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도가 울리기 시작했다. 간수들이 요란스럽게 걸으며 가죽 곤봉으로 일부러 쇠창살들을 두들긴다. 좁은 복도에 소름 끼치는 소음이 울려 퍼진다.
마침내 214번의 방문이 끼이익 하고 금속성을 내면서 열렸다.
세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조련자와 간수 둘이었다. 간수는 가죽 곤봉과 채찍을 빼어 들고 있었고 조련자는 여유 있는 웃음을 띤 채 그에게 다가온다.
“여어.”
그는 다가서서 그의 발치에 놓인 바닥의 쇠고리와 연결된 족쇄를 풀었다. 키이익 키익 하는 부대끼는 소리가 빈 석실 안을 소름 끼치게 울렸다.
그는 무덤덤하게 족쇄가 열리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사슬에서 풀려나자마자 묵직한 쇠뭉치가 발목에 매달린다. 그는 쇠뭉치를 단 채 곤봉을 들이대는 간수들에게 밀려서 석실을 나섰다.
복도는 여전히 좁고 음침했다. 꾸부정하게 복도를 따라서 걸어가면 뒤에서 조련자가 따라 걷는 소리가 들렸다. 질질 끄는 걸음 소리가 차가운 돌벽을 따라 이동하면서 울려댄다.
저벅저벅.
두근두근. 심장이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머리칼이 쭈뼛 섰다. 다리가 달달 떨리고 턱이 탁탁 소리를 냈다. 약을 먹지 않은 탓이다. 그는 충혈된 눈알을 굴리며 이를 악물었다. 마구 날뛰는 심장이 가슴을 뚫고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심장이 뛰는 소릴 들으면서 억지로 수를 세었다. 입술을 씹어 대는 바람에 피가 흘렀다. 그는 입술에서 나는 피를 쭉쭉 빨아 마시며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난 바보가 아냐.
심장이 뛰는 소리를 열중해서 세었다.
무기실에 들어서자 조련자는 평소와 똑같이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214번은 자신을 둘러싼 피 묻은, 그러면서도 태연자약하게 악취를 내뿜고 있는 무기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사용한 자들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을 그 무기들이 그를 바라보면서 조
롱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무기들의 조롱이 더 크게 들렸다. 가져 봐야 죽을걸. 휘둘러 봐야 죽을걸.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을걸.
빙빙 도는 시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그는 무기들의 차가운 조롱을 무시하고 예전에 쥐었던 묵직한 칼을 집어 들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칼은 그의 손아귀에 편안히 잡혔다. 한번 휘둘러 보자 쇄액 하고 허공을 찢는 소릴 만족할 만큼 내 준다. 녹이 슬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무기의 틀은 갖춘 칼이었다.
“오늘은 쉬울걸.”
조련자는 그 한마디만 했다.
쉬운 일 따위는 없다. 그러나 그는 대꾸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하얀 지옥의 철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입구에 서자, 조련자가 낮게 속삭였다.
“행운을 빌어 주마.”
철문이 열리면 빛이 내려온다. 뜨겁고도 모진 빛이다.
그 빛 속으로 몇 발자국만 나아가면 평소처럼 그의 머리 위로 악다구니에 가까운 소리들이 시작된다.
“어이! 죽어라!”
“죽어 버려!”
평소와 조금 다른 반응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소리들을 덮어쓴 채 중앙까지 걸어 들어갔다. 찌르는 것 같은 햇살이 눈알을 자극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을 살폈다. 앞에 선 상대가 보였다.
소년이다.
흰 피부를 가진, 아마도 그랬을 소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피부 위에는 검푸른 멍들로 가득했다. 소년은 가죽으로 몸을 동이고 겨우 하체만을 가렸다. 찬란한 금발이 햇빛을 받아 소년의 머리 위에 후광을 만들었다. 이 장소가 아닌 곳에서 만났다면 천사라고 착각할 정도로 잘생긴 소년이었다. 가느다란 사지 여기저기에 멍들이 나 있다. 폭행당한 상처일 것이다. 그래도 소년은 장검을 들고 반듯하게 그를 겨누고 서 있었다. 그의 것보다 훨씬 날이 잘 선 좋은 장검이었다. 214번의 시선은 소년보다도 검에 닿았다. 어디서 저런 좋은 무기를 구했을까. 새삼 짜증이 치밀었다.
