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의 작가라고 불릴 만큼 오랜 시간을 떠돌았던 소설가 김주영(70)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우화집 '달나라 여행'(도서출판 비채)을 헌사했다. 경북 청송 5일 장터를 전전하던 소년 김주영은 좌절과 외로움이 전부였던 암울한 시절을 빠져나와 길에서 철이 들고 나이가 들었으니 글쟁이로 살아온 시간은 고스란히 반백의 머리 위에서 은빛 꿈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 빛은 천재성보다 근면성으로 문학을 했다고 밝힌 바 있는 김주영의 치열한 작가 정신과 맞물린다. 칠십 소년은 길 위에서 어떤 삶의 지혜를 발견했을까.
"여우는 그 길을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쉬지 않고 끈질기게 걸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걸었던지 지구의 끝 자락에서 다른 끝 자락으로 걸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26쪽)
글에 불러들인 여우는 김주영의 분신과 마찬가지다. 62편의 우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변신의 천재여서 이처럼 여우도 되고 새도 되고 곰쥐가 되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길은 험하고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안식처라고 생각한 곳은 오히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곰쥐는 20여일이나 헤맨 끝에 안식처를 찾아낸다. 할머니 한 분만이 적적하게 살고 있는 집이었다. 어느 날 밤, 곰쥐는 흙벽 사이에서 보물 항아리를 발견한다. '할머니, 금괴 항아리를 발견했어요.' 할머니는 그 순간 벌떡 몸을 일으켜 방망이로 곰쥐를 내리친다. "너무나 기뻤던 나머지 내가 쥐라는 것을 잊어버렸던 탓에 겪어야 했던 돌이킬 수 없는 변고였습니다."(106쪽)
사막을 걷는 법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어느 날 요란한 행장을 갖추고 떠난 사막으로의 여행이었지만 이내 변고가 닥친다. 숙소를 나선 순간, 익숙하게 걸어왔던 도로는 사라지고 그 흔했던 표지판들조차 연기처럼 모습을 감추고 만다. 존재를 의심한 적 없었던 오아시스로 가는 길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로 가는 도로를 따로 건설할 필요가 없었기에 안내판 역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44쪽)
위트와 유머가 번뜩이는 우화의 마지막 편은 표제인 '달나라 도둑'이다. 어느 밤중에 도둑의 인기척에 놀라 손전등을 꺼내 구석구석을 살피던 그는 문득 하늘을 쳐다보다 기절초풍한다. 다리가 유난히 긴 도둑은 마침 하늘에 떠 있던 달을 훔쳐서 자루에 담고 출행랑을 치는 중이었다. "길도 없는 하늘로 도망치고 있는 도둑을 어떻게 뒤쫓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쌈해가는 해괴한 도둑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인들 했겠습니까."(228쪽)
김주영은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내 어린 날, 마음껏 가져보지 못한 황홀과 내 꿈은 늘 상처투성이었다"며 "이 책에 쓰인 글들은 내 꿈과 상상력의 자서전이다"고 말했다.
정철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