 앞에서 모종의 맹세를 했고, 그 맹세에 따라 적지 않은 숫자의 한국계 일본군 장교들이 망명을 결행해 독립군에 합류했으며,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저자가 홍사익의 장남으로부터 입수한, 대한제국 유학생 출신 일본육사 졸업생들이 꾸린 친목회의 회보(會報) [전의(全誼)]에 실린 기사들을 보면 - 저자 자신이 적확하게 짚고 있듯이 - 대체 이런 글들이 어떻게 일본군 안에서 유통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할 만큼 과격하고, 독립에 대한 희구(希求)가 배어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군 장교의 신분임에도 자신의 권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독립군 밀사에게 끌러 주는 장면에 이르면, 그동안의 상식과 선입견이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다.
홍사익은 일본군에 들어갔던 것도 조국의 명령이었고, 일본군에 남았던 것도 훗날 독립할 조국의 명령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일본군복이란 일시적으로는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단지, 일본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무인(武人)으로서 명령에 충성한다. 이것이 한국의 근현대사 전공자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료(史料)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저자가 내린 해석이다. 달리 말하면 - 도산(島山)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 되겠지만 - 적어도 위관(尉官) 때까지 그들의 정신은 “민족자강론(民族自彊論)”과 대차(大差)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

그의 일생, 그리고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재판기록. 홍사익이 죽은 이유가 밝혀진다.

『홍사익 중장의 처형』은 일본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쓴 책이다. 저자는 홍사익이 제14방면군 병참총감을 맡고 있을 당시 필리핀에서 함께 복무한 인연으로 그의 이름을 일찍부터 들었지만, 전범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그 일을 듣고 일종의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그때부터 12년 동안 홍사익의 재판기록을 샅샅이 뒤지며, 일본인 관계자는 물론 현해탄을 수차례 건너 한국인 친지들을 인터뷰했다.
취재 중에, 홍사익을 저세상으로 보낸 교수대의 자재(資材)가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사역(使役)을 나갔던 목공소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원고는 1980년대 초반 문예춘추에서 펴내는 잡지 〈쇼군!(諸君!)〉에 연재됐고, 이를 보완해 1986년 문예춘추에서 〈洪思翊中將の處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범재판”을 둘러싼 거대담론(巨大談論)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홍사익의 재판기록을 파고 또 팔 뿐이어서, 그것이 오히려 독자에게는 지루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국어 번역원고로 원고지 2천 매가 넘는 이 재판기록에 대한 검토의 최종 결론은, 홍사익은 무죄라는 것이고, 그 점에 관해서는 어떤 독자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전범(戰犯)으로 몰려 교수대에 오를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길고 긴 재판극의 참다운 주인공은 재판관도 검사도 변호인도 아니고, 또 증인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시종일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잠자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홍 중장이었다. 따라서 그 드라마는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에 대한 처형을 과연 정당화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드라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과묵한 홍 중장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판결 후 얼마 있다가 어떤 사람에게 말했다고 하는 다음 한 마디가 그 일단을 이야기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수합격(絞首合格)이다!” 교수형 합격,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말은 징병검사에 있어서의 갑종(甲種) 합격에 비유한 농담이다. 그런 말로 가깝게 다가온 자신의 처형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는 일본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신적인 강인함을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 『홍사익 중장의 처형』, p.642

만일 그것이 그의 죄였다면, 그것은 바로 “모르고 저지른 죄”였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지금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죄는 아니라 해도 그 자체는 ‘죄’일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죄 그 자체’의 용서를 비는 대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神) 외에는 없다. 그것은 마치 ‘속죄양’과 같은 위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변호인이 말한 “시간이라는 법정”은 그를 순교자라고 규정은 해도 ‘죄인’이라고는 규정할 수 없고, 심판받은 것은 전범 법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홍 중장이 ‘죄’를 느낀 대상은 포로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시도 잊지 못했던 고국도, 동포도, 매년 새해가 되면 반드시 찾았던 이왕가도, 또 그가 젊었을 적에 자신의 봉급을 쪼개 도와주었던 독립운동가와 동기생의 가족들도, 또 그 아오야마 묘지의 맹세도, 모두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홍 중장이 언제나 선의를 갖고 대했던 사람들이었고, 만일 그가 그 사람들에게 대해 “모르고 저지른 죄”가 있다면 그 용서를 신에게 구했을 사람들이다.
시간이 왔다. “하나님 계신 곳에서 만납시다.” 가타야마 목사에게 그렇게 작별을 고하고, 홍 중장은 조용히 교수대 쪽으로 걸어갔다. 보통 사람이 걷는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자세로 그는 갔고, 그리고 세상을 떠났다.
- 『홍사익 중장의 처형』, p.681

