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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벼락처럼, 해충으로의 변신

한겨레 | 2016.07.29 20:46

[한겨레] [토요판]

이주의 시인/허수경

카프카 날씨 1

이 거리 처음 본다

이 건물들 본 적 없다

이 사람들 모른다

그들은 내가 여기에서 이십여년째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곳을 처음 방문한 것 같다

국경을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

강도와 테러리스트들이 끼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천년 전에 지어진 수도원을

내가 어제 폭파했다고 했다

그 수도원에는 이 지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방언들을 모은 자료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말들을 함께 폭파한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집에만 있었는데!

천년을 살아도 낯선 내 그림자가 발목을 잡아 놓아주지 않았는데!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잠 속에서 깨어나면

투명한 벌레 한 마리가 될 날씨다

종소리는 공중에서 유리조각으로 흩어지고

잠이 덜 깬 잘 아는 얼굴은 황망히 도시를 떠난다

가방을 끄는 소리도 시끄러웠지

누군가 끌고 가는 바퀴가 달린 가방만큼

어릿하게 슬픈 세계는 없었다

-<문예중앙> 2016년 봄호 수록-

*1964년 진주에서 태어나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독일에서 살고 있는 시인 허수경입니다.

<카프카 날씨>라는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늦가을 즈음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인터넷으로 영상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쓰러진 그 몸 위로 다시 물대포가 쏘아졌습니다. 농사를 지으신다는 백남기님이 그 쓰러진 분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전율했습니다.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궐기장에 나왔는데 그리고 이미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는데 다시 물대포를 쏘아대는 것은 국가라는 이름을 빌려 자행된 폭력이었습니다. 또한 그 무렵, 독일로는 전쟁을 피해서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들을 지켜주어야 할 나라는 전쟁의 와중이었고 그 와중에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이들이었습니다. 동유럽 국가들은 차례로 국경을 닫았고, 지금 그들 가운데 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도시인 이도메니에서 천막을 치며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카프카는 문학과 조금 거리가 있는 분들도 잘 아는 이름일 겁니다. 특히 어느 날 아침에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해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인 <변신>이라는 소설은 널리 알려져 있지요. 하루아침에 날벼락처럼 그는 무시한 해충으로 변합니다. 그는 직물을 팔러 다니는 외판원이었고 아버지가 진 빚을 갚아 나가며 식구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방 밖으로도 나오지 못하는 해충이 된 것입니다. 거의 백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앞서 적은 두 사건을 보면서 저에게는 <변신>이라는 소설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외국에 사는 저에게 신분증은 여권입니다. 여권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의 이름이 박힌 이 문장에 의지해서 저는 외국에서 공부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년 전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저의 지반을 혹독하게 거두어 갔습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살아도 보호받지 못하며, 심지어 피해자인 가족들은 불온분자로 몰렸습니다. 항의하는 시민을 물대포로 쏘며 사경으로 몰아가는 권력이 제 모국에는 있었습니다. 그런 지경인데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몰염치한 이들이 그 권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변해서 침대 속에 누워 있던 그레고르 잠자가 떠올랐습니다. 피해자들을 사회의 해충으로 만들어버리는 권력. 그 안에서 젊은이들은 알바에 알바를 전전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하더라도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만들지 못하며 가진 자의 권리만을 지키려는 권력은 모두를 해충으로 만들어버리며 해충이 죽으면 간단히 버립니다.

물론 대한민국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인간을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이 세계의 날씨입니다. 이도메니에서 중부 유럽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난민들에게 유럽은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처럼 철저히 문을 걸어 잠급니다. 그들이 마치 해충인 것처럼 피합니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저들의 권력 의지를 관철하려 하며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소녀들을 끌고 가서 종으로 만들거나 팝니다. 이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 이상한 날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나면 자신이 해충이 되어버릴 것 같은 삶의 지반이 흔들거리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우리들. <카프카 날씨>는 그런 세계에 대한 스케치입니다. 21세기의 초반이라는 인간의 시계 속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속에서 어떻게 견뎌나가야 하는지, 외국의 거리를 걸으며 저는 이 시를 썼습니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이름이 박힌 여권을 지니고 멀리 있는 고향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들을 가슴에 안으며 이 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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