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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식·체면 던져버린 '못난 詩' 그 울림은 더 가슴에 와 닿아

세계일보 | 2009.05.08 17:07
김지하 시인 새시집 '못난 시''소근소근 …' 시리즈 4권 동시 펴내

김지하(68·사진) 시인이 새 시집 '못난 시들'(이룸)과 촛불을 중심에 놓고 우주질서의 변화에 대해 고찰한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 시리즈 전 4권을 동시에 펴냈다. 새로 펴낸 시집에는 언어 선택이나 구성에 특별히 예민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각나는 대로 토해낸 일기 같은 형식의 '못난 시' 연작 91편이 수록됐다.

문학연구자 조동일 교수가 '어수룩하게 살고 못난 시를 쓰라'고 충고했던 말을 기억해내고, 촛불세대인 두 아들의 '쉽고 재미있는 시를 쓰라'는 요구에 직면하여 참으로 못나고 어수룩해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시인은 서문에 밝혔다. 이런 배경인 만큼 그의 '못난 시'들은 격식이나 체면, 미학적 조율 따위는 의식하지 않지만 어떤 시들은 그래서 울림이 더 만만치 않다.

"밖에서/ 지쳐// 집에 돌아와// 텅 빈 방에 불 끄고// 빨가벗고 누워/ 긴긴 옛 젊은 날의 성교를 회상한다// 제 몸 위아래 쓰다듬으며/ 여전히 성적인 모심은/ 줄기차다 줄기차다/ 발기가 안 되는데도 그저 줄기차다"('못난 시 9999' 부분)

솔직하고 거침없다. 고희를 앞둔 나이에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성적 미련까지 동학의 '모심(侍)'으로 모시려는 태도가 눈물겹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감정을 모시려고 해도 '서푼짜리 분노'는 쉬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서푼짜리/ 분노는/ 어디서 오나// 날더러 인품이 없다고/ 날더러 미친놈이라고/ 날더러 밥벌이도 못할 놈이라고// 그런 것/ 아니다// 좌익에선 배신자/ 우익에선 빨갱이/ 중간파는 찢어죽일 놈/ 뭐 이런 것들."('못난 시 700' 부분)

김씨는 시집은 물론 함께 내놓은 산문집들에서도 일관되게 촛불시위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후천개벽의 새로운 질서가 창출될 계기를 그들이 만들고 있다고 거듭 반복해서 설명하고 주장한다. 물론 순수한 '촛불'을 검은 '숯불'과 선동하는 '횃불'로 만든 꾼들은 제외한다는 전제다.

"촛불이/ 혹시는/ 후천개벽인지도 몰라// 촛불이/ 혹시는/ 남북통일의/ 참 시작인지도 몰라// 촛불이/ 온 지구 생명의 구원인지도 몰라// (…)/ 이 세상 맨 꼬래비/ 애갱치들과 여편네들과/ 쓸쓸한 외톨이들이 어느날/ 문득 앞에 나서 직접 정치한다는/ 열흘씩/ 보름씩/ 야단법석 토론하는/ 옛, 옛, 옛 화백인지도 몰라"('못난 시 9' 부분)

유사 이래 미성년자와 힘없는 부녀자들, 쓸쓸한 노인들이 생활 혁명, 정치 혁명의 가운데로 나선 건 지난해 촛불시위가 처음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엄청난 사태야말로 소외계층이 우주정치를 담당하는, 후천개벽으로 나아가는 '기위친정(己位親政)'의 단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 세상이 다가온다면서도 시인은 자주 운다. "세상에서 끝없이/ 매 맞고 쫓겨난 사람"이 "새벽 다섯 시// 일어나 앉아/ 홀로/ 숨죽여 호곡"('못난 시 321')한다.

조용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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