훼예포폄(毁譽褒貶)의 시대에 가슴을 울리는 인간

저자가 이 책에서 누누이 확인하고 또 강조하고 있듯이, 홍사익은 ‘자의(自意)로’ ‘흔쾌히’ 필리핀으로 갔던 게 아니었다. 그는 그곳이 죽을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곳을 회피할 수단과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갔을까? 그는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최후의 순간에 염치와 희생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친일파 가운데 그런 인물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죽음이 주는 그 느낌. 오늘날과 같이 협량(狹量)한 이념대결로 핏대를 세우는 세태(世態)에, 그 느낌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의 지평(地平)을 한 차원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것이 이 책을 한국인 독자에게 소개하게 된 가장 큰 동기(動機)다.
『홍사익 중장의 처형』은 종장(終章)을 포함해 모두 26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남방부임’부터 제4장 ‘출생전설’까지는 홍사익이 관비(官費) 유학생으로 일본육사에 들어가 일본군에 남게 되기까지 과정과 이를 둘러싼 대한제국 쇠망(衰亡)의 역사, 그리고 그의 고민을 추적한다. 지금은 도저히 접할 수 없는 관련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어서, 이른바 ‘한국계 일본군 장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5장 ‘허구의 응수’부터 제9장 ‘평상심’까지, 저자는 홍사익이 일본군 몰락의 와중에서 어떻게 처신했는지, 그 모습이 패전을 눈앞에 두고 갈팡질팡하던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 쓰고 있다. 홍사익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10장 ‘야마시타 대장 재판의 증인’부터 제24장 ‘판결’까지는 전범재판에 대한 분석이다. 1천 페이지가 넘는 기록을 샅샅이 훑고, 이를 사실과 일일이 대조한 다음, 저자는 홍사익이 무죄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제25장 ‘성서’와 종장(終章) ‘교수대’는 처형 직전 홍사익의 내면(內面)을 그린다.
이번에 페이퍼로드가 출간한 『홍사익 중장의 처형』은 2016년 치쿠마서방이 고본으로 다시 펴낸 [洪思翊中將の處刑 上·下]를 저본으로, 200개가 넘는 각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책 속으로 추가]
우리는 한국 민족 자체가 일본을 침략할지도 모르는 위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평화로운 이웃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라는 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을 정도로, 그것은 우리에게 자명한 것이다. … 비록 일본이 섬나라라 하더라도 한반도?한민족이라는 완충지대가 존재하지 않고, 대륙의 큰 세력과 직접 부딪혔다면 우리들의 의식은 현재와는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 … ‘한국 민족은 영원한 방어민족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 아마도 그러한 비팽창의 역사가 ‘한국 민족은 군사적 위협이 아니다’라는 ‘감각’, 말하자면 무의식적 전제를 우리에게 갖게 한 것이리라. 생각해 보면 그렇게 고마운 이웃은 없을 텐데,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종종 경시?멸시?무시를 낳는다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특히 사대주의자에게는 그런 경향이 강해서, 위협에 무릎을 꿇는 자일수록 위협이 되지 않는 자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제3장 충성, p.98~99

한편, 한국인에게는 한국인의, 그 또한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감각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일종의 방어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중국이 강대한 중앙집권국가가 되어 전력을 다해 한반도로 쳐들어오면, 그들은 그것에 대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설사 전 국토를 점령당하더라도, 자신의 문화를 꼭 쥐고 버티고 있으면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썰물처럼 그 세력은 물러가고 자신들은 살아남는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히데요시의 침략군은 8년 만에 물러갔다. 메이지의 침략군도 언젠가는 자기들 쪽에서 표변해서 스스로 물러가게 될 것이고, 그동안 참고 견뎌내는 것, 그것이 일본 통치 하에서도 이유 불문하고 민족적 감각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 그것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홍 중장도 이청천 씨도 김광서 씨도 똑같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했다.
- 제3장 충성, p.101~102

