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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 월~금 연재RSS

싸우는 사람

“궁금한 게 있어.”

작은 목소리로 키나를 부르자, 그녀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흔들리는 횃불만이 전부인 어두운 동굴 속에서 그녀의 하얀 얼굴은 더 더욱 파리한 인상이었다. 무심한 그 표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둠의 요정처럼 기묘해 보엿다.

“그, 그게 말이야...”

그는 잠시 말을 골랐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속이 답답했다. 아까부터 침묵하고 있는 오쿠거도 이상했고, 적대적인 기운을 뿜고 있는 신관들을 뒤에 두고 걷는 것도 거북했다.

“신력을 많이 쓰면, 그러니까...힘을 많이 쓰면 피곤해지는 거 맞지?”

그는 열심히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그렇습니다. 신력이란 것은 신의 힘이니 인간의 몸이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니까요.”

“여, 역시 힘든 거지? 내게 업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가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제 경우는 보통 신관들과 조금 다르니까요.”

그녀는 걷는 보폭도 항상 일정했다. 그 모습을 주의 깊게 보면서 그는 그녀의 호흡이나 얼굴을 세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지치는 것은 맞습니다. 연거푸 쓸 수 있는 힘도 아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있으니 훨씬 편합니다. 신력은 두 사람이 쓸 때 배가됩니다.”

그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아직 신력을 자유자재로 쓰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신탁도 직접 받았지 않습니까? 내재된 신력은 굉장할 겁니다.”

키나의 말에 그는 절로 주먹을 쥐었다.

“지, 진짜?”

“보통의 경우 신탁을 받는 것은 정식 사제뿐입니다. 데스가움은 자비를 모르시는 분이라 사제가 아닌 자에게는 말씀을 전하지 않으십니다.”

아이거는 입을 벌렸다. 놀라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케엘스텐 파린타는 신력 소모가 굉장히 큽니다. 이를 테면 광역마법이나 대단위마법에 속하는 신어입니다. 이곳이 정상적이었다면 이 지역 전체의 언데드들이 소멸해야 합니다만 주법이 얽혀 있는데다가 이 지역 자체가 가진 왜곡된 성향 때문에 전체를 정화하진 못했습니다.”

그녀는 차근히 설명했다.

“전에 언데드 지역, 그 좀비들을 정화할 때는 거의 혼절할 뻔했었지요. 기억나십니까?”

그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기억나는 것이라곤 좀비 떼에게 둘러싸여 오쿠거와 함께 발광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숲속으로 달아나 개구리나 들쥐를 잡아먹으며 자신을 찾지 않는 키나를 원망했다. 그런 것이 기억나자 그는 절로 얼굴이 붉어져서 슬그머니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 때에 비하면 당신이 있어서 굉장히 편합니다. 왜 스승님이 빨리 제자를 두어 사제의 수를 늘리는 게 좋다고 강조했는지 이제야 알 거 같습니다.”

“그럼 내가 있어서 좋은 거야? 내가 있으면 도움이 돼?”

믿기지 않아서 슬그머니 다시 묻자 키나는 대답대신 그의 손등을 툭툭 쳤다. 그녀가 먼저 그의 몸에 손을 댄 적이 거의 없었던 지라 그는 깜짝 놀랐다.

“물론입니다. 제가 몇 번이나 연거푸 신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물끄러미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비하면 삼분의 일 밖에는 안 되는 작은 손엔 굳은살이 박여 까칠했다. 문득 그녀가 그의 검지를 잡았다. 굵직한 그의 손가락 하나를 잡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작은 손은 가득 찼다.

미지근한 온기가 스며들어 왔다.

두근두근. 심장 고동 소리가 들린다. 그의 것인지 그녀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가슴 속이 간질간질 했다. 따끈한 물속에 잠겨있는 것처럼.


어둠은 인내심을 갉아먹는다.

만약 토벌대가 정신적으로 단련된 신관들이 아니라 보통 병사들이었다면 발광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다. 환청과 환각이 뒤섞여 신관들을 건드리고 있었지만 그것에 반응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걷는 것에만 집중한 채 기도문을 외웠다.

로제스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걷게 했다. 한 사람은 횃불을 들고 한 사람은 무기를 들어 만약에 대비한다는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좁은 공간에선 옆 사람과 보조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시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물었다. 하얀 신관복이 기괴한 색깔로 물들어 얼룩덜룩했다.

“하루 정도 지나지 않았을까요?”

의도된 침묵은 괴롭다. 한 명이 입을 열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디 씩 떠들기 시작했다. 사나흘은 된 것 같다는 둥 한 두 시간 밖에는 안 지난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로제스가 짧게 말해주었다.

“굴에 들어온 것은 세 시간이 조금 넘었소.”

여기저기서 신을 부르짖는 소리가 작게 들려 왔다.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세 시간이 조금 넘었다. 지하 동굴로 내려오느라 두 시간, 일행의 태반을 잃는 참혹한 공격은 겨우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좁은 굴을 걷는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며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걷는 것이다. 체력소모는 극에 달하고 육체는 시간 감각을 상실한다.
로제스는 진땀이 배어나오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훔치면서 바로 앞에서 걷고 있는 죽음의 사제를 흘긋 보았다. 두 사제는 이 지독한 어둠 속이 마치 자기 집 안방이나 되듯 느긋하게 걷고 담소까지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언데드들이 함부로 달려들지 못한다고는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끔찍한 장소에서 저렇게 태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형.”

중간에서 걷고 있던 로이브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뭐야?”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소리?”

로제스가 멈칫하자 바로 앞에서 걷던 죽음의 사제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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