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성거리던 일행이 일제히 입을 다물자, 시커먼 어둠 속 저편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악기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여인의 비명처럼 들리기도 하는 기묘한 소리였다.
“죽은 자가 아닙니다.”
키나가 짧게 말하는 순간 로이브가 그녀의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로제스의 손이 올라갔다.
“성기사들, 앞으로! 방패 올려!”
명령은 신속했고 동작도 빨랐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일제히 앞쪽으로 뛰자, 로이브가 키나와 아이거를 뒤로 밀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잉잉대는 기묘한 소리는 좁은 동굴 안을 소음으로 가득 채웠다. 바람이 갑자기 훅 하고 불어 와 긴장한 그들의 얼굴을 뒤덮는다.
동시에 세찬 물결이 그들을 덮쳤다. 횃불이 훅 꺼지며 암흑이 찾아들었다.
맨 앞에 있던 기사 두 명이 ‘쾅’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용케도 그들이 쥐고 있던 사각의 방패는 서 있다.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방패를 쥔 채 기사들 서너 명이 일제히 뒤로 줄줄 밀려나갔다.
“뭐야?”
낮은 비명과 동시에 하얀 빛이 터졌다. 아니, 하나만이 아니다. 연달아 색색의 불꽃이 어두운 동굴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신어가 튀어 나와 빛을 뿌렸다. 신성마법과 신력이 좁은 동굴 안에서 부딪치며 공명했다.
“빌어먹을! 독충이야!”
로이브의 외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불꽃과 비명이 뒤섞였다.
아이거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점멸하는 불빛 속에서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시커먼 물결이 인간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방심한 인간의 몸통을 화살처럼 꿰뚫으며 갉아 먹는다. 소름끼치는 비명이 윙윙대는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에 금세 묻혔다. 수천, 수만 마리는 될 풍뎅이들이 떼 지어 그들을 직격했다.
벌레에게는 공포도 분노도 없다. 벌레는 그저 먹기 위해 움직이고 번식하기 위해 세계를 이룬다. 시체 풍뎅이들은 수 년 간 이 지하에서 살아가며 진득한 피부를 가진 괴물들이 흘리는 썩어가는 살덩이와 배설물을 먹고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괴물들과는 다른 부드러운 살덩이를 가진 인간들이 등장했다. 풍뎅이들은 인간의 살 냄새를 맡고 돌진했다. 부드러운 살갗에 주둥이를 박고 피와 살을 갉아 먹으며 따스하고 아늑한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리하여 말랑한 내장과 살점 사이에 알을 까고 번식에 열을 올린다. 그것이 시체 풍뎅이들의 목표였다.
수백 마리가 동시에 쾅쾅 소리를 내며 와 온몸으로 부딪친다. 기사들의 방패에, 갑옷에 돌멩이가 와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하지만 평범한 옷감과 달리 기사들의 방패나 갑옷은 신성마법이 스며든 견고한 것이었다. 벌레들이 아무리 사나워도 뚫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갑옷이 아닌 인간의 살갗은 연하기 짝이 없다. 시체 풍뎅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피해 신관들을 공격해왔다. 신성한 힘이 깃든 신관복을 입은 이들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지만 그것도 잠시, 벌레들은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 옷자락 사이, 옷깃 사이로 파고들어가 연한 살을 물어뜯었다. 가련한 인간이 큼직한 벌레가 순식간에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에 놀라 버둥거리는 사이 풍뎅이는 알을 낳고 달아난다. 몸부림 친 풍뎅이가 빠져나간 구멍은 어린애 주먹만 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다. 눈앞에서 살갗이 부풀어 오르고 시커먼 풍뎅이의 몸체가 튀어 나오면서 핏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피 비린내에 광분한 벌레들이 집요하게 피를 흘리는 몸으로 쇄도했다.
“막아! 레 지타 에네라!”
황홀한 오색의 빛줄기가 터졌다. 작은 오색의 태양이 어둠 속에서 떠올라 시커먼 풍뎅이들의 몸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신성한 마법이 펼쳐지자 고통 속에 떨고 있던 이들의 입에서도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아이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신성마법이 비산했다. 그는 제대로 된 공격형 신성마법은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본 신성마법은 생명의 신관과 키나의 것이 전부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오색의 빛줄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노랗고 파란, 하얀 신성한 빛들은 공격해 오는 무심한 벌레들을 후려치고 짓눌렀다.
“큭!”
키나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아이거는 눈을 부릅떴다. 신성한 갑옷을 입고 있던 이들과 달리 그와 키나는 허름한 로브가 전부였다. 옷깃 사이로 파고든 풍뎅이 한 마리가 그의 팔뚝을 깨물며 살갗으로 파고들었다. 놀란 그가 막 풍뎅이를 내리치려는 그 순간, 몸이 멈췄다.
“아?”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그의 살을 뜯어먹는 풍뎅이 한 마리를 그는 공격하지 못했다. 욱신거리는 아픔과 더불어 줄줄 흘러내리는 피. 꿈틀거리는 풍뎅이는 그악스럽게 그의 살을 파고든다. 그저 한 대 후려치기만 하면 죽일 수 있는 벌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바로 코앞으로 몇 마리 벌레가 키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녀에게 달려드는 벌레들을 치워버리려 손을 뻗으려 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경악에 찬 그의 얼굴을 키나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달려드는 벌레들을 손등으로 후려치거나 검집으로 밀어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동요 없는 까만 동공을 보며 아이거는 입을 벌렸다.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충격이 그를 때렸다.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팔뚝으로 꿈틀거리는 벌레의 움직임이 고통과 함께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살을 파고 벌레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러나 몸이 따르지 않았다.
키나는 검집에서 검을 뽑더니 그의 팔뚝에 들이댔다. 벌레가 꿈틀거리는 부위를 잘 조준해서 칼날을 긋자, 피가 툭 하고 튀어 나와 그녀의 뺨을 적셨다.
시뻘건 살 속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발견하자, 그녀는 벌레를 잡아 던졌다. 피에 젖은 풍뎅이가 날갯짓을 하며 다시 날아들다가 키나의 손등에 얻어맞고 다른 희생양을 향해 날아갔다.
충격에 말을 잊은 그가 멍하니 내려다보는 동안 키나는 자신의 팔뚝을 갉아먹고 있던 풍뎅이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더니 옆으로 내던졌다. 몇 번이고 그 동작을 되풀이할 뿐 벌레를 죽이지는 않는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시오!”
로이브가 그들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키나의 몸에 달라붙은 풍뎅이를 가차 없이 후려쳐 밟아죽이고는 석상처럼 굳어버린 아이거의 몸에 달라붙은 벌레도 신성한 하얀 불꽃으로 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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