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서비스

검색

검색

책 메인메뉴

책 분류

책본문

‘퀀트’는 과학자일까 품위없는 괴짜일까

한겨레 | 2007.07.13 19:51
[한겨레] <퀀트-물리와 금융에 관한 회고> 이매뉴얼 더만 지음·권루시안 옮김/승산·1만8000원

욕망의 대상이 손에 잡힐 듯 분명하고 뚜렷한데, 자신은 결코 그것을 손에 쥘 수 있는 깜냥이 안 됨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삶을 어떻게 꾸려갈까.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는 음악적 재능을 조금 ‘덜’ 내린 신을 저주하며 미쳐 버렸지만, 다행히 이매뉴얼 더만은 ‘퀀트’가 된다. 〈퀀트〉는 그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퀀트는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전직 물리학자와 응용 수학자를 일컫는 말이다. 과학계와 금융계의 요구가 맞아떨어지는 시기에 탄생한 특별한 직종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악화된 미국의 경제상황과 전쟁에 복무하는 물리학자에 대한 대중의 혐오는 1970년대 물리학계의 일자리를 무너뜨렸다. 월스트리트는 불안해진 금융시장에서 금리와 주가의 움직임을 좀더 정교하게 예측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했다. 퀀트는 이런 필요에 따라 물리학계에서 월스트리트로 자리를 옮겨 물리학과 수학, 컴퓨터 과학을 이용해 금융 증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정교한 모델을 만드는 사람이다. 금융 자본의 시대인 요즘에는 선망의 대상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학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택하는 어쩔 수 없는 길인 경우가 많았다.

지은이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처럼 신의 비밀을 캐내 우주의 이치를 밝히는 물리학자가 되길 원했다. 물리학은 그에게 신과 ‘맞장 떠’ “예술을 제외하고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분야”였다. 그가 대학에서 물리학을 파고들던 1960년대에 물리학과에는 장학금이 넘쳐 학생들이 밀려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발명된 레이더와 원자폭탄으로 물리학을 쓸모있는 학문으로 여긴 미국 정부는 순수 연구 활동 지원에 박차를 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지은이도 숱한 노벨상 수상자들과 쟁쟁한 별들이 득실거리던 컬럼비아 대학의 물리학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천재에 가까운 이들에 견줘 조금 덜 천재적이었던 그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학계의 일자리 경쟁에서 밀려난다. 한계를 깨닫고도 물리학계를 떠나지 못하고 있던 그는 아인슈타인에서 리처드 파인먼으로, 다시 그보다 한 급 떨어지긴 해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정다오로, 마침내 자기보다 조금 더 잘나가는 바로 옆 사무실의 동료 연구자로, 점차 소망의 크기를 줄여나간다. 그러다 “돈과의 연관성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품위가 떨어진다”고 느끼던 응용물리학으로 눈을 돌려 벨 연구소에 취직한다. “나는 순수 물리학계를 빠져나가는 썰물의 일부분이었다”고 지은이는 회고한다.

1985년 골드만삭스로 옮긴 그는 퀀트가 되어 이익을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악마 숭배자를 떠올리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꿈과 장년의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에 그는 괴로워한다. 출근하는 전철 안에서 수학 문제를 증명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에 내 시간을 쓰도록 채용된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를 느끼기도 하고, 금융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이끌고 금융공학계에서 두루 인정받는 모델도 개발하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너저분한 인간의 시스템을 엉뚱한 잣대로 모델화하려는 부적절한 시도는 아닐까? 궁극적으로, 퀀트는 과학자일까, 아니면 괴짜일까?”

그가 17년 동안 퀀트로 살아가며 내린 결론은 물리학이 ‘더 낫다’가 아니다. 경제학과 물리학은 모두 세계를 하나의 모델 안에 끼워 넣는다. 다만 신은 세계의 섭리를 자주 바꾸지 않지만, 현실의 금융 및 인간 세계는 물질 세계와 달리 항상 변하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그 모델이 얼마나 쓸모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한다. 퀀트는 다만 “우리가 관찰하는 것을 최대한 아름답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할 뿐이다. “인생에서 이 이상을 이룩하려면 소망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존경받는 금융공학자로서의 업적을 이룬 그는 말한다. 그가 여전히 신과의 대결을 원하고, “희망과 실망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어려운 길을 돌아 좌절 대신 다른 종류의 통찰을 얻은 그의 얘기는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퀵메뉴

TOP

서비스 이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