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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잃은 쌍용차 해고자들... '자본론'의 예언

오마이뉴스 | 2012.09.20 14:36

[오마이뉴스 박현진 기자]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책표지

ⓒ 알에이치코리아

2008년 경제위기는 자본이 지닌 탐욕의 끝을 드러냈다. 선진금융기법을 자랑하던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도 파산했다. 전 세계 자본이 얽혀있는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곧바로 대양과 대륙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성난 시민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를 소리치며 몰려들었고, 굳건해 보이던 자본주의의 우상은 그 한계가 분명해졌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시장논리가 선사하던 매혹적인 환영이 걷히자, 서민 경제의 몰락과 양극화의 한숨만이 남겨졌다.

누구보다도 노동자의 삶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깃발 아래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노동자에게 거대자본은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피폐해진 경제에서 유발된 고통은 거대자본이 아니라, 여전히 노동자의 몫이었다.

무분별한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산과 같은 전반적인 노동환경의 열악성이 더 분명해졌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던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 대통령이 아니라, 대기업의 경제 대통령이었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부자 감세 등으로 상징되는 거대자본 중심의 정책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자리는 찾기 어려웠다.

< 자본론 > 의 역자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현실을 직시하려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비판한 < 자본론 > 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 자본론 > 에 대한 주목도 맥락은 다르지 않다. 200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 자본론 > 을 비롯한 마르크스 저작의 판매고가 급증했다. 국내에서도 < 자본론 > 의 번역은 물론이거니와 <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 , <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 < 마르크스의 자본 :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 등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로 사그라졌던 < 자본론 > 의 불씨가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 자본론 > 으로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책

문제는 < 자본론 > 읽기가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우선 김수행 교수의 번역본(비봉출판사) 기준으로 분량 자체가 3000여 쪽을 넘어선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이 책을 '가파르고 좁은 길을 올라가는 일'에 비유했을 정도다. 그만큼 어려운 책으로 손꼽힌다. 2010년에 완역(도서출판 길)된 < 자본론 > 의 또 다른 번역자인 강신준 동아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 자본론 > 3권까지 제대로 읽은 사람은 다섯 명 정도일 것"이라고 표현을 할 정도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란 곧 자본주의 사회를 말합니다. 자본가가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 상품을 만들고, 상품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공장을 확장해서 경제가 발달하는 사회. 다시 말해 자본의 힘으로 새로운 자본을 늘리는 사회입니다. -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 55쪽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이케가미 아키라 씀, 오세웅 옮김, 김공회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 은 접하기 어려운 < 자본론 > 을 해설하는 '입문서'격인 책이다. 특히, 이 책은 < 자본론 > 1권 중 핵심적인 문장들을 뽑아내 그 의미를 설명한다. 강의록 형식과 구어체 문장이 < 자본론 > 으로 다가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일본 경제현실을 반영하는 풍부한 사례도 독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특히 노동과 관련된 사례들은 한국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 자본론 > 의 문장들, 한국의 노동을 말하다

"그는 자본가로 '즉, 의지와 의식이 부여된 인격화된 자본으로' 기능하다", 이 말은 자본가가 인간이기는 하지만 실은 자본이 인격화된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자본을 늘리려고 애쓰다 보면 인간이 아니라 자본 그 자체에 더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거지요. 인간이 자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인간의 탈을 쓰고 자본가가 된다고나 할까요. 돈을 늘리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면 인간성을 잃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 106쪽

자본의 '필연적 비인간성'을 지적한 부분이 눈에 띈다. 자본가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축적되려는 자본의 '욕망'이 결국은 자본가의 인간성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현실과 연결 짓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 중에서 22명이 목숨을 잃었다.2646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의 삶은 '경영 정상화'라는 미명 아래에서 철저하게 외면되었다.

그러나 2004년 쌍용차는 '상하이 기차'에 매각된 이후에는 '경영 정상화'가 말 그대로 '미명'임을 보여준다. 수천억 규모의 투자 공헌은 늘 물거품에 그쳤고, 오히려 기술유출이 심각해 쌍용차 노조에 의한 고발이 이어졌다.이 모든 일이 끝나갔을 때, 2646명의 노동자는 쌍용차의 회생을 위한 정리해고자가 되어있었다.

