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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이 책을 보라

오마이뉴스 | 2013.09.03 11:05

[오마이뉴스 정은균 기자]

만 21년, 1087회. 매주 수요일,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를 말해주는 '처절한' 숫자들이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일본은 묵묵부답이다. 이미 80~90세의 고령이 된 피해 할머니들은 이제 겨우 57명 정도만 살아 계신다.

일본의 '철저한' 묵묵부답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독일의 심장부인 수도 베를린에는 나치가 학살한 유태인을 기리는 600여만 개의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가 세워진 공간을 모두 합하면 축구장 두 개 크기와 맞먹는다고 한다.

다른 예도 있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 한 장을 남긴다. 그 사진에는 진실한 사죄의 표현으로 무릎을 꿇고 묵념하는 빌리 브란트 총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부심이 없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한 마디로 그는 침략전쟁과 같은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내놓는 극우 정치인이다. 그런 아베 일본 총리에게 40여 년 전 빌리 브란트 총리가 남긴 예의 사진이 과연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일본은 왜 위안부 문제를 외면할까. 그들은 줄기차게 위안부 문제를 민간업자들의 상업적 행위로 축소한다. 우리나라의 뉴라이트들도 위안부 문제를 대리인이 낀 '취업 사기'쯤으로 본다. 하지만 역사학계의 중론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이 1937년의 난징대학살과 중일전쟁 즈음의 국가총동원령 이후 본격화한 것으로 본다.

위안부가 민간업자들의 '돈벌이' 수단이었다고?


<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 겉그림

ⓒ 이숲

<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 는 1942년부터 버마(현 미얀마)와 싱가포르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관리인인 '쵸우바(帳場)'로 일한 어느 조선인의 일기를 번역한 것이다. 그의 직업인 '초우바'는 상점이나 여관, 요리점 등에서 장부를 기입하고 회계를 보는 카운터 같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위안소의 모든 실무는 초우바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원천 자료인 일기는 모두 26책으로, 경기도 파주의 사설박물관인 '타임캡슐'에서 제공한 것이다. 이 책의 '해제'에 따르면, 일기의 주인공은 1905년에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1979년에 사망했다. 그는 일제시대에 경남 김해의 모 등기소에 근무하다 대서소를 차려 큰 돈을 번다. 그러다가 거액의 사기 사건에 휘말려 경제적인 궁핍함에 내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대구에서 위안부들을 모집하여 남방으로 떠나는 처남에게 합류한다. 그의 처남인 위안소 경영자 '○택(山本○宅)'은 위안부 19명을 모집하여 제4차위안단에 동참한 사람이었다.

그가 초우바로 일한 기간은 1942년 8월 20일부터 1944년 말까지의 2년 5개월이다. 그가 거친 곳은 군전용 위안소인 칸파치 클럽(1942년 8월~1943년 1월), 이치후지루 클럽(1943년 5월~9월), 키쿠수이 클럽(1944년 2월~12월) 등이다. 책은 이렇게 그가 거쳐간 위안소에 맞춰 각 장을 구분해놓았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위안부 문제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 책이 갖는 상당한 '역사적' 의의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와 관련된 번역·해제자(이하 '번역자')의 말을 들어보자.

여기서 말하는 위안부 문제의 실체란 제4차위안단의 존재이다. 구 일본군부가 조직한 위안단의 존재는 위안부들이 단순히 위안소업자들의 영업 수단으로서 개별적으로 모집된 것이 아니라 일본군부에 의하여 계획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구 일본군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관여(關與)'했다는 현 일본정부의 인식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6쪽)

