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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이반 일리치 지음 | 내 안의 자율적인 힘을 찾아

매경이코노미 | 2014.07.07 10:14

가진 것 없는 사람, 나이 어린 사람,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서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행동가 중 그런 이가 많다. 이반 일리치, 파울로 프레이리, 에드워드 톰슨, 함석헌, 지학순, 장일순…. 이들은 모두 스스로 몸을 낮춰 민중에게 배움을 구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이반 일리치의 말과 행동은 물질 추구에 여념이 없는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반 일리치는 어렵다. 어려운 사상가다. 20세기에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란 말은 그럴싸하지만 부정확한 평가다. 지극히 전통적인 말과 생각을 했고 삶의 감각을 복원해내려 했다는 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잊힌 말을 다시 했을 뿐이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매우 기분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일 수 있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고 남들 사는 대로 그냥 살려 하지 않았기에 불편하다. 그를 편의적으로 문명비판가로 분류해서도 곤란하다. 현대를 비판하지만 현대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니까. 일리치는 조심스레 다가가 묵상해야 하는 신앙인이다.

유한성을 인식하는 게 고통을 이기는 길 이반 일리치가 말년에 주목한 건 우정

1970년대 일리치의 말과 생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사제직을 버리고 죽기 전 20년 동안은 공식적으로 잊힌 존재였다. 그 기간 그는 12세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살았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은 주로 1970년대의 일리치에 해당한다. 생애 말년 현대 사회의 기원을 밝히는 'ABC, 민중 지성의 알파벳'이나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같은 주요 저작은 한국어로 출간되지 않았다. 이 책들이 나와야 그가 역사에서 건져내려 한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문화적 건망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읽어둬야 할 책이 있다. 바로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다. 1992년 예순여섯 말년에 펴냈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여러 모임에서 한 강연을 묶어 정리한 것이라, 생생한 육성으로 일리치의 생각을 폭넓게 조망할 수 있다.

이 책 첫 장 '간디의 오두막에서'를 보면 이반 일리치의 정신을 잘 읽을 수 있다. 부자가 본다면 비웃겠지만 흙과 나무로 지어진 이 작은 집은 진정한 삶이 자라는 곳이라고 주목했다. 쾌적하고 기능적인 터전, 마음이 생동할 수 있는 집, 환대의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는 검소한 자리인 것이다. 젊은 시절 현대의 사회제도를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비판했던 그가 말년에 주목한 것은 우정이었다. "서로의 친구가 되기 위해,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냄새를 맡아야 하고, 맛을 봐야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진정한 우정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의 감각을 안내자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리치가 오십대 중반부터 얼굴 한쪽에 자라는 혹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어떻게 고통을 견뎠을까. 그는 모든 것이 유한함을 인식했다. 유한성의 자각, 한계의 깨달음, 만물에 적당한 규모가 있음을 스스로 아는 것이 지혜다. 고통을 감내하는 내적 기술을 닦는 것(askesis), 그것이 각자의 마음속 흙집을 쾌적하게 지키는 일이다. 고통을 물리치려 하면 할수록 우리의 정신은 왜곡되고 나약해진다. 일리치는 내적 힘을 길러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닦아야 한다고 했다. 창틀을 넓혀 창밖의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오듯 내 불편한 마음의 흙집을 고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맞이하고 흔쾌히 지낼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삶이다.

[고원효 문학동네 인문팀 편집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64호(07.02~07.0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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