그 점에서 한국인의 시간을 재는 방법은 우리들과는 다르다, 그 말은 홍 중장에게도 이응준 씨에게도 우리와는 다른 ‘시간의 계산법’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몇 십 년쯤 뒤에는 반드시 한국 독립이라는 ‘100억 엔’이 오기는 온다. 그것은 확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민족으로서의 생존이 그 이전에 끝나버리면 그 확정된 것을 손에 넣을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민족의 생존이라는 내일의 빵을 위해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논리나 의식적인 결의보다는 오히려 비정치적인 여성이나 일반 대중도 함께 갖는, 역사에서 배양된 자명한 감각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들 일본인에게는 그 감각이 없다.
- 제3장 충성, p.106

1881년 별기군(別技軍) 창설에서부터 1907년 훈련원에서 군대해산에 이르기까지 불과 27년 사이에, 열강의 간섭과 그에 상응한 정쟁에 휘둘려 창설과 해산을 되풀이해 온 한국군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사의 축도(縮圖)이고, 훈련원에서 군대해산도 그 가운데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따라서 … 그 시점에서 무관학교로 진학하려 할 자는 없는 게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메이지 초기부터 한국은 그러한 발상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였다. 27년 동안 창설과 해산을 네 번 반복한 군대를 지망하는 것과, 메이지 이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일본 육군의 사관학교를 목표로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은 모든 변천(變遷)을 예견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깊이 기약하기라도 하는 듯이 어떤 변천(變遷)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청년기에서 생애의 끝까지 홍 중장을 접한 모든 사람들이 받은 인상인데, 그 내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제4장 출생전설, p.137

“… 지금까지 다른 군사법정은 지휘권의 유무와 그것에 근거한 책임만으로 피고를 유죄로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지휘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는 단순한 참모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의 지휘권은 보잘 것 없고, 그 권한은 참으로 허약했으며, 그는 조선인이고, 그 때문에 좋은 자리에서 쫓겨나 가장 꺼리는 지위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소외당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재판부가 최종결정을 내릴 때 그 사실을 충분히 고려해 주도록 희망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먼 장래에 걸쳐 깊숙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부디 헤아려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 최후의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새롭게 독립하는 한국에 대한 정치적 영향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 제5장 허구의 응수, p.156

“… 변호인 측은 처음으로 피고의 어떤 지위를 지목하고 그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해, 그 때문에 피고가 일본인에게 호의를 받지 못하고 신뢰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믿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일본 국민이고, 일본의 육군대학 졸업생이고, 중국 북부에서는 여단장, 또 교관이었던 것입니다. … 이와 같은 경력으로 볼 때, 혹은 그에게 기회주의적 경향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지금 본 법정에 출정할 때도 그 당당한 기념장이 가슴에 빛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 정부로부터 냉대를 받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 변호인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특별히 고위계급에 있던 그는 우연히 그 지위에 앉게 된 불행한 환경의 희생자라는 게 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만, 설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피고에게는 아무런 변호가 되지 않는 것이고….”
- 제5장 허구의 응수, p.156~157

“나는 그러한 분을 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도 만난 적이 없어요” 하고, 홍 부인은 말했다. 부인이 결혼해서 홍 중장 집에 왔을 때,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새로운 책상이었다. “이제부터는 여자들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도 함께 공부를 하겠다.” 홍 중장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 홍 부인에게 있어서도 시아버지 홍 중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상하고 동정심 많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 “그 어른이, 그 어른이… 13계단을 오르시다니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일을 상상하면 몸이 떨려요….” 홍 부인은 치를 떨며 그렇게 말했다. 부인은 그렇게밖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부인뿐만 아니라 홍 중장을 알고 있는 모든 한국인이 일본인은 스스로 저지른 잔학행위를 모조리 그에게 뒤집어씌운 뒤, 홍 중장을 제물로 교수대에 보내고, 자신들은 입을 씻고 모른 체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도 그것은 이상할 게 없었다.
- 제5장 허구의 응수, p.169~170

