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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 월~금 연재RSS

도가니

  무진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그는 갈림길에서 핸들을 꺾었다. 고개를 넘으면 무진시였다. 그런데 그 고개 정상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흰 덩어리같이 고여 있는 거대한 구름의 바다, 무진을 뒤덮은 안개였다. 그것은 희고 고운 해조류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의 차는 흰 안개의 터널로 들어섰다. 백발마녀의 머리카락같이 가느다란 안개의 결이 촘촘히 그의 차를 감싸기 시작했다. 왜였을까, 그는 오래 전 여름 낚시터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을 떠올렸다. 떠내려간 낚싯대를 건지러 저수지에 뛰어들었을 때 그의 맨다리에 감겨오던 민물 해조류의, 미끈거리고 동시에 끈적거리던 감촉을. 그때 그는 수영하기를 포기하고 함께 낚시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엉겨드는 해조류의 감촉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수영에 익숙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 안개를 보며 문득 떠올라오는 이런 기억 때문에 그는 문득 불길했다. 어쨌든 조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날 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공포 때문에 잠시 뒷덜미가 뻣뻣해졌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비상등을 켰다. 비상등이 점멸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째깍거렸다. 차에 켜둔 네비게이션이 안개 속에서 그에게 명령했다.
  “전방에 안개 주의지역입니다. 일 킬로미터 앞에서 우회전 하십시오.”
  그는 우회전을 했다.

  자애학원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교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고 하는데 청색의 고급승용차가 그의 옆에서 시동을 거는 것이 보였다. 그는 창문을 열고 청색 차의 운전자를 향해 무슨 말인가 건네려고 했으나 청색 차의 운전자는 안개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차를 출발시켰고 이어 무서운 속도로 흰 안개의 벽 너머로 사라졌다. 청색의 차창 안으로 벗겨진 머리가 얼핏 보였던 것이 그가 파악한 인상착의의 전부였다. 그는 조심스레 안개로 가득 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바닷가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 자애학원의 거대한 석조 건물이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다시 흰 안개자락에 덮였다. 그는 차에서 내렸다. 무진시까지 차를 몰고 온 4시간보다 무진에 들어선 이후 20분 남짓의 드라이브가 그의 어깨에 뻐근한 통증을 몰고 왔다. 그는 오른 팔을 들어 가볍게 몇 번 돌리고 나서 담배를 물었다. 그때 어디선가 가벼운 것들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파사삭, 파사삭거리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여자아이의 형체가 보였다. 아이의 입속에서 부서지는 스낵과자의 소리였다. 단발머리의 아이는 키가 작고 마른 체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한 손에 커다란 과자봉지를 들고 그 속의 것을 꺼내먹으며 안개 속에서 이리로 오고 있었다.
  “저기 얘! 말 좀……”
  그가 말을 꺼냈다. 그러나 아이는 과자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순간 이곳이 청각장애인들의 학교와 기숙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말을 붙이려고 했던 자신이 우스워서 그는 잠시 웃을 뻔했다. 그가 그렇게 혼자 생각하는 동안 아이도 그를 발견한 것 같았다. 아이의 입속에서 파삭거리던 과자소리가 천천히 멈추었다. 강인호는 이 학교에 오기 전에 간단히 익힌 수화를 해보려고 했다.
  “안녕, 반가워.”
  그러나 그가 손을 내밀어 수화를 하기도 전에 아이의 눈에 비현실적인 공포의 빛이 떠올랐고 아이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우우……”
  그는 그렇게 멀어져가는 아이를 눈으로 쫓다가 망연해져버렸다. 안개는 아이를 삼켰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음과 모음으로 표기되지 않는 그 비명소리가 그의 귀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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