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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 기자의 책갈피] '공부의 즐거움'과 '번역의 즐거움'

세계일보 | 2008.06.28 03:32
‘늦깎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는 늦은 나이에 머리를 깎은 사람, 즉 나이가 많이 들어서 중이 된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요즘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을 두루 일컫는다. 늦깎이들은 출발은 늦었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강해 뒤늦게 놀랄 만한 실적을 쏟아내 주위의 귀감이 되는 일이 잦다.

그중에 한 사람이 조동일(69) 계명대 석좌교수다. 원래 불문학도였던 그는 몇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겨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학사 편입했다. 성적은 우수했으나 전공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석·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몇몇 지방대를 전전한 끝에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돼 정년까지 마쳤다. 그는 ‘한국문학통사’(전5권) 등 수십 권의 연구서를 내는 등 국문학계에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여기에 버금가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번역가로 이름을 굳힌 김석희(56)씨다. 그는 첫 번역서인 ‘아돌프’로 번역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로마인 이야기’(전15권), ‘역사와 문명’, ‘인간의 초상’, ‘사상의 모험’, ‘황제의 밀사’, ‘카사노바 나의 편력’, ‘프랑스 중위의 여자’, ‘르네상스 미술기행’ 등 200여권을 한글로 옮겼다. 김씨도 조동일 교수처럼 학부 전공은 불문학이지만 대학원은 국문학과로 진학했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가로 데뷔, 몇 편의 작품도 썼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강권으로 번역을 시작했지만, “시시한 소설 쓰느라 끙끙대느니 좋은 책을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게 훨씬 뜻있는 작업이자 수지맞는 사업임을 깨달았다”고 생각을 정리한 그는, 자신의 창작품을 대하듯 최선을 다해 번역했다.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도 받았다.

그는 자신이 번역한 책 뒤에 반드시 ‘역자 후기’를 쓴다. 번역 인생 10년차 때 이 후기 60편을 모아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을 펴낸 그는 이번에 20년차를 맞아 ‘번역가의 서재―내가 만난 99편의 이야기’(한길사)를 출간했다.

“책에서 새로 만나고 페이지를 새로 열 때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그 미지의 곳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때만큼 긴장될 때도 없지만, 그때만큼 가슴 설레는 때도 없습니다.” ‘김씨의 번역하는 즐거움’이다.

“공부보다 더 즐거운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공부에서는 같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고 전에 없던 경지로 나아간다. 이 세상에 아무도 모르고 있던 것을 알아내고 그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공부에서 얻은 보람의 극치이다.” 조동일 교수의 ‘공부의 즐거움’이다.

두 늦깎이의 사는 즐거움이 마른 장마 속 무더위를 쫓는다.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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