“전범”이라든가 “전범 재판”이라는 말은, 현재로는 부당하고 동시에 근거 없는 ‘재판’의 대명사로까지 사용되고 있다. … 그러나 만일 그것이 정말로 그렇고, 최소한 재판하는 측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재판이란 복수를 정의로 치장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면, ‘허구의 응수’는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할 수 있는 말은 ‘전쟁에 졌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다…’이고, 홍 중장의 경우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당하다니. 쯧쯧. 하지만 포로수용소의 최고책임자였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겠지…’라고, 그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다. … 따라서 홍 중장의 ‘범죄’라는 것은, ‘명목적 총책임자’라는 형태의 지극히 추상적인 ‘책임론’일 수밖에 없고, 개인적으로 어떤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상은 아닌 셈이다. 그 점에 있어서 홍 중장에 대한 재판은 ‘천황의 전쟁 책임’과도 비슷하게 보이는 면도 없지 않지만….
- 제6장 전범 재판, p.171~173

분명히 나치독일의 경우, 그 계획적인 집단학살은 ‘집단범죄’라는 개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일본군에게 적용할 수가 있을까?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 측의 발상이 ‘나치즘이라는 사상’을 심판하는 것이라면, “그 법을 (적어도 적극적으로) 지킨다는 것 자체가 범죄이다”라는 발상도 성립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 그것을 적용한다면 기묘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첫째, 심판을 받을 만한 명확한 발상 따위는 아무 데도 없다. 발작적인 사건은 빈번히 발생했어도 나치독일처럼 뚜렷한 계획적인 집단범죄는 없었다. … ‘중일사변’이 한창일 때 일본은 항상 ‘중일친선’을 부르짖었고, … ‘유태인 말살’ 같은 ‘중국인 말살’이라는 ‘심판받을 만한 명확한 발상’이나 사상도 없다.
- 제6장 전범 재판, p.183~185

그동안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생활 속에서 홍 중장의 태도는 시종일관 전혀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어떤 위기에서도 침착했고, 전멸이 당연한 상황에서도 태연했으며, 그 상황에서의 평정(平靜)이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느낌이 든다고 (홍 중장의 부관이었던) 사이토 씨는 말했다. 그의 일상은 지극히 규칙적이고 꼼꼼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여유가 있었다. … 그런 가운데서 홍 중장은 누구에게나 온화하게 말을 건네고 온후한 태도를 유지했으며, 결코 비굴한 구석은 보이지 않았고,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는 차이를 느끼기 이전에 좋은 의미에서 ‘전형적인 무인’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인품이었다고, 사이토 씨는 말했다. … 그리고 그러한 태도, 조용한 대담성, 침착성, 온화함, 육친(肉親)에 대한 자상한 배려 등의 모습은 처형당하는 그 시간에도 털끝만큼의 변화가 없었다.
- 제7장 복곽진지(複廓陣地), p.207~209

항복은 비밀로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미군이 그날로 전선 일대에 삐라를 뿌렸기 때문이다. … 삐라를 살포하는 미군기를 바라보면서, 홍 중장은 … 혼잣말처럼 … 말했다. “전쟁이 끝나면 나도 고향에 돌아가게 되겠지만, 무엇을 한다지? 그렇지, 수학선생을 할까? 초등학교 선생도 좋지만 중장까지 했으니 초등학교는 조금 가엾을까? 중학교 선생 정도가 좋을까…?” … 이 말을 사이토 부관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는 놀라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홍 중장은 그런 개인적인 감개(感慨)는 결코 입에 담지 않으며, 가족의 일이나 고향, 즉 한국의 이야기도 절대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환하게 밝았고, 아무런 긴장감도 없었으며, 일체의 질곡(桎梏)을 벗은 듯한 안도감에 가득차서 아무런 그늘도 없는 얼굴이었다.
- 제8장 패전(敗戰), p.220~221

그리고 만일 그 가면이 단죄(斷罪)를 당한다면 그것이 어떠한 단죄이든, 가면을 어디까지나 자신의 진짜 얼굴인 체하고 잠자코 단죄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변명은 있을 수 없다. … 하지만 그러한 것의 의미를 우리들 일본인은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책임을 지는 것은 가면에 대해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가면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 가면을 의식해야 하는 괴로움 탓이었을까? 어쨌든 간에 홍 중장이 일본인 앞에서 그 가면을 벗은 것은, 그 평생에 있어서 “… 수학 선생이라도 할까…?”라면서 홀가분한 표정을 지은 그 몇 분간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몇 분이 지나자 홍 중장은 다시 평소의 얼굴로 되돌아갔다.
- 제8장 패전(敗戰), p.222~226