그는 뒤에서 관중들이 퍼부어 대는 욕설을 들으면서 다시 앞으로 걸었다. 덜덜 떨리던 손발이 들끓는 심장에 맞추어 울렁울렁 기세 좋게 힘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입술을 씹으며 이를 드러냈다. 난 돼지가 아니야. 멍청하게 죽어선 안 돼. 죽기 싫어.
그의 사나운 기세에 소년은 뒤로 물러섰다.
이 소년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귀족 소년이란 것은 금방 티가 났다. 손도 발도 말랑말랑해 부드럽게만 보인다. 근육은 전혀 발달하지 않았다. 싸우기는커녕 두 발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귀족? 어린애? 언제부터 내가 그런 걸 따졌더라?
그는 성큼성큼 더 가까이 다가섰다.
바들바들 떨며 뒤로 물러서던 소년은 그를 공격하기 위해 두 손으로 검을 잡고 겨누었지만 차마 덤비지는 못했다. 소년의 빈약한 완력으로는 숏 소드조차 다루기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이를 악문 소년은 결사적으로 그를 향해 덤볐다. 214번은 홱 몸을 틀어 피하며 소년의 등을 칼자루로 내리쳤다.
“악!”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그는 빈약한 상대보다 챙강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검을 탐욕스레 훔쳐보았다. 저런 무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살려 주세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검을 놓친 소년은 바닥을 뒤로 기며 울었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공포가 가득 차 있다. 순식간에 하얀 얼굴이 눈물로 젖었다.
“사, 살려 주세요!”
소년이 애원했다.
그는 버둥대는 소년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문득 소년의 얼굴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스쳐지 나간다. 연약했지만 결코 울지 않았던 친근한 하얀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제발 살려 주세요!”
소년이 울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순간, 그는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리쳤다.
퍽 하고 피가 튀기며 조그마한 머리가 흰 모래가 깔린 지옥 위로 대굴대굴 굴렀다. 아직 생명의 온기를 가진 소년의 가는 사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얀 살갗 위로 검붉은 피가 흥건하게 퍼져 나간다.
그는 칼을 쥔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소년이 떨어뜨린 숏 소드를 갖고 싶었지만 조련자가 빼앗을 게 뻔했다. 문득 발치까지 번지는 피를 보며 그는 어디선가 많이 보던 광경이라 생각했다. 214번은 목 없는 시체를 응시했다. 웃는 얼굴, 다정한 시선을 가진 동그란 머리통이 문득 떠올랐다.
“죽어라!”
“너도 인간이냐!”
“이 악마!”
“죽일 놈! 악당!”
비난과 경멸이 뒤엉킨 소음이 쏟아졌다. 먹다 만 음식 찌꺼기와 술병들이 날아왔다. 관중들이 흥분하고 있었다.
그들이 외쳐 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연약한 희생자를 동정하는 목소리와 냉혹한 그를 증오하는 목소리가 하얀 지옥 안에 가득 찬다. 얼마 전 그를 환호했던 입으로 증오에 찬 소리를 쏟아 낸다.
그는 갖은 저주와 오물을 뒤집어쓴 채 칼을 쥐고 서서 바닥에 구르는 소년의 목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푸른 눈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깨끗하게 잘린 목에서 흐르는 피와 더불어 눈물도 함께 흐른다. 그는 발바닥을 적시는 따스한 액체에 고개를 갸웃했다. 멍해진 뇌리 속으로 떠오르는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뒤엉키고끈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옥을 지키는 경비들이 멍하니 서 있는 그를 끌고 무기실로 데려갔다. 그는 검열 지옥에 서서 잠시 동안 공범자였던 칼을 빼앗겼다. 그리고 다시 수갑과 족쇄를 차고 복도로 내몰렸다. 경비들에게서 그를 인계받은 간수들과 조련자는 늘 그렇듯 거칠게 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운 복도 안은 평소처럼 음습했다. 그 좁은 복도로 소음이 들어찬다. 관중들은 아직도 흥분했는지 악을 쓰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지옥은 항상 시끄럽다.”
