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굴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오로지 살아남은 일행들의 발자국 소리 뿐이었다. 토벌대가 줄어들자 그들이 내는 발자국 소리는 더 선명해졌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겹쳐서 기묘한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아이거는 침묵하는 오쿠거의 앞발을 주무르고 건드리면서 걸었다. 일부러 손톱까지 들쑤셨지만 반응은 없다.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똑.
난데없는 소리가 동굴 안으로 울려 퍼졌다. 긴장하고 있던 일행들이 일제히 몸을 숙였다.
“물소리?”
앞서 있던 로드가 돌아보며 설명했다.
“여기 작은 샘이 있군요.”
그의 말에 일행들은 일제히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말이 옳았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청록색 벽 아래로 물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샘은 놀랍게도 동굴 벽 한 가운데 있었다. 작게 솟아나는 물줄기가 벽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선명했다. 그 소리에 절로 갈증이 일어났다. 식수도 식량도 처음에는 넉넉했지만 지금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무기 뿐이다. 지하수이니 깨끗할 거라며 프라이스가 신성력을 일으켜 물을 정화했다.
“독은 없습니다.”
“다행이로군.”
저마다 한숨을 내쉬며 물을 받아 마셨다.
아이거는 한 손으로 조심스레 물을 받아 키나의 입에 기울여 주었다. 지친 기색이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밀랍처럼 창백했다.
“업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요.”
그가 안절부절 못하며 물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늘 무심한 그녀의 시선이 유달리 석벽에 붙들려 있었다.
“왜 그래?”
아이거의 질문을 무시하고 그녀는 샘가로 다가가 울퉁불퉁한 석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샘물은 차갑고도 씁쓸했지만 독은 없다고 프라이스가 설명했다.
“무슨 일이요? 뭔가 발견했소?”
로이브가 뒤에서 그녀를 향해 물었다.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그녀가 벽을 향해 서 있으니 일행들이 긴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앞으로는 언데드도, 불순한 것도 없습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진짜요?”
뒤에서 뷔르겐이 물었다. 그러나 키나는 대답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곳 전체에 주법사의 의지가 스며 있습니다. 아마도 이 안에 있던 키메라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인 모양입니다.”
“그 키메라들은 하인리히의 것이 아니오?”
“아닐 겁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이곳에 잠들어 있던 것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하인리히가 깨운 것이겠지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라면....”
로제스가 옆에서 궁시렁거리며 기침을 했다.
“수백 년 간 신전을 반대한 주법사들이 미친 짓을 해댔다는 것을 다들 알 거 아니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거겠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뷔르겐이 다시 물었다.
“그럼...하인리히는 그것들을 얻어 조종하려고 여기로 온 거라 생각하오?”
“그래서 유달리 신성력에 저항력이 있었던 건가? 주법사의 유물이라서?”
과묵한 로드까지 끼어들어 한마디 하자 신관들의 얼굴은 더 심각해졌다.
“그럼 설마 그 괴물들이 주법사의 유물이란 말이야?”
로이브가 미간을 구기자 로제스는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되겠지. 신전의 욕심쟁이들이 원하는 보물이 아니어서 참으로 안 되었다 싶어.”
킬킬 웃는 로제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보며 로이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관과 신전기사들이 서로 떠들고 있는 동안 키나는 여전히 샘이 흐르는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연처럼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검은 눈동자에 옆에 있던 아이거가 왜 그러냐고 재차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건 제 영역에 있는 일이 아니로군요.”
“그게 무슨 뜻이야?”
아이거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인간의 의지는 신을 강림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곳 전체에 마법이나 신력 같은 비인간적인 힘을 억제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이곳만이 아니라 이 계곡 전체에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각자 떠들고 있던 신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럼? 그 키메라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주법사란 말이오?”
“아니, 그 키메라를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잡고 있는 게 주법사란 말이지요. 우리는 주법사들이 봉인시켜 놓은 괴물들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인적도 없는 깊은 굴속에 저렇게나 많은 괴물들이 득실거린다니.”
그 말에 로이브가 턱을 매만졌다. 부숭한 턱수염이 거북했다.
“그건 나도 이상하다 생각했소. 저 괴물들은 대체 여기서 뭘 먹었을까 싶어서. 게다가 저렇게나 고약한 것들이 왜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벌레 떼만 해도 엄청난 놈들이 아니었냐고 뷔르겐이 덧붙였다.
“아까 나타난 그 벌레 떼가 괴물의 먹이가 아닐까?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그 벌레도 정상은 아닙니다. 풍뎅이는 그렇다 쳐도 메뚜기는 기본적으로 식물을 먹는 벌레입니다. 여긴 풀포기 하나 없는데 대체 그 메뚜기 떼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요?”
프라이스의 말에 로제스가 끼어들었다.
“모르지. 내 생각에는 하인리히가 주법사 그랑네무스의 결계를 뚫고 들어와서 저 괴물들의 봉인을 푼 게 아닌가 싶은데.”
“잠깐, 사형. 나, 내내 궁금한 게 있었는데 그 그랑네무스란 양반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요? 혹시 그를 해쳤소?”
로제스는 로이브의 질문에 미간을 콱 찌푸렸다. 그는 침을 뱉으면서 낮게 투덜거렸다.
“넌 내가 무슨 살인마라 생각하는 거냐? 그 양반은 코빼기도 못 봤어, 일찌감치 뒈진 게 아닌가 생각했다구.”
“하지만 그의 결계는 여전히 존재하잖아? 신관들이 훼손한 몇몇 부분을 빼면 다 건재하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상한 거지. 우리가 싫어서 어디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르고. 주법사가 신관 좋아한다는 이야기 들어 봤어?”
“그럼 그랑네무스가 우릴 공격한 게 아닐까? 저 괴물들을 시켜서?”
옆에 있던 뷔르겐이 의문을 던졌다. 그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된 로이브와 로제스가 얼굴을 마주하자 뒤에 있던 키나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어째서? 이 안이 주법사들의 공간이라면 저 괴물들도 그들의 부하인게 당연하잖아?”
분개하는 그를 보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안으로 계속 가지. 우리끼리 떠들어봐야 결론이 안 나. 그랑네무스란 주법사에 대해서는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
로제스가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는 퍼렇게 된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저 괴물들도 끔찍한데, 아니, 우리의 친애하는 하인리히 군도 끔찍한데 거기다가 전설적인 주법사 그랑네무스까지 우리를 노리고 있다면 얼마나 더 끔찍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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