쌍용차는 22명의 희생자를 남기고도 '해고 살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비단 쌍용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에 대한 산업재해 불인정, 농성 2000일을 넘어선 콜트-콜텍 등 비인간적인 자본에 의해서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 문장이 드디어 나왔군요. < 자본론 > 에서 무척 인상적인 부분이고 유명한 부분 중 하나지요. 당장 이득이 중요할 뿐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본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내가 돈을 벌려면 노동자가 필요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만 돈을 벌면 그만이다'라는 것이 자본가의 입장입니다. -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 155쪽

9월 11일, 민주노총은 정책보고서인 'MB 5년 비정규직 대책 평가'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08년을 기점으로 더욱 확산한 비정규직 문제를 되짚고,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평가하고 있다. 비정규직법이 제정된 지 5년을 넘어섰지만, 비정규직 규모는 800만 명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전체 임금노동자 중 절반을 차지하는 수치다.

비정규직은 정리해고와 더불어 거대자본이 위기를 핑계로 선택하는 해결책이다. 2008년의 경제위기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정부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100만 해고설'이 등장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경제위기로 불가능하므로 대량해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본의 탐욕으로 발생한 경제위기의 고통이 또다시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었다.

그러나 보고서는 당시 노동부의 조사 등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이 허구라고 지적한다. 계약만료의 조치로 정규직 전환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정부와 대기업에 의한 '사용기간 연장' 언급으로 비정규직 감소 효과가 뭉그러졌다는 분석이다. 결국, 비정규직법은 노동계의 우려에도 '개악'이 되었으며, 이는 경제위기가 완화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20만 명 규모의 비정규직 감소에 그치는 주요인으로 꼽혔다.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본은 사회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 자본론 > 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거대자본은 2008년 이후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으로 노동환경 악화를 주문했다. '사회에 의한 강요' 즉 정부의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노동계의 지적처럼 정책은 철저하게 거대자본의 편이었다.

노동자가 순식간에 권리를 짓밟히고 마치 물건처럼 이용당하는 현실을 보니 140여 년 전에 마르크스가 < 자본론 > 에서 "노동자들은 단순히 상품으로 취급될 뿐이다"라고 묘사했던 상황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 21쪽

마르크스는 고된 노동에도 부를 얻지 못하는 노동자의 모순을 보고 < 자본론 > 을 썼다.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 영국의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노동자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이 소개하는 < 자본론 > 의 핵심 문장은 마치 예언처럼 한국의 노동문제와 맞아떨어진다. 글머리에서 언급하듯, '지금, 이곳'의 현실을 직시하는데 < 자본론 > 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증이다.

노동자를 위한 경제민주화... < 자본론 > 이 필요하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곧 타인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타인의 경험에서도 배우는 것이야말로 중요하지요. 마르크스는 145년 전에 자신의 힘으로 당시의 자본주의를 분석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배우고, 현재에 대한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내놓아야 합니다. -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 300쪽

저자인 이케가미 아키라는 1973년 NHK 기자를 시작으로 30년 동안 저널리스트이자 시사평론가로 활동해왔다. < 자본론 > 이 진리임을 주장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로 움직이는 지금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본론 읽기 강의'를 진행했고, 책은 그 강의를 묶은 결과물이다.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이 < 자본론 > 의 방대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현실과 여전히 맞닿은 맥락을 확인시켜주는데 그칠 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선뜻 다가서기 어려웠던 < 자본론 > 을 향한 디딤돌을 만들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 자본론 > 을 읽으려는 사람들, 혹은 읽지 않더라도 그 시각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가치를 지니는 이유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시대정신은 '경제 민주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덧없는 향연'으로 보일 만큼, 이 논의에서 노동자는 배제되었다. 여전히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산으로 노동자는 신음한다. 과연, 노동자 없는 경제민주화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재벌개혁을 외치지만, 그곳을 일터로 삼은 노동자의 목소리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1600만 명의 노동자는 한국사회의 주요 구성원이자, 최대 집단의 유권자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경제민주화의 주체로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의 악다구니에서 노동자들은 온갖 끌 탕을 견디고 견디어왔다. 이제 노동자들은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아마, 이번 대선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성찰하는 < 자본론 > 은 노동자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노동자를 향하는 경제민주화 모색에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청문회를 앞두고, 정리해고 노동자 이창근은 "해고의 바다에서 지난 3년간 조난 신호를 보낸 이들에게 한국 사회와 국회는 어떤 구조의 손길과 대책을 만들고 내놓을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거나, 언젠가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을. 자, 이제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이 왔다.

덧붙이는 글 |

<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 이케가미 아키라 씀, 오세웅 옮김, 김공회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012년 8월,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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