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까만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없다. 어둠 속에서 횃불을 잃거나 놓친 자가 태반이라 앞이 보이는 것은 오로지 신관들이 내뿜고 있는 신성력 덕분이다.
생존자 총 9명.
처참한 상태였다.
살아남은 이들을 확인한 로제스는 눈을 감았다. 욕설이 절로 줄줄이 흘러나왔다.
치유의 신전 기사 두 명과 생명의 신관 한 명. 전쟁의 신관 두 명. 죽음의 사제 두 명. 주신전의 기사 한 명.
“약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프라이스가 세 개의 약병을 꺼내 놓았다. 생명의 신전에서 내 놓는 약은 하나 밖에 없지만 대신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귀한 내상약이다. 치유의 신전에서 내놓는 약들은 다양하지만 생명의 신전에서 내놓는 약처럼 엄청난 힘을 가지진 못했다.
가장 중상을 입은 신전 기사에게 그가 막 약을 먹이려 하자, 치유의 신전 소속 성기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 눈이 벌레에게 파 먹혀 사라지고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린 중상자였다. 그가 걸친 갑옷은 오히려 그의 몸보다 깨끗했다.
“갑옷이 조금 커서...”
레 기사단의 젊은 기사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기사는 다른 이들보다 체구가 작았다. 그 때문에 갑옷이 조금 커서 그 틈새 사이로 벌레가 파고든 것이다. 내장이 줄줄 흘러내리는 중상을 입고도 웃는 그를 보고 프라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 가망이 없으니 경상자에게 약을...”
“하지만!”
기사는 입을 다문 채 눈을 감았다. 약을 안 먹으려는 단호한 태도에 프라이스는 어쩔 줄을 몰랐다. 치유의 신관들은 완고하기 짝이 없어서 한 번 입에 담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그 약, 나를 주시오.”
옆에 있던 다른 신전 기사가 손을 내밀었다.
그 역시 손과 발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내장이 터져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동료인 기사를 내려다보면서 프라이스의 손에서 약병을 빼앗았다. 놀란 프라이스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는 약을 꿀꺽 마셔버렸다.
“마지날 경. 그대의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려주도록 노력하겠네.”
딱딱한 얼굴을 한 기사는 몸을 숙이며 동료에게 속삭였다.
“...저도 사, 살아남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로드 경.”
죽어가는 기사도 대답했다. 참혹한 상처를 입은 그의 얼굴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의 숨이 끊어지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아남은 치유의 신전기사는 남은 두 개의 약병을 하나는 로이브에게, 하나는 프라이스에게 권했다. 프라이스가 고개를 저으려 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치유의 신관입니다. 내 판단은 정확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이 약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은 한 명의 원망어린 시선이 그에게 닿았지만 냉정한 치유의 신관은 무시했다. 그는 로이브와 프라이스가 약을 먹은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주신전의 기사의 상처를 들여다보더니 놀랍게도 치유력을 썼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기사의 다리만 치료하고는 손을 뗐다.
“나, 나를 다 낫게 해 주어야 할 거 아니오?”
어깨와 옆구리에도 상처를 입고 있었던 기사는 고통에 겨워 불만을 토했지만 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제 체력이 좀 더 돌아온 연후에 마저 치료합시다. 지금은 움직이는 게 우선이니.”
“그러니까 나에게 약을 주었어야 하는 거 아니오?”
“그 약은 내상에 잘 듣는 약이지 외상에는 큰 효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보다 다른 이에게 쓰는 게 옳지요.”
그 냉정함에 뭐라 말도 못한 주신전의 기사는 이를 갈았다. 고위 귀족출신으로 보이는 그는 갑옷도 화려하기 짝이 없다.
“다리는 고쳐 줬으니 다행이지.”
뜻밖에도 약을 받지 못한 로제스가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 그는 파리해진 얼굴로 약을 먹자마자 체력을 회복한 로이브를 노려보고 있었다. 로이브는 히죽 웃으며 그런 그에게 치유력을 써 주었다. 하지만 약한 치유력만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문득 애도의 노랫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로드라는 기사의 노래는 뜻밖에도 부드럽고 고요했다. 노래를 마친 그는 죽기에는 너무 젊은 기사의 목에서 신관인을 회수했다. 담담한 태도였지만 그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생존자 총 8명.
“다친 곳은 없습니까?”
쉰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지칠 대로 지친 그 목소리에서 예전의 낭랑하던 목소리를 겨우 기억해낸 아이거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괜찮습니다. 로이브가 많이 도와주어서.”
키나는 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프라이스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는 로제스를 부축하고 걷는 로이브의 등을 바라보다가 키나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간신히 만든 횃불이 불안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부러진 지팡이에 옷자락을 감아 만든 횃불을 들고 있는 것은 맨 앞에서 걷고 있는 로드였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이 로이브와 로제스. 맨 뒤가 키나와 아이거였다. 중간에서 절룩이며 걷고 있는 주신전의 기사는 뷔르겐 리히멘트라고 했다. 백작가의 차남으로 꽤나 거만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일행이 걷고 있는 통로는 제법 넓었다. 벌레 떼가 들끓던 지역을 지나고 나자 다시 침침하고 눅눅한 동굴로 변했다.
아이거는 다시 침묵했다.
그는 무서웠다. 그녀를 지키지 못하고 굳어버릴 자신이 너무 무서웠다.
그는 불안했다. 침묵하는 오쿠거가 이젠 불안했다. 오쿠거는 분명히 살아 있는데 도무지 그에게 응하려 들지 않고 있었다. 혹여 오쿠거가 자신을 버린 것은 아닐까.
“아이거.”
키나의 작은 손이 그의 손목에 와 닿았다.
“괜찮습니다. 이제 익숙해질 테니까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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