홍 중장이 전쟁 중이나 전쟁 후에도, 사형 판결을 받기 전이나 받고 난 후에도 또한 처형장에 임해서도, 행동거지에 전혀 변화가 없이 침착했고, 또한 그 모든 장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의 평정함과 온화함과 일종의 여유 있는 자세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감탄의 말을 했다. … 그러면 이 ‘평상심’은 홍 중장의 ‘본심’이었을까? …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군에 들어온 이래 30년간 항상 유지해 온 평상심에 더해, 최후의 초인간적인 노력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 그것은 ‘조국을 위해서’라든가, ‘조국의 반석’이라든가 하는 어떤 심리도피, 말하자면 무엇인가의 대상에게 어떤 종류의 ‘구원’을 청하는 것을 일절 거부하고, 운명을 정면으로부터 노려보며 자신을 지탱해가는 인간의 얼굴일 것이다.
- 제9장 평상심, p.253~254

이상의 문답이 계속 이어지는 심문은 포로에 대한 의식적 학대를 논증하고 인상지으려는 의도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을 홍 중장으로부터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 포로 문제에서 학대라고 해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침대의 유무’이고, 그들은 언제나 그것을 학대의 증거로 삼고 있다. 이것은 미국인의 심리에는 강렬하게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게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 일본인은 다다미 위에서, 한국인은 온돌 위에서 자고,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미국인은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자게 했다”는 말에서 학대의 증거를 찾는 것이다. 생활양식의 차이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고, 게다가 미국인은 ‘자신들의 기준’을 유일한 최상의 기준으로 삼아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 제10장 야마시타 대장 재판의 증인, p.282

“신임 장군(홍 중장)은 문제의 검열에서 결함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는 사물의 진상(眞相)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적만 해 주면 무슨 일이든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결함은 고치겠다고 제의했다. 구보다는 우리들이 고쳐야 할 결점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군 병사들은 그 장군이 무엇이든 모두 알고 있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구보다는 웨이드나 나나 미국인에 대해서, 또한 어떤 점에 대해 얼마만큼 우리가 불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장군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식사 이외에는 그다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다.”
- 제16장 헤이즈 일기(日記)(1), p.434~435

“헤이즈 일기”에서 최대의 문제는 식량 문제이다. 확실히 수용소의 식사는 형편없었겠지만, 당시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일반적인 식사에 비해서 그다지 큰 차이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확실히 헤이즈 중령은 ‘포로로서’라는 자신의 신분을 냉정하게 파악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포로로서’라고 해도 그것은 미국인이 생각한 ‘포로로서’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식량이라는 점에서는 가령 아무리 우대를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수용 당초에 참고를 위해 ‘미국 해군에서의 병원식단표’를 제출하게 했습니다만….” 하고 어떤 관계자는 말했다. 그리고 메뉴를 보고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는 것이다. 무리도 아니다. 지금도 미국 해군병원은 가장 호화판 병원의 하나인데, 그곳 메뉴와 보리밥 한 공기에 국 한 그릇, 야채 한 접시인 일본군을 비교한다면 그 격차는 너무나 현격한 것이다.
- 제20장 지휘권(指揮權), p.523~524

그리고 지금까지 이 글을 읽는 독자는 틀림없이 느꼈겠지만, ‘홍 중장을 유죄로 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는 무엇 하나 없지 않은가’라는 게 법정을 감싸는 ‘분위기’였다고 생각된다. 변호인 측은 여기에 힘을 얻어 - 라고 상상되는데 - 1946년 3월 25일, 홍 중장의 “무죄 청원 신청서”를 법정에 제출한다. 군사법정에서 그 신청서는 현재 일본에서 공소기각 신청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유죄·무죄를 법적으로 다투는 게 아니라, 검찰 측이 근거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으므로 홍 중장을 고발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해서 법정은 즉시 무죄를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 제22장 무죄청원(無罪請願), p.569~570

