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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과 검은 눈, 서로 “이상하구나”

한겨레 | 2008.07.18 20:01
[한겨레] 16~19세기 출몰 이양선 기록


조선-서양 문헌들 상호분석


800쪽 분량 세밀화처럼 복원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박천홍 지음/현실문화·3만2000원

“영원한 어제를 감추고 있는 바다는 아직도 우리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03년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을 통해 “철도가 그려놓은 오욕과 수치의 한국 근대사”를 되짚었던 박천홍씨가 5년 만에 ‘자매편’을 펴냈다. 그가 이번에 주목한 공간은 바다. 구한말 철도가 침략·지배·수탈·차별, 곧 “식민지의 모순을 실어나르는 슬픈 기관”이었다면 바다는 “불구적이고 기형적인 우리 근대의 출발점”이라는 게 지은이의 판단이다. 그가 보기에 근대는 “자연 산물이 상품으로, 수단에 불과했던 화폐가 욕망의 자본으로, 농민들이 기계에 얽매인 노동자로, 영혼 구제라는 종교적 사명이 개종이라는 사업으로, 피부색·언어가 야만의 증표로 낙인찍히는 세계”의 출현이었다. 그러므로 제 나라 바깥에 무심했던 봉건체제의 왕조에게 그것은 “악령의 출현이자 몰락의 전주곡이었다.” 이상한 모양의 배, 이양선(異樣船)은 도둑처럼 왔고 파국을 예비하는 파도를 일렁이며 밀려들었던 것이다.

지은이가 탐사하는 시간대는 16세기에서 1860년대 초까지다. 이양선이 조선의 바다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18세기 말이지만 이미 16세기부터 ‘낯선 사람과 배’가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1577년 포르투갈 사람 도밍구스 몬테이루가 마카오-일본을 왕래하다 폭풍우로 조선 해안에 밀려들었다는 기록을 지은이는 첫손에 꼽았다.

조선 왕조가 이방인의 출현에 당혹해하는 장면은 순조1년(1801) 제주에 상륙한 포르투갈 사람 다섯을 두고 벌인 어전회의가 잘 보여 준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겠는가?”(정순왕후) “말이 분명하지 않고 문자 또한 괴이하며 복장도 해괴해서 자세하게 알 수 없습니다.”(영의정 심환지) “나는 사방의 나라는 문자가 같다고 알았다. 그런데 문자도 다르단 말인가?” “왼쪽부터 횡서로 썼는데, 그 글자 모양이 꼬부라져서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알지 못하니 답답하다.”


타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답답했던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초반 한반도 일대를 항해한 알세스트호의 애머스트 일행은 영국으로 귀국하다 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 섬에 잠시 기항했다. 그곳에는 폐위 뒤 유폐된 황제 나폴레옹이 웅크리고 있었다. 일행 가운데 제임스 홀이 나폴레옹에게 조선 여행담을 들려주고 삽화를 펼치자 나폴레옹은 감탄하며 말했다. “히야! 큰 갓을 쓴 길고 흰 수염의 노인장이군. 손에 든 긴 담뱃대, 중국풍의 매트, 중국풍의 의상, 노인장 옆에서 글을 쓰고 있는 서기까지, 전부 또렷이 잘 그렸군!”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는 역사적 인물의 호기심을 홀은 더 채워주지 못했다. 그들에게 조선은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에 가까웠던 것이다.

때문에 미지의 땅에 도착한 서양인들이 맨 처음 한 일은 “자기 집에 문패를 거는 것처럼” 이름을 붙이는 행위였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과 문명을 무효화하는 그것은 이후 자행되는 식민주의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한-일 사이 갈등의 핵 독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은이가 든 예는 모두 셋인데,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동해에서 고래잡이를 하다 독도를 발견하고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라 한 것이 첫째 경우다. ‘메넬라이’(Menelai), ‘호네트 섬’(Hornet Island)도 당시 독도의 ‘별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양선 박물지’로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풍부하게 재현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데칼코마니처럼 쌍방의 자료로 확인된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조선 조정에서 이방인을 조사한 문정(問情) 보고서와, 서양인이 남긴 기록을 견줘 봄으로써 공정하게 사태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대조와 분석, 논평을 위해 그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같은 관찬 사료에 정약용·이익·이덕무 등이 남긴 개인 문집, 서양인이 남긴 ‘조선 여행기’에다 관련 논문까지 세 자릿수에 이르는 참고문헌을 끌어 왔다. 폴란드의 저항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가 말한바 “고독이 아편처럼 느껴질지라도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조선의 바다로 온 타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았고, 우리가 거기에 대응한 풍경은 어땠는지가 800여쪽에 세밀화처럼 정교하게 복원돼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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