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순경의 보고를 받는 동안 장경사의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장경사는 건성으로 김순경의 보고를 들으며 눈을 아래로 내려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빠 진짜 나 화났다. 오늘까지라고 했잖아!
장경사는 아직도 제 손끝에 남아 있는 카페 <야화> 미숙이의 흰 허벅지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소리를 못 들으니까 기차가 오는 게 들리지 않았고, 또 기차를 미처 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안개가 지독했으니까.”
장경사는 김순경에게 대꾸하며 꾸욱꾸욱 자판을 누르고 있었다.
글쎄 며칠만 참아봐... 참을성 없는 그게 네 매력이긴 하지만... 오늘 저녁에 일 끝나고 산낙지 사줄까?
그가 문자메시지의 전송버튼을 누를 때 김순경의 입가로 얼핏 조소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장경사는 천천히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김순경의 눈길을 의식하며 약간 고민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 안았다.
“뭐 다른 특이사항은 없고?”
“뭐 사고니까요. 그런데 아이 바지 호주머니에서 좀 이상한 게 나왔습니다.”
김순경은 비닐 팩 속에 든 것을 장경사의 책상 위에 꺼내놓았다. 작은 수첩을 찢은 듯한 종이는 피에 젖어 있었다.
“이강석, 박보현이라는 이름이 써 있어요. 그 위로 마구 X자를 쳐놓은 거예요……”
순간 <야화> 미숙이를 떠올리고 있던 장경사의 눈이 샐쭉 위로 치켜졌다. 그는 어쨌든 베테랑 수사관이었다. 이제는 반쯤은 본능이 되어버린 그의 수사경력이 김순경의 말 속에서 무슨 냄새인가를 감지한 듯했다. 장경사는 비닐 팩에 담긴 피에 젖은 쪽지를 바라보았다. 이강석은 자애학원 교장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박보현 또한, 아마도 그의 기억이 맞다면 그 학교 기숙사의 생활지도교사였다. 언젠가 이강석과의 회식자리에 따라왔던 눈매가 얍삽하고 얼굴이 침침하던 사람이었다. 이강석의 노골적인 하대에도 끝까지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며 장경사는 참으로 비루한 놈이라고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그의 이름이 박보현이었다.
“그래 가봐. 자애학원에는 내가 연락을 하지 뭐.”
그는 돌아서는 김순경을 바라보며 다시 휴대폰의 자판을 눌렀다.
오빠가 해결해줄게 까짓 삼백만원 쯤이야.
장경사는 갑자기 느긋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아내가 말한 대로 그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무언가가 필요하면 꼭 무슨 일인가 일어나 그에게 유리한 대로 전개되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지난달 안개가 지독하던 날 자애학원 학교 운동장 끝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한 한 여학생의 시신이 떠올랐다. 기차와 절벽…… 두 달 사이에 벌써 두 명이었다. 그건 우연한 사고로 처리되었고 이번 건 역시 그렇게 될 것이었다. 모든 것은 이 지독한 무진의 안개 탓일 테니까. 그는 무진경찰서 창밖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안개는 이제 서서히 걷혀가고 있어서 파출소 창밖의 자동차들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이 안개가 요긴한 때도 있었다. 그렇다, 조심스레 살다 보면 뭐든 요긴할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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