“확실히 군사법정은 전쟁 범죄를 심판하고 판결을 내리는 권한을 갖고, 또 심리(審理) 절차에 관한 제(諸) 규칙을 확립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 범죄가 어떤 것인지, 또 어떤 것이 아닌지를 선언할 권한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입법행위인 것입니다. 따라서 미합중국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자격에 있어서나 군의 최고사령관의 자격에 있어서도 전쟁 범죄를 규정하고 동시에 정의(定義)할 권한은 없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군의 각 사령관은 설사 그 계급이 아무리 높아도 전쟁 범죄를 창출해내고 정의할 권한은 갖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 제22장 무죄청원(無罪請願), p.581

“제네바조약에 대해서는 모든 면에서 많은 의견이 나왔습니다. … 도쿄의 육군성은 제네바조약을 준수하고 동시에 그 조항에 따를 의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 말하자면 중간에 세워진 자, 더구나 한국인인 피고가 제네바조약을 위반했다는 죄로 고소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간에 있던 단 하나의 인간이 자기 한 사람만의 힘으로 어떻게 제네바조약을 지킬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의 상급자, 도쿄의 사령부는 제네바조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실제로 제네바조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법정의 판사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 아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피고가 제네바조약을 지킬 수 있는가를.”
- 제23장 논리와 논증, p.602~603

“… 2,000명 이상의 미국 청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음으로 쫓기었고, 약 1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영구히 불구의 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그(홍 중장)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 사람들은 모두 그의 관리 책임 하에 있었던 것이고, 그의 권한 내에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의향(意向)으로 그 사람들을 고통 받고 죽도록 만든 것입니다. 미국인의 모든 눈, 전 문명국 사람들의 모든 눈, 그리고 배반당해 죽어간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 그리고 이 옥리(獄吏)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희생자들의 눈이 오늘 모든 재판관 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심판하는 것이 귀관들의 책임입니다. 피고 홍사익은 고소당한대로 유죄를 선고받고 교수형의 판결이 내려져야만 합니다.”
- 제24장 판결, p.629~630

재판장 : 이상의 고소에 대해서는 유죄로 한다. 법정은 여기에 교수형의 판결을 내린다. 판사는 3대2로 각 소인(訴因)의 유죄 및 판결에 찬성했다.
- 제24장 판결, p.640

“교수합격(絞首合格)이다!” 교수형 합격,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말은 징병검사에 있어서의 갑종(甲種) 합격에 비유한 농담이다. 그런 말로 가깝게 다가온 자신의 처형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는 일본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신적인 강인함을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을 유지해 가면서 그 재판의 모든 것을 그는 지켜보고 있었다. 갑종 합격, 그것은 ‘무인(武人)’이라는 말에 걸맞은 전형적인 무인이고, 그 생애를 한국인, 일본인이라는 테두리를 초월한 무인으로 서 있기를 바라던 인간에게 있어서는 어떤 종류의 시험에 무사히 합격했다는 뜻일 것이다. … 그를 교수형에 처함으로서 법정 자체가 ‘시간의 법정’ 앞에서는 그 증언이나 판결도 기각당하는 형태로 불합격이 되고, 그가 합격했다는 것, 그것이 교수형 합격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 제24장 판결, p.642~643

그러나 홍 중장이 ‘죄’를 느낀 대상은 포로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시도 잊지 못했던 고국도, 동포도, 매년 새해가 되면 반드시 찾았던 이왕가도, 또 그가 젊었을 적에 자신의 봉급을 쪼개 도와주었던 독립운동가와 동기생의 가족들도, 또 그 아오야마묘지의 맹세도, 모두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홍 중장이 언제나 선의를 갖고 대했던 사람들이었고, 만일 그가 그 사람들에게 대해 “모르고 저지른 죄”가 있다면 그 용서를 신에게 구했을 사람들이다.
- 종장(終章) 교수대, p.681