이 책의 번역자는 '제4차위안단'(이 책에는 딱 1회 등장한다)이라는 용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제4차위안단의 존재가 일본군부가 조선총독부 및 조선군사령부와 협력하여 조선에서 차례로 위안단을 조직하여 해외로 출진시킨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실제 위안부 동원 과정을 보면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이나 식민지에서 위안부 동원은 '각지 파견군 사령부에 의한 동원지(動員地)에의 의뢰인 파견→ 동원지의 정부(혹은 영사관)나 군사령부에의 협조 요청→ 주선인(위안부업자)에의 위안부 모집 의뢰→ 주선인의 위안부 모집' 절차를 밟는다. 표면적으로는 민간인 주선자를 내세웠지만 전체 기획과 진행은 철저하게 군 당국이 주도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위안부 동원 방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제시된 미군 측 자료(미국전시정보국심리작전반 '일본인포로심문보고' 제49호; 제4차위안단으로 파견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민간인에 대한 심문 결과를 정리한 것임)는 위안부의 동원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1945년 5월 초순 일본군의 의뢰인들이 일본군에 의해서 새로이 정복된 동남아시아 제지역에서의 '위안서비스'를 할 조선인 여성을 동원하기 위해 조선에 도착했다. (중략) 이들 의뢰인들이 사용한 미끼는 다액의 수입, 가족의 부채를 변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고되지 않은 노동과 신천지 싱가포르에서의 신생활에 대한 전망이었다. 이와 같은 허위 설명을 믿고 많은 여성이 해외근무에 응모하고 2, 3백엔의 전차금(前借金)을 받았다. (408쪽)

그래서 이 책의 번역자는 위안부 모집이 인신매매나 다름 없는 전차금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을 통한 것이었다고 추정한다. 더 나아가 그들이 모집 목적을 얼버무리거나 속였다는 점 등을 통해 볼 때, 위안부 모집에 '유괴나 다름없는' 사기 수법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 책과 관련 자료에 서술된 위안부의 동원 과정과 절차를 보면, 당시 일본이 '공식적이고 직접적으로' 위안부 정책을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초우바의 대외업무 중 소속기관(부대)과 관련된 업무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초우바는 연대사령부나 병참사령부 혹은 경무부에 영업일보·월보 및 월별 수지계산서 제출 등을 제출해야 했다. 번역자의 말마따나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본질은,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으로부터 위안소 경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제4차위안단'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

1980년대, 독일 사학계에서는 나치즘을 탈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나치의 천인공노할 학살 범죄를 터키의 아르메니안 학살이나 러시아 볼셰비키의 계급 학살과 같이 '평범한 학살'로 희석하려고 한 것이다. 이때 당시 독일의 대표 지성이었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나선다. 그는 나치즘만큼 주도면밀하게 종족 학살을 자행한 전쟁 범죄가 어디에 있었느냐며 반문한다. 그는 '고도의 기술적 장치'를 동원하여 한 종족 전체를 '계획적으로' 말살하려고 한 학살은 나치밖에 없었없었다며 독일 역사학계를 매섭게 비난했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학자들이 주도한 교학사 판 고교 한국사 이야기다. 이 책에서 교학사 저자들은 일본군 위안부가 1944의 여자정신근로령 이후에 나타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실제로는 1930년대부터 이뤄진 강제동원이 1944년 이후에야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본 역사학계의 중론과도 어긋나고, 이 책에서 핵심어로 제시되고 있는 '제4차위안단'의 역사적 전후 맥락에 비춰보아도 전혀 맞지 않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전형적인 왜곡이자 축소라 아니할 수 없다.

양심 있는 지식인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특히 학생들의 역사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사 교사들의 지혜로운 판단이 있어야겠다. 이들의 행태가, 자신들만의 극우 교과서를 만든 일본의 극우세력 새역모(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와 다를 바 없다는 일각의 지적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을 들불과 같은 기세로 규탄한다. 그런 대한민국이 일본 극우 세력인 새역모보다 못한 역사의식을 지닌 이들의 목소리에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솔직히 교학사 판 고교 한국사 불매 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 (안병직 번역?해제 | 이숲 | 2013. 8. 20. | 423쪽 | 2만 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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