214번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앞서 걷던 조련자가 고개를 홱 돌린다.
“뭐라구?”
간수들도 그를 향해 곤봉을 내렸다.
“뭐라고 말한 거야?”
“뭐라고 했지? 자식! 말도 다 하는군. 새삼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나?”
평소와 달리 조련자가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섰다. 덕분에 오랜만에 조련자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생각 외로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얼굴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뭐라고 말했나? 214번?”
“지옥.”
“뭐?”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등줄기에 파고드는 곤봉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크게 반원을 그리는 곤봉질은 뜻밖에도 어설펐다. 그는 조련자의 바로 앞까지 파고들어 그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조련자의 정수리를 무거운 수갑으로 내리찍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검붉은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조련자의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그가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바로 그 순간 경악한 간수들이 달려들었다.
“이놈!”
놀란 간수들이 곤봉을 치켜 올리는 틈을 타 수갑을 휘둘렀다. 가까이 있던 경비의 코가 으스러지며 피를 뿌렸다. 낡긴 했지만 무겁고 각진 수갑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놀란 나머지 간수 하나가 악을 쓰며 곤봉을 내리쳤다. 그는 든든한 수갑을 들어 막으면서 그대로 간수의 턱을 후려쳤다. 차가운 수갑에 진득한 피가 튀었다.
정적. 어두운 복도 안으로 정적이 흘렀다.
순식간에 나자빠진 세 명을 바라보며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이렇게 쉬웠나?
불안에 떨면서도 214번은 헐떡이며 바늘을 꺼내어 수갑 구멍을 휘저었다. 생각보다도 더 쉽게 수갑이 떨어졌다. 수갑은 너무 낡았다. 그가 아는 한 그 수갑은 단 한 번도 새것으로 교체된 적이 없었다. 몇 번 휘젓지도 않았는데 철컥 하고 수갑이 풀렸다. 뒤를 이어 발목에 채워진 족쇄도 바늘로 몇 번 휘젓자 거짓말처럼 쉽게 풀렸다. 어린애 머리통만 한 쇠공이 데구르르 구석으로 굴러간다. 너무 간단해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는 시원해진 손으로 쓰러진 조련자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 들었다. 좋은 칼이다. 번쩍이는 하얀 날이 어두침침한 복도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그는 주저 없이 간수들과 조련자의 가슴을 찔러 죽음을 확인했다.
심장이 뛰고 있다. 미친 듯이 날뛰며 튀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면서 수를 셌다. 입술을 하도 씹어 감각이 없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난 돼지가 아냐. 난 돼지가 아냐. 그는 미친 듯이 되뇌었다. 아무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지옥의 관중들은 분노에 섞인 고함을 질러 대고 있다. 아무도 이 작은 복도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제는 웃지 않는 조련자의 허리춤을 뒤져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다음에는 간수의 몸을 뒤져 돈 몇 푼과 칼을 챙겼다. 필요한 것은 옷이었다. 그는 시체를 끌어모아서 빈 석실 안에 처넣었다. 다른 간수들이 언제 나타날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는 서둘러 간수의 옷을 입고 샌들을 벗겨 신었다. 체격 차이 때문에 옷이 북 하고 찢어지긴 했지만 그럭저럭 몸을 가릴 수 있었다. 그는 바닥에 흐르는 흥건한 피를 두 손에 묻혀 얼굴에 마구 문질렀다. 여기저기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조련자의 피를 치대어 발랐다. 그러고는 간수의 칼로 급히 길게 자란 머리칼을 자르고 수염을 밀었다. 마구잡이로 바른 피가 끈끈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정말 없을까? 아마 없을 거다. 그는 급히 뛰어 다음 복도로 달려 나갔다. 죄수와 간수들이 지나가는 좁은 복도를 지나 마침내 제법 넓은 복도로 뛰어들자, 지키고 있던 경비병이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봐!”
