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인호가 간단한 이삿짐을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서울을 출발할 때쯤 무진霧津시에는 해무海霧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흰 짐승이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내어 딛듯이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안개의 품에 빨려 들어간 사물들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미세한 수증기 알갱이에 윤곽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버렸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4층짜리 석조건물 자애慈愛학원도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층 식당쯤에 켜진 노란 불빛이 마요네즈 빛깔로 희미해질 때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마도 아침예배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였을 것이다. 종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안개를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소리뿐이니까.
그때 한 소년이 철길 위를 걷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안개는 아직 남쪽 바다 연안으로부터 육지 깊숙이 다가오지 않았다. 일찍 피어난 코스모스 꽃무리가 철길 옆에서 창백하고 불안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소년은 열두어 살쯤 되어 보였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세워놓는다면 터무니없다 싶을 정도로 작은 키였고 몸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소년의 연한 하늘색 줄무늬 티셔츠는 이미 안개의 기미를 감지한 습기 찬 대기에 젖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몸 어딘가가 불편한 듯 소년은 다리를 절룩이고 있었는데 이미 바다 쪽에서부터 엷게 스며들기 시작한 안개로 인해 그 표정은 지워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년은 그렇게 안개 속으로 휩싸여 들어갔다. 소년의 발길이 닿는 철길 위로 규칙적이고 작은 진동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것을 느꼈다.
무진시 한복판에 있는 영광제일교회의 주일예배는 오전 10시에 시작되었다. 이미 교회 안뜰은 발 하나 디딜 틈 없이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늦장을 부리다가 뒤늦게 교회에 도착한 이들의 자동차가 주차장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키느라 여기저기서 작은 파찰음이 들려왔다. 하이빔을 켜도 소용이 없었다. 안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둠이 한 번도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성서말씀이 봉독되는 중에도 안개는 발광한 헤드라이트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잡무를 보는 경비원은 실수로 열쇠 꾸러미를 땅에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겨우 열쇠를 집어든 그는 안개 속에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예배당 안에서 들리는 찬송가소리를 듣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안개야…… 지독하군.”
그의 말소리는 파이프 오르간에 맞추어 부르는 성가대의 노랫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길 위를 뒤흔드는 진동은 이제 소리로 바뀌어 철로는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뒤돌아보았다. 커다랗게 휘어진 선로를 돌아 기차가 오고 있었다. 소년은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힘껏 두 팔을 벌렸다. 얼핏 그의 얼굴에 미소가 이는 듯 보였으나 그것은 곧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소리는 모음과 자음을 감지할 수 없이 기괴했다. 기적이 울었다. 소년의 몸은 기차에 부딪혀 팝콘처럼 가벼이 튕겨나갔고 안개 속에서 붉은 피들이 천천히 젖은 땅 위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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