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1949년 7월6일, 일본 국철 초대 총재 시모야마 사다노리가 행방불명 하루 만에 철로 위에서 처참한 토막사체로 발견됐다. 그러나 일본 경시청은 그 충격적인 사건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한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조사를 서둘러 마무리해버렸다.
6개월 뒤 세심한 연출 흔적을 남기며 경시청이 언론에 흘린 비공식 내부문서 `시모야마 사건 수사 최종 보고서'는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좌파 소행임을 강하게 내비쳤다. 전후 일본에 사회파 추리소설 붐을 일으킨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사진)는 그 10여년 뒤 쓴 미스터리 논픽션집 <일본의 검은 안개>에서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 책에 실린 12가지 얘기 중 첫 번째인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시모야마 국철 총재 모살론'은 그 뒤집기를 위해 주도면밀하게 기획한 탐사보도의 산물이다. 작가 역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진 않지만, 독자들은 경시청 주장이 왜 거짓인지 책을 읽으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돼 있다.
마쓰모토의 논픽션은 잊혀져 가던 시모야마 사건을 `현안'으로 되살렸고, `검은 안개'라는 말을 일본 사회에서 정치모략사건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등극시켰다. 그 얘기를 포함해 1960년 1년간 <문예춘추>에 12가지 미스터리 미제사건 논픽션들을 연재한 뒤 마쓰모토는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를 제치고 작가부문 소득 순위 1위를 차지했고, 이후에도 최상위 소득자로 군림했다.
시모야마 사건엔 당시 실질적인 일본 통치기구였던 점령군 총사령부(GHQ) 산하 방첩대(CIC) 등에 포진한 현역 미군과 일본계 미국인 조직원들, `공직추방'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던 전범자들, 점령군 하수인이 된 관료들이 가담했다. 같은 해 무인전차 폭주로 6명이 숨진 `미타카 사건', 열차 탈선사고로 다수의 사상자를 낸 `마쓰카와 사건'도 잇따랐다. 그 사건들은 지금까지 진상이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그 일련의 사건들로 이익을 본 자들이 누구인지는 명확하다. 바로 사건 가담자들이고, 최대 수혜자는 점령군 총사령부요 미국이었다. 그들에겐 점차 세가 커져 점령정책 수행에 부담을 안기고 있던 좌파세력을 반사회적 위험분자로 몰아 거세할 구실이 필요했다. 12만 노조원 해고를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긴장이 조성됐던 국철 노조 투쟁은 시모야마 사건 뒤 물거품처럼 꺼졌다.
1952년 1월21일 저녁, 눈 덮인 홋카이도 삿포로 시내를 자전거 두 대가 달리고 있었다. 별안간 총성이 들리더니 한 대가 쓰러졌고 다른 한 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쓰러진 자전거에 탔던 희생자는 시라토리라는 경찰관. 다른 한대에 누가 탔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시라토리 사건' 뒤 일본 공산당 홋카이도 지역 조직 중 최강이자 전국적 중심이기도 했던 삿포로 지구당 지하조직은 무너졌다. 이 사건 뒤엔 현지 우익세력, 그들과 결탁한 부패한 지방관리들, 그들로부터 호스티스 접대 등을 받은 총사령부 산하 조직원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익 부패사건을 좌익 정치범죄로 날조하고 좌익 제거 구실로 삼았다. 바로 이 `레드 퍼지'(빨갱이 사냥)야말로 총사령부의 최종표적이었다. 작가의 집요한 추적도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미 점령군은 애초 일본을 친미 2급 종속국가로 만들기 위해 전범자 등 과거 군국 일본 지배세력을 제거하는 `공직추방'을 추진했다. 그 작업을 주도한 것이 국무부 계열의 총사령부 막료부 민정국(GS)이었다. 그러나 1947년 `트루먼 독트린' 이후 소련과의 대결 자세를 굳혀 가던 미국은 1949년 중국의 공산화,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전면적 냉전체제로 돌입한다. 이미 1948년부터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전쟁 가능성을 공언하던 미국은 그 무렵부터 우익 전범들의 `공직추방'을 좌익 `빨갱이' 척결로 대체하는 이른바 `역코스'(역류)로 정책을 선회했다. 일본을 강력한 반공기지로 만들기 위해 역코스 선회를 주도한 조직이 첩보·보안·검열을 맡은 총사령부 참모부 제2부(G2)였다. 마쓰모토의 12가지 얘기는 바로 그 시절 지에스(GS)와 권력투쟁을 벌이던 지(G)2 쪽이 대세를 장악해가던 때에 일어난 얘기들이다.
지(G)2와 산하 방첩대 등은 사건을 처음부터 기획하거나 그들과는 무관했던 사건들을 점령정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이용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마쓰모토는 공표된 자료들을 섭렵하고 보완취재를 했다. 그래도 메울 수 없었던 공백들은 날카로운 가설과 명민한 추리로 채웠다. 마쓰모토는 절대권력이 개입된 미묘하고 위험하기도 한 미군 점령기 미스터리 사건들을 종합적이고 일목요연한 하나의 역사로 처음 재구성해냈고, 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얘기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것은,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코스' 선회로 대다수 일본 전범자들은 면죄부를 받았고 우익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군 점령 아래 한반도에서 친일파들이 좌익척결을 앞세우며 살아남아 신생 대한민국 중추로 부활한 것은 그 복사판이었다. 아시아를 침략했던 일본 육·해군 지도부는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사실상 복구돼 맥아더 총사령부의 참모 노릇을 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을 짜고 한국인 이름으로 대거 실전에도 참여했다고 마쓰모토는 썼다. 맥아더가 중국대륙 확전을 주장한 것도 한반도와 만주 재탈환을 노린 일본 우익 참모들의 아이디어였을 것으로 본다. 그의 12가지 얘기는 바로 한국전쟁이란 정점으로 달려가는 하나의 연작 장편처럼 돼 있다.
1952년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밴플리트는 "한국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이 땅 혹은 세계의 어딘가에 한국이 없으면 안 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마쓰모토가 <일본의 검은 안개>를 통해 재구성하고자 했던 미국 주도의 냉전체제와 전후 동아시아 질서 재편극의 대단원이 바로 한국전쟁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한승동 기자sdhan@hani.co.kr, 사진 모비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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