책속으로

(패전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홍사익이 포로수용소장이라는 달갑지 않은 자리를 맡아 필리핀으로 간 이유와 관련)
이 점과 관련해서 홍사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증언이 당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申報) 도쿄특파원 김을한(金乙漢)에 의해 전해졌다. 홍사익은 김을한으로부터 임시정부가 있던 중화민국의 임시수도 충칭(重慶)으로 탈출해 광복군에 가담하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을 받고,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번에 가는 길이 죽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선 사람이 수백만이나 전쟁에 동원되었는데 최고 지위에 있다는 내가 만일 배신을 한다면 병사(兵士)들은 물론 징용된 노무자들까지 보복을 받을 것이니, 다만 나 혼자만을 생각해서 그런 경솔한 짓은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내용은 김을한의 저서 <여기 참 사람이 있다>(1960, 신태양사)에 실려 있다.
- 제1장 남방(南方) 부임(赴任), p.56 각주

일동은 그곳에서 아오야마 묘지로 가서 한일합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논의했다. 고 이대영 씨(육사 26기)가 말한 것을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비분강개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원 즉각 탈주해서 귀국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리고 결국 일동은 홍(洪) 생도(生徒)에게 의견을 구하게 되었다. … 그때 홍 생도의 의견은, 지금은 배울 수 있는 데까지 배우고 흡수할 수 있을 만큼 흡수해서, 그 위에 실무를, 가능하면 실전까지도 경험해서 충분히 자신이 붙을 때까지 은인자중해 기회를 보아 일을 성사시키자는 결론이었다. 유학생 일동은 이를 승인하고 맹약한 뒤 헤어졌다고 한다.
- 제2장 한국계 장교, p.73~74

(한국계 일본군 장교들의 친목모임인 전의회(全誼會)의 회보에는)
약간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을 성원하고, 마음속으로 공감을 표시하는 듯이 보이는 격렬하고 암시적인 기술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위에 그려진 지도다. … 그 지도에는 러시아령, 중국, 조선, 일본은 각기 분명히 다른 나라로 그려지고, 그 위에 (1) 잊지 말자, 동양의 현상을 (2) 큰 강의 물도 조그만 개울로부터 모인다 (3) 전진하자, 민족 지도(指導)를 위해 (4) 나를 버리고 서로 회원을 위해 친구를 위해 일합시다, 라고 쓰여 있다. 조그만 개울이 김, 지 두 사람을 가리키고, 전진하라가 두 사람에 대한 격려의 말이며, 그 다음 (4)를 자신들도 동지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이외의 해석이 있을 수 있을까? 그이들이 평생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한국의 독립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제2장 한국계 장교, p.80~81

우리는 한국 민족 자체가 일본을 침략할지도 모르는 위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평화로운 이웃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라는 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을 정도로, 그것은 우리에게 자명한 것이다. … 비록 일본이 섬나라라 하더라도 한반도?한민족이라는 완충지대가 존재하지 않고, 대륙의 큰 세력과 직접 부딪혔다면 우리들의 의식은 현재와는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 … ‘한국 민족은 영원한 방어민족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 아마도 그러한 비팽창의 역사가 ‘한국 민족은 군사적 위협이 아니다’라는 ‘감각’, 말하자면 무의식적 전제를 우리에게 갖게 한 것이리라. 생각해 보면 그렇게 고마운 이웃은 없을 텐데,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종종 경시?멸시?무시를 낳는다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특히 사대주의자에게는 그런 경향이 강해서, 위협에 무릎을 꿇는 자일수록 위협이 되지 않는 자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제3장 충성, p.98~99

한편, 한국인에게는 한국인의, 그 또한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감각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일종의 방어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중국이 강대한 중앙집권국가가 되어 전력을 다해 한반도로 쳐들어오면, 그들은 그것에 대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설사 전 국토를 점령당하더라도, 자신의 문화를 꼭 쥐고 버티고 있으면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썰물처럼 그 세력은 물러가고 자신들은 살아남는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히데요시(?臣秀吉)의 침략군은 8년 만에 물러갔다. 메이지의 침략군도 언젠가는 자기들 쪽에서 표변해서 스스로 물러가게 될 것이고, 그동안 참고 견뎌내는 것, 그것이 일본 통치 하에서도 이유 불문하고 민족적 감각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 그것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홍 중장도 이청천 씨도 김광서 씨도 똑같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했다.
- 제3장 충성, p.101~102

그 점에서 한국인의 시간을 재는 방법은 우리들과는 다르다, 그 말은 홍 중장에게도 이응준 씨에게도 우리와는 다른 ‘시간의 계산법’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몇 십 년쯤 뒤에는 반드시 한국 독립이라는 ‘100억 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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