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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 월~금 연재RSS

싸우는 사람

신성력을 뜻하는 하얀 빛이 점멸하고 야수의 포효와 기괴한 소음이 뒤섞인 채 어둠에 휩싸인 광장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괴물들은 뒤에서부터 왔다. 아니, 위에서부터 왔다.


언제부터 <그들>이 이곳에서 살고 있었는지 <그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들>은 언제나 배가 너무 고팠다는 사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잡아먹었다. 강한 자는 작고 약한 자를 뜯어 먹고 남은 것은 자신의 몸에 덧대어 몸을 더 크게 부풀렸다. 그들은 모두 달랐다. 모두 다르고 서로를 증오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살고자 하는 본능만이 전부였다.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선 싸워야 한다. 먹고 싸우고 먹고 또 싸웠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싸움을 멈췄다. 서로를 아무리 먹어도 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살아 있는 것을 먹으면 된다’고.

살아 있는 게 무엇인지 <그들>은 몰랐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 사이로 생생한 살덩이와 뜨거운 피를 가진 것들이 걸어 들어왔다. 무기가 있긴 했지만 약하고 작은 것들이었다. 그것을 먹는 순간, <그들>은 기쁨에 겨워 날뛰었다. 배가 부르고 몸을 따스하게 하는 것들. 먹으면 포만감이 느껴지는 것들. <그들>은 흥분에 젖어 축축하고 어두운 집 안에 앉아 먹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맙소사! 신이여!”

하얀 신력을 머금은 장검이 날아 괴물들의 몸체에 가 박혔다. 뭉클한 살덩이는 부패직전의 과실처럼 물컹거리며 칼날을 뒨 채 놓지 않는다. 살덩이를 녹이며 타오르는 신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덜렁거리는 육체를 가진 괴물은 기사의 머리통을 통째로 삼켰다. 괴물의 이빨은 빨판처럼 기사의 살갗을 짓이기며 압력으로 뼈를 부러뜨렸다.

“대체 저게 뭐야?”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천정에서 쏟아지는 괴물들은 아까의 것보다 서너 배는 컸다.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살갗 위로 빨판이 꿈틀거린다. 여섯 개의 팔다리를 가진 것도 있고 여덟 개도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대신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꿈틀거리는 거대한 입을 벌리며 달려든다. 머리에만 입이 있는 게 아니었다. 입은 배에도 있고 등에도 있고 심지어 기형적으로 출렁이는 다리에도 있었다. 닿기만 하면 인간의 육신을 으스러뜨린다. 무엇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렇게 죽은 자들은 모두 괴물의 살이 된다는 것이었다. 죽일 때마다 자신이 뜯어 죽인 자의 살을 자신의 몸에 덧댄다. 울퉁불퉁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간의 사지와 민달팽이처럼 꿈틀거리는 괴물의 몸체. 팔을 잡아 뽑으면 자신의 옆구리에 그 팔을 가져가 꽂는다. 머리를 잘라 삼키고 사지를 몸에 매다는 괴물. 신을 믿는 신관들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서렸다. 무기도 신성력도 통하지 않는 괴물이다.

“키나! 죽음의 사제여!”

악을 쓰면서 로제스가 외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몸집이 커져 가는 괴물들은, 살덩이를 산처럼 쌓고 또 쌓아 시체로 작은 산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먹기 위해 득달처럼 달려들어 입을 벌렸다.

지옥. 세상에 다시 없을 극한의 지옥.

키나의 몸을 막아 선 채로 아이거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그와 그녀에게 달려드는 괴물들은 없었다. 괴물들은 달려들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슬금슬금 피해간다. 회백색 괴물들의 물결 사이로 그들만이 섬이 되어 남았다.

그 때 갑자기 괴물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을 먹느라 바빴던 괴물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내장을 씹던 괴물이 머리통을 삼키고 있던 괴물의 복부를 찢는다. 그 옆에 서 있던 괴물이 또 다른 괴물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괴성과 살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광장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이제 나약한 인간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노성과 괴성이 뒤섞이는 가운데 괴물들과 싸우던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서자, 갑자기 그들의 발밑으로 은은한 빛기둥이 떨어졌다.

원圓.

옅은 빛으로 이루어진 원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던 원이 점점 커지더니 뒤이어 세 개의 원으로 분화했다. 세 개의 원은 곧이어 여섯 개로 늘어나더니 곧이어 18개로 늘어나고 곧이어 순식간에 수십 개의 원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갑자기 비틀거리며 죽어 있던 괴물들이 일어섰다. 기괴하게도 여기저기 찢겨서, 몸이 녹아 흘러내렸던 괴물들이 바닥에서 일어나 곁에 있는 동료들을 향해 입을 벌렸다. 일어서는 죽은 괴물들, 팔이 없으면 없는 대로, 턱만 남기고 머리 윗부분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 둘 일어나는 회색빛을 띈 괴물들은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잡아먹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건만, 이제는 괴물들이 서로 잡아먹느라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났다.

그 순간 괴물들의 몸통이 펑펑 소리를 내면서 터지기 시작했다. 살로 된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면서 괴물들의 뭉클한 살갗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터지고 녹고 찢어지고 부서지면서 괴물들이 쓰러졌다.

키나가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신어조차 외우지 않은 채 괴물들 사이로 걸어들어 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악을 쓰고 있던 괴물들의 몸이 줄줄 녹아 흘렀다. 지팡이를 짚고 괴물들 사이를 한 번 돈 것만으로도 수십의 괴물들이 죽어 넘어졌다.

뚜벅뚜벅.

토벌대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정말로 많지 않았다. 신관들과 기사들은 출발할 때의 반의 반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자신들의 발치에서 빛나고 있는 수많은 원들과 걷고 있는 죽음의 사제를 번갈아 보았다.

“회귀回歸. 케엘레나이라 에녹스핀이라 합니다.”

키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아이거는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신력의 물결이 광장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녀의 몸보다도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신성한 까마귀가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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