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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20대 아들 한마디에 내 詩學 던져버렸다”

경향신문 | 2009.05.06 18:50

"어언/ 시력 오십 년// 나는/ 현대시의/ 종말을/ 안다// 허공모심의/ 못난 시뿐// 못난 시 마저/ 모시다 모시다/ 드디어 저물어 사라지는// 그러나 그 끝엔…"('못난 시 10000'·중략)

신작 시집 < 못난 시들 > 과 함께 < 방콕의 네트워크 > 등 4권의 사회비평 에세이집을 펴낸 김지하 시인.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발견한 가능성에 주목한 글들을 선보인다. < 김문석기자 >

김지하 시인(68)이 3년 만에 새 시집 < 못난 시들 > (이룸)을 들고 나왔다. '못난 시'들인 만큼 제목도 없다. '못난 시1'부터 시작해 '못난 시 921123' '못난 시 0.008' 등 막무가내다. 김 시인이 "시의 제목이란 게 시의 핵심 부분이라 잘나게밖에 표현이 안 된다"며 임의로 붙인 숫자들이다. 이 정도면 '못난 시'에는 고의적으로 못나 보이려는 시인의 노력이 들어가 있는 셈인데, 그 의도는 무엇일까.

"지난해 5월 촛불집회 때 아들 둘과 이야기를 하는데 아들이 '아버지 시는 왜 이렇게 어렵냐. 조금 못나고 쉽고 쿨하고 재미있게 쓸 수 없냐. 그게 신세대가 아버지에게 원하는 거다'라고 한 방 놓습디다." 20, 30대 아들에게 들은 한 마디에 그는 평소 가졌던 시학을 내던져버렸다. 정제되지 않은 일상어로 일기 쓰듯 시를 써내려갔다. 파란만장했던 시인의 과거사, 사회 비판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형식은 '못남'을 취했지만 허례허식을 벗어던진 진솔한 자기 고백이 피부에 와닿는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못난 시'가 태어난 배경이 되기도 한 지난해 촛불집회에 관한 시들이다.

"촛불이 온 지구 생명의 구원인지도 몰라…이 세상 맨 꼬래비/ 애갱치들과 여편네들과/ 쓸쓸한 외톨이들이 어느 날/ 문득 앞에 나서 직접 정치한다는/ 열흘씩/ 보름씩/ 야단법석 토론하는/ 옛, 옛, 옛, 화백인지도 몰라."('못난 시9')

김 시인은 "조직도 지도자도 없이 질서를 유지하며 집단 이성 합의에 의해 비폭력으로 유지된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라고 했다. 동학사상의 '기위친정(己位親政)'을 촛불에서 읽었다는 시인은 " '기위'는 맨 꼴찌를, '친정'은 임금의 직접정치를 의미하는데, '기위친정'이란 개벽이 시작되면 천대 받던 소외계층이 임금처럼 우주정치를 담당하는 큰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는 뜻"이라며 "20대 미만의 학생들과 젊은 여성, 아무도 안 알아주는 쓸쓸한 사람들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와 이익단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촛불집회에 개입하는 것은 '횃불'과 '숯불'이라며 비판했다. "고기 구울 때 자기 고기 챙기려고, 이익 챙기려고 피우는 게 '숯불'이고 홍길동이 부잣집 습격할 때 들고 들어가는 게 '횃불'이라면 촛불은 할머니가 손자 감기를 낫게 해달라며 정화수 떠놓고 비는 다소곳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촛불에 대한 생각은 대학생 시절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시절의 추억과 현재 촛불집회의 다양한 군상들이 교차하며 나타나는 마지막 시 '못난시-진짜진짜 마지막 못난 시'에 집약돼 나타난다.

"촛불은 또 켜지고 또 켜지고 계속 켜질 테니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김 시인은 함께 펴낸 산문집 < 방콕의 네트워크 > < 촛불, 횃불, 숯불 > <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 < 디지털 생태학 > 에서 촛불집회에서 목격한 가능성을 동학사상과 접목시켜 자세히 풀어냈다.

<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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