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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베 난징의 굿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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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일기' 라고 표현하지만 이것 조차도 존 라베가 쓴 이 일기의 소중함에 비하면 오히려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어떤 찬사를 동원하더라도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받은 충격과 감동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존 라베와 당시 국제안전구역 내의 수십명의 외국인들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가장 위대한' 일을 해냈다. 피에 굶주린 완전히 미친 일본군(이 개자식들을 도대체 뭐라고 칭해야 할 지, 아무튼 전세계 모든 언어에 있는 더러운 욕 중에 가장 더러운 욕이 있다면 당시 난징의 일본군은 바로 그런 자들이다)에 맞서서 정말 희한하게도 독일 나치의 표상인 스와스티카를 앞세워 난징의 25만 난민을 구한 그들은 바로 기독교가 얘기하는 예수였고 불교가 얘기하는 부처였고 무슬림이 얘기하는 마호메트였다. 아니 그 셋을 다 합치더라도 그들의 선행을 표현하기가 오히려 부족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시간에 난징에서는 진짜 예수, 부처 그리고 마호메트는 없었다. 단지 그들만이 '하늘마저도 포기한' 난징의 25만을 목숨 걸고 보호했을 뿐이다.
당시 국제안전구역의 위원회가 시종일관 견지했던 자세는 과연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는 새로운 참혹한 순간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인류에게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가장 현명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군에 의해 난징이 함락되기 직전만 하더라도 수도방위군 사령관은 '결사항전'을 주장한다. 또한 난징의 어떤 언론 역시 난징 시민 최후의 순간까지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셔널리즘의 관점에서 이 말은 언뜻 지당한 말인 듯 하다. 그러나 '결사항전'을 해야 할 주체가 실제로 그런 능력이 전혀 없다면 이 말은 이미 재산과 능력이 있어서 진작에 난징을 뜬 수십만의 난징의 유지들과는 달리 돈 없고 빽 없어서 덩그러니 버림을 받은 25만 난민들에겐 그 결사항전으로 더 독기가 오를 일본군에 의한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라베와 위원회의 위원들은 이러한 무책임성을 비판하면서 이미 만들어진 안전구역의 위상과 명분을 위해 평화적으로 난징을 일본군에 넘길것을 중국군 당국에 제안한다. 그러나 그런 제안을 중국군 당국은 거부하고 더 어처구니 없게도 함락직전 사령관 이하 대부분의 중국군은 줄행랑친다. 25만의 동족을 야수에게 내팽개친 채로...
존 라베와 그의 위원회 및 여러 외국인들은 25만 생명을 위해 '하일 히틀러'를 외치면서 스와스티카 완장을 보이면서 실상은 '물카'를 잡았지만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발휘하면서 때로는 일본군에게 싹싹 빌어가면서 갖은 노력을 다한다. 일기의 한 사례를 읽어보면 당시 그들이 25만 전체의 목숨을 위해 어떠한 거래를 일본군에게 했어야만 했는지 눈물이 날 뿐이다.
당시 진링대학 교수였던 미니 보트린은 대학내의 여학생 및 다수의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주야 할 것 없이 이리저리 뛰고 있었지만 더러운 일본군은 그녀에게 위안부를 차출하라고 한다. 그녀는 펄쩍 뛰면서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어떤 중국인이 많은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뭐라고 연설을 하자 여러 젊은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로 자원한다. 그 여자들은 전란 전에도 창녀였던 경력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미니 보트린은 그런 광경을 보고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이때 그 연설이 어땠는지는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고 있고 자원한 여자들이 어떤 의도와 심정으로 이에 동의했는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여성들의 희생으로 많은 다른 난징여성들은 참화를 면하게 된다.
그러한 엄혹한 시간에 그들에게 진정으로 위안을 안긴 것은 안전구역 내에 대피해 있던 임산부들이 그런 환경에서도 갓난아이들을 낳는 것이었다. 그런 가난하고 힘없는 25만 난민들과 2세들에 의해 결국 난징은 재건되고 그들의 후손들은 그런 바탕위에서 삶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군은 그러한 난징의 군포로와 시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과 지조를 저버리고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걸로 온갖 수모를 안겨준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국가가 옥쇄를 명했을 때 군인 민간인 할것 없이 전원 옥쇄하는 걸 명예로 여긴다. 대표적으로 사이판에서 벌어졌던 섬주민의 절벽투신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런 자살을 한 일본인에 대해서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 국가가 명했다고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그런 '빠가야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엄청난 참화 속에서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생을 유지한 '일본군이 수치스럽다고 한 그런 행동을 한' 난징 25만 시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사와 존경을 바친다.
끝으로 자신의 모든걸 걸고 25만의 생명을 지켰던 그 천사들의 이후의 삶은 불행했다. 존 라베는 1938년 독일로 귀국 후에 독일 게쉬타포에 체포되어 난징 증언에 대한 침묵을 강요당했고 대전이 끝난 후에는 나치였다고 하면서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1950년 뇌졸중으로 말년의 굶주림을 뒤로 한 채 생을 마친다. 이 후 그의 일기는 그의 나치경력을 알리기 싫어한 가족들에 의해 공개되지 않았으나 여러 사람들의 설득으로 지금부터 10년 전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난징여성들의 안전에 헌신했던 미니 보트린은 참화의 영향으로 이후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난징의 거의 유일한 외과의사였던 로버트 윌슨은 마찬가지 이유로 건강을 완전히 망친 후 정신병 치료를 받게 되고 얼마 못가서 그 역시 세상을 뜬다.
이게 역사다. 진정한 역사는 결코 아름답지도 해피앤딩도 아니다. 이제 이러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건 바로 살아남은 바로 우리이다. 존 라베의 위대한 일기는 나에게는 성경보다도 더한 걸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해서 나에게 줄 축복이 있었다고 한다면 존 라베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난징의 25만 난민의 역경을 알게 해준 이 책을 현재의 내가 읽을 수 있게 해 준 점이고 진정 이게 하나님의 나에 대한 뜻이었다면 하나님의 나에 대한 계획은 크게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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