“야! 거기, 무슨 일이야?”
시선이 순식간에 한데 모였다.
“도, 도와줘!”
그는 오랜만에 소리다운 소리를 질렀다. 목이 컬컬해서 잘 나오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그는 외쳤다.
“도와줘!”
절박한 소리였다.
그는 처음으로 사람다운 신음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고 그 때문에 벽에 어깨를 부딪치고 머리를 박았다. 보고 있던 경비병 다섯 명이 놀라 우르르 달려들었다.
“도, 도와줘!”
“무슨 일이야!”
경비병들이 모두 놀라 그를 부축했다.
“크윽. 타, 탈주다.“
그는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굳은 혀가 움직이지 않는다. 거짓이 아니었다. 덜덜 떨리는 사지가 흥분과 공포로 뒤틀렸다.
“탈주? 누가?”
“이봐! 비상이다! 종을 쳐라!”
심각한 상황이라 판단한 경비들이 일제히 여기저기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피에 젖은 몸을 벽에 기대고 누워있었다.
다행히도 아무도 치료를 하자고 달려들지 않았다. 이 지옥의 간수들은 악명이 높아 경비를 서는 병사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복도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악물었다. 비릿한 맛이 나는 입안은 바짝 말라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빨리 서둘러서 움직여야만 해. 그는 입술을 깨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때 미친 듯이 날뛰는 심장 고동 속에서 둔하기 짝이 없는 마약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긴장감을 삼키기 시작했다. 둔해지는 사지와 느려지는 감각에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는 벽을 기대고 일어나 바로 섰다. 복도 바닥이 흔들흔들 춤을 춘다. 얼룩진 회색 벽이 멀어졌다 다가온다. 잠복해 있던 마약은 그를 희롱하며 유혹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더 편할 거야. 나가 봐야 붙잡히기밖에 더 하겠어? 너 같은 건 나가 봐야 달아날 곳도 없어. 조련자의 몽둥이가 얼마나 아픈지 잊었어? 간수들의 고문이 얼마나 지독한지 잊었어? 나가 봐야 다시 잡혀 올 뿐이야. 너는 갈 곳도 없고 갈 수도 없어. 나가자마자 잡혀 사지가 찢겨 죽을 게 틀림없어. 끊임없이 속삭이며 경고하는 목소리가 뇌리를 가득 채웠다. 다리가 순간적으로 풀려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 이마를 벽에 부딪치자, 화끈거리는 통증이 찾아왔다. 피 냄새, 쇠 비린내. 빙빙 도는 시야. 사나운 오크 전사의 포효가 다시 곤죽이 된 그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정신 차려, 병신. 잊지 말라구. 넌 돼지가 아냐. 가만히 앉아서 죽을 셈이야? 어차피 죽을 거면 싸우다 죽어. 어차피 죽을 거면 나가서 죽으라구.
그는 무기력해지는 사지를 억지로 추스르면서 비틀비틀 걸었다. 이 복도를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 모르지만 어쨌든 나가는 길은 있을 것이다.
“이봐! 다쳤나?”
밖에서 들어온 경비병들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들에게 동정을 구했다.
“도와줘… 도와…….”
“이봐, 안에서 소란이 났다! 안으로 가! 어서!”
조장인 듯한 사내가 그를 도우러 다가온 병사들을 향해 사납게 명령했다.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혼자 남겨졌다.
서너 명의 경비병들이 그의 앞을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다.
적막. 완벽하고도 산뜻한 적막.
이렇게나 쉽다니. 이렇게나 간단하다니. 그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이상하기 짝이 없다. 조련자도, 간수들도, 경비들도 그보다 약했다. 하품이 날 정도로 약했다. 그런데 왜 잡혀 있었던 거지? 대체 왜?
어이가 없어서 그는 큭큭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핏속에서 사악한 약기운이 그를 충동질했다. 의미도 없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는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빙빙 도는 시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눈앞에 지옥을 나서는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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